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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레디에이터의 배경, 아이트 벤 하두 투어기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 12. 20:30

 

내 이름은 막시무스,북부 군 총사령관이자 펠릭의 장군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복이었다. 태워 죽인 아들의 아버지이자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안 되면 죽어서라도...

- 영화 글래디에이터 中 -

 

△ 이미지 출처 : http://10-themes.com/425522.html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 영화 3개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나 홀로 집에, 타이타닉, 그리고 글래디에이터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의 세세한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 같은 무언가가 오래도록 남아있는 그런 작품들이다.

 

 

아마도 2000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아카데미 시상식 12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고대 로마제국을 현실감 넘치게 구현한 특수효과와 러셀 크로우의 인상적인 연기, 스펙터클한 배경이 어우러진 글래디에이터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대작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그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글래디에이터의 촬영 현장을 가보게 될 줄이야.

 

 

글레디에이터 뿐 아니라, 미이라, 알렉산더 등 헐리웃 영화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아이트 벤 하두. 감독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리 널리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사막 투어를 가는 사람들이 그냥 거쳐 지나가는 정도랄까?

 

차에서 내려 가이드와 인사를 나눈 후, 개울을 건너 아이트 벤 하두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마을 안은 무척이나 썰렁했다. 현재 10여 가구를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모두 개울 건너 신도시로 이주했기 때문이란다. 세계적인 영화 촬영지임에도 상권이 생기기는커녕 주민들이 떠나가다니... 모로코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유명한 영화 촬영지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마을 전체가 그냥 거대한 노점상 같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만 잔뜩 널브러져 있을 뿐이다.

 

 

가이드도 물건을 설명해 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냥 묵묵히 좁은 길 계단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갈 뿐이다. 강 건너편에서 보았을 때, 마을이 작은 언덕 형태였는데, 아마 마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올라가려나 보다.

 

 

얼마 못 가서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나왔지만, 일행 중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다들 지나쳐 간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오르막을 올라가니 다들 신경이 조금은 예민해져 있는 듯한 눈치다. 게다가 가게 주인도 딱히 물건을 팔려는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와서 추억을 더듬으며 사진을 보니, 이런 인형 하나쯤은 사서 가져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여행 중에는 짐이 된다는 이유로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는 편인데, 앞으로는 귀찮더라도 추억을 떠올릴만한 것들을 하나둘씩 모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트 벤 하두의 제일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경, 물이 다 말라서 개울이 되어버린 강 건너편으로 신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데서 내려다봐서 그런지 신 시가지는 비교적 평지에 자리 잡은 듯했다. 혹시 다들 비탈길을 오르기 싫어서 신 시가지로 이사를 가버린 것은 아닐까?

 

 

정상(?)에서 경치를 감상한 후,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그종안 보았던 상점과는 조금 다른 가게 옆을 지나게 되었다. 일행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타이거 우즈를 닮은 아저씨를 유심히 관찰한다. 한 손에는 돋보기를, 다른 한 손에는 골판지 비슷한 것을 들고 있는데, '어머나, 세상에' 돋보기로 나무를 태워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우와~ 이건 진짜 대박이다.' 다들 웅성거리며 신기해하는 눈치다. 그러나 역시나 그림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금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어느 커다란 가게 안이었다. 모로코 특유의 의상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아저씨가 우리에게 민트 티를 한 잔씩 내어준다. 이렇게 친절할 데가...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경험 상, 투어 중 이유 없는 호의를 받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부담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모로코 전통(?)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을 판매하는 곳이다.

 

 

설탕물에 샤프란이라고 하던가? 세탁 세제 이름의 그것과 뭐 아무튼 또 다른 무언가로 그림을 그린 후, 불에 가까이하면 마술처럼 그림이 형체를 드러낸다.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비슷한 걸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다들,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모며 지갑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한다.

 

 

벽에 가득 붙어있던 그림들 중, 유난히도 마음에 들었던 그림이다. '하나 사 올걸'하는 후회가 지금도 밀려온다. 왠지 저 맞은편에서 소리를 지르며 내 목을 따러 달려올 것만 같은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혹시라도 다음에 모로코에 또 가게 된다면 저것만큼은 꼭 사 와야겠다.

 

글래디에이터의 배경지라고 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투어는 그걸로 끝이 났다. 러셀 크로우 동상은커녕 '글래디에이터'라는 글자조차도 길거리 상점 벽면에 A4 용지에 인쇄된 단어를 본게 전부였다. '여기가 글래디에이터 촬영했던 곳이다.'라고 쓰인 그것 말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할만한 소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활용하기는커녕 설탕물에 그림이나 그려서 팔고 있는 이 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기왕에 설탕물 그림을 팔거라면 러셀크로우 초상화라도 그리든가...' 프랑스에서는 물도 '에비앙'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다 전 세계에 비싸게 팔아먹는데, 1900년대 초반 프랑스의 식민지이기도 했던 이곳 모로코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의 장사 수완을 배우지는 못했나 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뭐 하나 제대로 구경한 것도 없는데 투어 비용(40디르함, 4,800원)에 가이드 팁(10디르함, 1,200원)까지 내야 한다는 것이다. 뭐, 큰 돈은 아니지만, 기왕 투어 상품을 운영할 거라면 좀 제대로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제목만 보고 잔뜩 기대했을 독자들에게 별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지 못 해서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하다. 글래디에이터 대사까지 인용해가면서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이야기가 끝나면 얼마나 허탈할까? 그 심정은 내가 잘 안다. 아이트 벤 하두 투어가 끝날 때쯤 내가 딱 그랬으니까,

 

32. 글레디에이터의 배경, 아이트 벤 하두 투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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