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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그라나다의 상징 알함브라 궁전에 가다 (2편) - 나사리 궁,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2. 6. 08:00

 

티켓에 적힌 입장시간에 맞춰 나사리 궁으로 들어간다. 나사리 궁이라 이름 붙여진 공간은 총 3개의 궁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왕이 집무를 보던 메수아르 궁, 외교 사신을 영접했던 코마레스 궁, 그리고 왕의 숙소가 있는 사자의 궁이다. 나사리 왕조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에는 총 7개의 궁전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저 3개가 전부다.

 

 

나사리 궁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메수아르 궁은 좁은 골목(?)에서 시작한다. 약간은 단촐하게 나있는 입구 위로는 대리석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메수아르 궁은 대체로 소박한 편인데, 그나마 볼만한 곳이 이 곳, 왕의 기도실이다. 외국에서 외교 사절단이 오면, 의도적이로 이 곳에서 잠시 동안 머무르도록 했다. 왕의 기도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면, 알바이신 지구가 보이는데, 기둥을 교묘하게 배치해 마을의 끝이 보이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나사리 왕조의 영토라 끝없이 넓어보이게 함으로써, 이 곳을 통과하는 외교 사절단을 주눅들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공간이다.

 

 

저기 앞에 보이는 화려하제 장식된 문을 통과하면 코마레스 궁이 시작된다. 아까 왕의 기도실에서 나사리 왕조의 영토에 주눅들었던 외교관들은 이 곳에서 화려한 문양에 감탄하게 된다. 이 곳에서 안내에 따라 왼쪽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계단을 올라가게 되는데,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높은 사람은 만나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한다.

 

 

나사리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버티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외교력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외교력의 원천은 이렇게 심리학적으로 잘 설계된 나사리 궁에서 비롯되었다. 처음부터 위축되고 주눅든 외교관들이 제대로 된 협상을 할 리 만무하고,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나사리 왕조가 강성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전쟁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라나다의 하이라이트이자 온갖 블로그와 여행사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사진은 아라야네스 중정의 모습이다. 아라야네스란 천국의 꽃이란 뜻이라고 한다. 나사리 왕조 시절, 외교 사절이 이 곳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향긋한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한다. 

 

 

그 향기가 궁금하다면 사진을 찍는 척 하고 이 곳을 지키는 관리인 몰래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나뭇잎을 손으로 비벼보자! 천국의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인계 - 아름다운 여인을 통해 상대방의 전의를 빼앗는 계략을 일컫는다. 아라야네스 중정은 '미인계'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시각 뿐 아니라, 사절단의 청각과 후각을 공략해 혼을 쏙 빼놓는 것이다. 이 곳을 지나고 나면, 그들은 나사리 왕국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제대로 된 외교적 판단을 하기 힘든 지경에 놓이게 된다. 날씨가 맑았더라면, 중정 가운데 연못에 비친 건물의 모습을 좀 더 멋드러지게 찍었을텐데, 그게 아쉬울 따름이다.

 

 

아라야네스 중정을 지나 들어선 곳은 '대사의 방'. 드디어 이 곳에서 사절단은 나사리 왕조의 왕 또는 왕의 외교적 대리인인 대사를 만나게 된다. 위, 아래로 나 있는 아치형 창문은 역광과 후광을 적절히 만들어 내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사리 왕의 위용을 한층 강조함으로써, 심리적으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교묘하게 설계된 장치들 덕에 나사리 왕조는 약 250여년간 외교력은 앞세워 이베리아 반도에서 버틸 수 있었다.

 

 

삼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에는 별을 상징하는 8천여개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다.

 

 

뭔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찍어봤다. 근데, 무슨 뜻일까?

 

 

사자의 궁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라야네스 중정의 호수에 빗방울이 내려 앉는다. 젠장, 이놈의 날씨 때문에라도 그라나다를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나사리 궁의 마지막 코스, 사자의 궁이다.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바닥이 원래는 꽃밭이었다고 한다. 가운데에 12마리의 사자의 등위로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왕이 후궁과 바람이 난 귀족의 목을 베서 분수에 던져버려 한동안 사자의 입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는 아주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12마리의 사자가 동시에 피를 내뿜는다니, 상상만해도 몸서리가 처진다.

 

 

궁전인지 동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이 곳은 아반세라헤스의 방이다. 마호메트가 신의 계시를 받았던 동굴의 종유석을 그대로 표현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호메트가 신의 계시를 받는 장면은 이슬람교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다.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는 초승달과 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마호메트가 계시를 받고 동굴 밖으로 나와 가장 먼저 본 것이 초승달과 별이다. 야심한 밤, 아반세라헤스의 방 천장을 한 번 보고, 밖으로 나와 초승달과 별을 보는 것으로 '마호메트의 계시' 체험을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천장과 벽면에 새겨넣은 색채는 물감을 바른 것이 아니라 돌을 갈아서 만든 가루를 일일히 붙인 것이라고 한다. 특히나 파란색을 만들어내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는 '천금석'을 갈아야 하는데 당시 천금석의 가격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비쌌다고 한다.

 

 

왕이 살던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사자의 궁을 둘러보면, 화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사이좋은 자매처럼, 나란히 나있는 아치형의 창문때문에 두자매의 방이라 불리는 이 곳은 맑은 날 햇살을 받으면 벽이 황금빛을 띈다. 게다가 천장에 스테인글라스가 설치되어 있어 영롱한 무지개 빛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가까이 다가가면 아주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과 글자도 발견할 수 있다.

 

 

사자의 궁에는 미국의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머물던 방도 있다. 스페인에 미국 외교관으로 파견되어 알함브라 궁전에서 약 2달간 머무르기도 한 그는 당시 보고 느꼈던 점을 '알함브라의 전설'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알함브라 궁전에 관람객이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방 천장에 새겨진 'PLVS VLTRE'는 '보다 먼곳으로'를 뜻하는 라틴어라고 한다. 왜 저 글귀가 천장에 새겨져 있는지는 나도 잘 모름!

 

 

어빙의 방을 끝으로 나사리 궁 관람도 점점 마무리된다. 잘 관리된 정원과 아담한 분수, 날씨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정말이지 평생 단 한번만이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 '딱 하루만'까지는 아니고, 한 한달 정도만 이런데서 살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나사리 궁 뒤로는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눈 앞에 두고도 당시 왕들은 여름이 되면, 헤네랄리페라는 별장에서 휴가를 즐겼다고 한다. 다행히 헤네랄리페가 이 곳에서 멀지 않다고 하니, 나도 한 번 가서 구경이나 해봐야겠다. 헤네랄리페는 다음 포스팅에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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