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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그라나다의 상징 알함브라 궁전에 가다 (3편) - 왕들의 휴식처, 헤네랄리페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2. 21. 15:04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던 시절, 왕들의 여름 휴가를 책임지던 장소가 있었다. 나사리 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헤네랄리페 별장 - '낙원의 정원'이라 불리는 공간이 바로 그 곳이다. 감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 할 수 있는 그 곳이 알함브라 궁전 관람의 마지막 코스다.

 

 

알함브라 궁전을 빠져나와 좁은 흙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걷다보니 생각보다 길바닥의 흙이 부드러웠고 쭉쭉 뻗은 나무도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다. '하긴, 옛날에는 여기가 왕이 걷던 길이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감개가 무량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무 사이사이에도 조경이 칼로 베어낸 듯 깔끔하게 각이 잡혀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등을 돌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 멀리 알함브라 궁전과 함께 알바이신 지구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헤네랄리페는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걷다가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 이처럼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대신 걷는게 조금 빡세긴하다.

 

 

알함브라 궁전에는 유독 오렌지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얼핏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왕이 궁전을 산책할때, 하인들이 오렌지를 따서 발로 으깨어놓는다고 한다. 오렌지의 상큼한 향을 맡으며, 왕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은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생에는 꼭! 권력자로 태어나리라!

 

 

드디어 헤네랄리페에 도착했다. '헤네랄리페'의 스펠링이 마치 영어로 'General Life'처럼 보인다. 평범한 삶과는 무척이나 거리가 있을 법한 공간인데, 하필이면 "GENERALIFE'라니, 입구의 팻말이 뭔가 역설적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정원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주로 사막에서 생활하는 이슬람인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심신의 피로를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정원을 건축한다. 그래서 이슬람의 정원에는 반드시 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흐르는 물은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정원의 둘러싼 석조 건축물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헤네랄리페 중앙의 정원, '파티오 데 라 아세퀴아'의 모습, 길고 가느다란 수로를 가운데에 두고 수십개의 분수가 가느다란 물줄기를 공중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평화로운 정원에 앉아 정면에서 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여기가 지상낙원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당시에는 날씨가 매우 흐린데다 간간히 비까지 내려 감흥이 덜하긴 했지만, 뙤약볕이 내리는 한여름에는 헤네랄리페만한 휴식공간을 찾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분수와 초록으로 우거진 수풀, 그리고 알록달록 화려한 꽃들로 채워진 정원까지, 헤네랄리페가 괜히 왕들의 여름 별궁으로 유명세를 떨친게 아니다.

 

 

사진으로는 잘 담아내지 못했지만, 이 곳도 꽤나 독특하다. 넓은 연못 안에 작은 연못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 헤네랄리페 별장은 '딱 떨어진 대칭'를 컨셉으로 잡은 듯 하다. 아까 '파티오 데 라 아세퀴아'에서는 분수의 물줄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었다면 이 곳에서는 큰 연못 안의 정사각형의 작은 연못 두 개가 가운데 돌분수를 중심으로 마주보며 대칭 구조를 완성하고 있다. 이런 기하학적인 설계가 바로 이슬람 정원의 특징이라고 한다.

 

 

정원을 거닐다 지루해지면, 계단 등을 통해 건물 위로 올라가보자. 빼어난 전경까지는 아니지만, 정원에서와는 또다른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헤네랄리페까지 관람을 마치고 난 후, 그라나다 시내로 돌아가는 길. 택시나 버스 등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산책하는 셈 치고 슬슬 걸어내려가 보기로 했다. 참고로 시내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 걸리니,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길을 나서자. 호기롭게 길을 나선 나였지만, 좀 걷다보니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거리자체는 멀지 않았지만,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느라 체력이 거의 방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무아지경의 상태로 걷다보면, 개선문을 연상케하는 돌 벽(?)이 나타난다. 저기를 통과하면 드디어 그라나다 시내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돌 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꽤 괜찮은 펍이 하나 있으니, 'LOS DIAMANTES'를 구글맵에 입력해서 찾아가보자. 호스텔에서 새우 안주가 일품이라며 추천해준 곳이다.

 

 

나름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이른 오후 시간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후, 알함브라 맥주 한 잔과 새우튀김(Gambas fritas)을 주문했다.

 

 

호스텔 아주머니가 극찬했던 새우튀김의 모습! 오동통한 새우살을 한 입 베어물면, 탱글탱글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채운다. 머리와 꼬리가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어 먹기도 편하고 짭조름한 튀김옷에 레몬향까지, 맥주 안주로는 이 보다 더 좋은 안주는 없으리라! 

 

참고로 이 곳의 안주는 사이즈가 full과 1/2로 되어있는데,  혼자서 먹기에는 1/2 사이즈도 차고 넘치니 괜히 욕심을 부리지는 말자. 가격 차이가 얼마 안나서 full 사이즈를 주문할까 했는데, 보시다시피 1/2도 양이 푸짐하다. 처음에는 맛있다고 걸신들린듯 집어먹었는데 결국에는 배가 불러 일부를 남길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바로 가격! 맥주 한 잔과 새우튀김을 실컷 먹었는데, 고작 14유로가 전부다.

 

 

LOS DIAMANTES를 끝으로 그라나다의 일정도 어느덧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이번 여행의 종착지, 바르셀로나로 떠나야할 시간, 당시에는 여행의 끝이 보인다는 사실이 조금은 섭섭했는데, 지금은 포스팅 연재의 끝이 보인다는 사실에 뭐랄까 마음이 점점 후련해진다고나 할까?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연재를 얼른 마무리해야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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