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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멋진 음악과 분수,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었던 어느 저녁날 - 몬주익 분수쇼 & 엘그롭

비행청년 a.k.a. 제리™ 2017. 7. 26. 07:30

 

몬주익 언덕을 한 바퀴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바로 카탈루냐 미술관. 언덕을 오르기 전 스페인 광장 옆 라스 아레나스 전망대에서 바라봤던 궁전같은 바로 그 건물이다.

 

 

카탈루냐 미술관 앞에서 스페인 광장 쪽을 바라보고 서면 이런 뷰가 펼쳐진다. 가운데 높게 솟은 2개의 탑의 이름은 '베네치아 타워'. 당시에는 "바르셀로나에 생뚱맞게 왠 베네치아?"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저 탑의 모양이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종루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카탈루냐 미술관의 우아한 자태.jpg

 

라스 아레나스 전망대에서 처음 봤을때도 엄청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카탈루냐 미술관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멋진 건물이었다. 길에서 저 멀리 몸매 좋은 여자가 보여 냉큼 뛰어가서 얼굴을 확인했더니 미모도 연예인급이었던 뭐 그런 경험이 난데없이 떠올랐다. 물론 그때 만난 그 여자에게 말 한번 못 붙여보고 지나쳤던 것처럼, 저 아름다운 건물 내부로는 들어가진 않았다. 그녀 앞에선 용기가 없었고, 카탈루냐 미술관에서는 입장료를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카탈루냐 미술관을 그렇게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몇시간 지나지 않아 다시금 그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그녀는 낮과는 180도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카탈루냐 미술관이 원피스를 입은 단아한 미녀였다면, 밤의 카탈루냐 미술관은 자극적인 탱크탑을 입고 스테이지를 누비는 클럽 퀸카처럼 화려했다. 낮에도 밤에도 아름다운 상상속의 그녀처럼 카탈루냐 미술관 역시 낮과 밤, 모두 아름다웠다. 그리고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상상 속 그녀와 카탈루냐 미술관 모두 낮보다 밤이 더 나은 것 같다.

 

 

카탈루냐 미술관의 야경의 화룡점정은 바로 몬주익 분수쇼. 라스베가스, 두바이에서 펼쳐지는 분수쇼와 함께 세계 3대 분수쇼라 일컫어지는 몬주익 분수쇼는 카탈루냐 미술관 앞에서 매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녁 8시에 시작해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된다.(3월 말 기준) 계절에 따라 운영시간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하니, 사전에 요일과 시간을 반드시 체크하도록 하자.

 

 

스페인 광장에서 카탈루냐 미술관으로 향하는 대로변에서부터 분수쇼는 시작되고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물기둥이 마치 가로수 같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가로등 같기도 하다. 정작 길을 걸을 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사진으로 다시금 그때를 회상해보니 이 장면도 하나의 장관이었군,

 

 

해질 무렵 시작된 분수쇼는 시간이 흘러 주변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음악에 맞춰 하늘로 치솟는 물줄기와 화려한 조명,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함성이 적절히 어우러져 작은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실 분수쇼 자체만으로는 감흥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 세계 3대 분수쇼라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분수쇼 아닌가? 그런데 분수 뒤로 보이는 카탈루냐 미술관의 레이저 쇼(?)가 곁들여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마치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는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듯한 웅장하고 화려한 빛의 향연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카탈루냐 미술관의 매혹적인 자태에 반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분수쇼가 진행되는 내내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고 찰나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미술관 주변으로 전망이 좋다 싶은 곳은 하나같이 사람들로 가득찬다. 화려한 분수쇼와 미술관 조명만큼이나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에너지가 넘쳐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는 매주 그것도 일주일에 두세번씩 열리는 평범한 일상일텐데 이렇게나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조금은 의아했다.

 

 

카탈루냐 미술관 맞은편으로 스페인 광장과 라스 아레나스 역시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게 될 줄은 낮에는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저 당시에는 저녁에 몬주익 분수쇼를 하는 줄도, 야경이 저리 아름다운지도 몰랐었다. 그냥 주변을 어슬렁대다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분수쇼가 시작되길래 가까이 가서 지켜봤을 뿐이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멋진 장면을 건질 수 있었던,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날이었지 싶다.

 

 

그렇게 몬주익 분수쇼를 원없이 감상한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이미 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엘그롭(El Glop)', 빠에야와 스테이크로 유명한 맛집이다.

 

 

분수쇼를 관람한 뒤라 제법 늦은 시각이었지만 다행히도 엘그롭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저녁 타임에는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영업을 한다고 하니 오히려 6~7시쯤 왔으면 헛걸음을 할 뻔 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가게 한켠에 놓은 큼지막한 하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메뉴를 받아들고 무엇을 시킬지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해산물 빠에야를 하나 시켰다. 엘그롭 메뉴의 양대 산맥은 해산물 빠에야와 먹물 빠에야인데, 개인적으로 '먹물' 보다는 '해산물'이 끌렸기에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여러 명이 와서 두 가지 빠에야는 물론 스테이크까지 왕창 시켜서 이것저것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며 품평회를 했어야 했는데, 혼자 하는 외로운 배낭여행이다보니 그러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나저나 빠에야를 기다리는 동안 먼저 나온 저 올리브는 완전 별미였다. 무심결에 하나 집어 먹었는데, 포크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한 마음을 달래며 가게 여기저기를 훑어보는데, 저기 주방에 주인장 아저씨 포스가 ㅎㄷㄷ하다. 안경 너머로 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심한 듯 음식을 만들어 툭 내놓는데, 왠지 모를 내공이 느껴짐. ㅋ

 

 

드디어 해산물 빠에야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웨이터가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뭐.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릇이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그나저나 비주얼이 정말 짱짱맨이다!!

 

 

큼지막한 왕새우가 무려 2개! 그리고 밥 사이사이에 작은 칵테일 새우도 제법 숨어있었다. 홍합과 오징어는 말할 것도 없이 진짜 해산물이 풍성하다. 밥알이 약간 날리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맛은 훌륭했다. 다만 스페인 음식이 대개 그렇듯 간이 좀 (많이) 짠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문할 때, 씬 쌀(Sin Sal)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까먹었던 것 같다. 스페인어로 씬 쌀은 얇은 쌀로 음식을 해달라는 뜻이... 아니라 소금을 빼달라는 말이다.


 

엘 그롭에는 이렇게 매장 한 켠에 바가 마련되어 있어 굳이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가볍게 술 한잔 즐기기에 큰 부담이 없다. 특히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바르셀로나 관광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약 500m)에 위치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쯤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주소는 carrer de casp, 21, Barcelona이고 구글맵에 그냥 'EL GLOP'을 입력해도 된다. GR이 아니라 GL이니 그건 주의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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