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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내 인생 최고의 90분, 엘클라시코 직관기 (1편) - 티켓 찾아 삼만리

비행청년 a.k.a. 제리™ 2017. 7. 26. 09:40

 

 

El Clasico, 굳이 번역을 하자면, 전통의 라이벌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냥 레알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경기라고 하자. 어차피 그 때 말고는 들을 일이 없는 단어니까. 엘 클라시코는 비단 스페인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끄는 경기다.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어하는 그 경기를 만약 내가 본다면? 그런데 그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맙소사!

 

△ 사진출처 : https://www.sbat.com/football/news/how-to-watch-el-clasico

 

때는 바야흐로 2015년 3월 22일, 전 세계 축구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기가 열리는 그날, 나의 스페인 여행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스페인 여행의 종착지가 엘 클라시코가 열리는 바르셀로나라는 점이고, 불행한 것은 당일까지 티켓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인터넷으로 티켓을 예매하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쉽게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경기라면, 엘 클라시코라 불리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관련글> 수강신청보다 더 어려운 엘클라시코 예매에 도전하다.

 

숙소에서 눈을 뜬 후 수십, 수백, 수천 번을 고민한 끝에, 일단 경기가 열리는 캄프누 경기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아리송한 식사를 한 후, 구글맵이 알려주는 대로 버스를 탔다. 캄프누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대략 12시, 경기가 시작되는 저녁 9시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지만, 주요 방송사들의 카메라를 실은 차량이 벌써부터 경기장 앞에 빼곡하다.

 

 

아직은 한산한 경기장 앞에는 슬금슬금 주변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바로 '암표 거래상'이다. 엘 클라시코는 워낙에 인기가 많아 다른 경기에 비해 입장권 가격이 서너배 정도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권이나 멤버쉽 회원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자고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시장은 장사치에게 큰 이문을 가져다 주는 법. 그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저 멀리서 훤칠하게 생긴 서양 남자 하나가 아까부터 나를 자꾸 흘끔거리며 쳐다본다. 보아하니 저 녀석은 틀림없이 게이 아니면 암표상이리라. 깊게 숨을 들이키고 그 앞으로 다가가니 슬쩍 말을 걸어온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녀석은 암표상이 맞았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250유로라는 가격은 둘째치고 거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온라인으로 예매한 계정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려줄테니 티켓을 출력해서 경기를 보라는 거다. 본능적으로 이 자식이 약을 판다는 생각이 들었고,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마음같아서는 프리킥하듯 그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차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그 시간에 또 다른 암표상을 찾는다고 해봐야 비슷한 이야기가 오고 갈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렸고, 저녁 7시 반 쯤 캄프누를 다시 찾았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인파들이 몰아쳤다. 경기장 주변으로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분위기도 엄청 소란스러운게 '폭동이라도 일어난 걸까?' 싶었다.

 

 

테러범의 공격을 받은 바르셀로나 시내의 모습.jpg

 

 

반정부군의 공격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 남자와 그를 인터뷰하는 방송사.jpgura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사람들의 면면에는 미소와 벅찬 흥분이 가득해보였다. 반면, 아직까지 티켓을 구하지 못한 나는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구르기만 할 뿐,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Ticket?'

 

 짧지만 강한 외침이 내 귓바퀴를 때렸고, 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yes, plaese'

 

 

그는 본인이 바르샤의 광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있게 시즌권을 꺼내 보였다. 사람좋은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은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 같았다. 하지만 이어진 '400 euro'라는 멘트는 그의 수더분한 미소와 잘 어울리지 않았다.

 

'300 euro!' 나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려는 찰나, 옆에 있던 다른 할아버지가 내 팔을 잡아챈다.

 

'350, no more negotiation!'

 

대충 암표 가격이 350유로 정도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기에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Gracias' 

 

짧은 한마디를 뱉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더니, 할아버지 세 분이 미소로 화답하신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협상에 성공한 악당들처럼 서로를 마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주고 받았다.

 

 

불과 한 시간전에 ATM에서 인출한 따끈따끈한 지폐 넉장을 건넨 후, 경기장 입구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걸어가면서, 혹시라도 할아버지를 놓칠까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지만, 49번 게이트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티켓 확인과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허벅지에 뭔가 이상한 손길이 느껴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저씨 한 명이 먼저 들어가라며 손짓을 하며 매너 있는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내 바지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노린 소매치기였던 것! 손모가지를 잡아 비틀어버렸어야 했는데,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데다 상대방이 너무 태연하게 대응한 탓에 어버버하다 그 녀석을 놓쳐버렸다. 스페인 여행 중에는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자.

 

 

아침부터 입장권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막판에는 약간의 불쾌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경기장 입장에 성공했다. 엘 클라시코 직관이라니... 나에게 그 소중한 기회을 안겨준 할아버지 세 분과도 작별의 인사를 나눌 시간이다. 부디 350유로 가지고 술만 드시지 마시고 집에 케잌이라도 사가셨으면 좋겠다.

 

내 평생 기억 남을 엘 클라시코 직관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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