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꽃보다 유럽

62. 어둡고 비장했던 바르셀로나의 밤(feat. 유로자전거나라)

비행청년 a.k.a. 제리™ 2017. 3. 17. 07:00

 

여행을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어떤 도시에 도착한 첫번째 날의 감정은 대개 비슷하다. 대중교통과 방향, 그리고 도시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되기 전까지 낯섦과 신기함에 둘러싸여 적당히 어리바리대다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자연스러워질때쯤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것이 배낭여행객의 일상이다.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는 아마 첫날밤이 아닐까? 야경이 궁금은 한데, '혹시나 위험하진 않을까?', '대중교통이 끊기면 숙소로 잘 찾아올 수는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호스텔 문지방은 마음 속으로 수십번은 넘나들곤 한다. 이럴 때, 한 줄기 빛과 희망이 되는 것이 있으니, 이름하여 '야경투어'.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를 둘러보는 야경투어는 람블라스 거리 어딘가에 위치한 '레알 광장'에서 시작한다. 유럽에서는 꽤 알아주는 투어사인 '유로 자전거나라'에서 운영하는 투어에 참여했는데, 그 외에도 꽤 많은 투어사가 야경 투어를 (대부분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야경투어의 출발지인 레알광장은 굳이 야경투어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 꽤 훌륭한 맛집들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고, 광장을 오가는 수 많은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곳에서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을 먹여살리고 있는 건축가 '가우디'의 처녀작을 만날 수도 있다.

 

 

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시에서 주최한 디자인 공모전에 응모해 당당히 합격했는데, 그 때 출품한 것이 바로 이 가로등이다. 그런데 솔직히 가우디의 이름을 떼고 보면, 뭐 그닥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요건 나중에 낮에 레알광장에 다시 가서 찍은 가우디 가로등의 모습. 전장에 나가는 군인의 투구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어두운 밤에는 보이지 않던 디자인적인 디테일이 살짝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참고로 레알 광장 바닥에는 가우디가 가로등을 디자인했음을 알려주는 글귀도 새겨져 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레알광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가이드를 비롯해 한 시간 반 정도 함께할 일행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산 펠리프 네리 광장'으로 이동했다. 왠지 모르게 음산한 분위기가 풍긴다 했는데, 이 곳은 '향수'라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처음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촬영된 장소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사진 왼편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산 펠리프 네리 광장은 사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장군이 이끌던 반란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지금도 광장을 둘러싼 건물 벽면에는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어두운 밤하늘과 총알 자국을 비추는 조명, 그리고 슬픈 역사가 어우러져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과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영화 '향수'의 사운드 트랙을 감상하며 광장을 빠져나오는데, 벽에 설치된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아까 레알 광장에서 봤던 가우디 조명보다 난 이게 좀 더 나은것 같은데?'

 

 

야경투어의 두번째 목적지는 '왕의 광장',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와 이사벨 여왕에게 항해 성과를 보고했던 곳이다.

 

 

사실 '왕의 광장'은 낮에 한번 스쳐 지나갔던 곳이기도 한데, 유럽의 다른 광장과는 달리 분위기가 조금은 무겁고 두운 편이었다. 그래도 역사적인 장소이니 만큼 저기 보이는 계단 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바로 저 계단 위에서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의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어둡고 좁은 고딕지구의 골목길을 걷다가 발견한 그림. 주변의 다른 돌과는 색깔이 달라 유난히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춤을 추는 사람 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뭔가 사소하지만 특별한 보물을 뱔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은 '바르셀로나 대성당'. 사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유명세에 밀려 그리 주목은 받지 못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바르셀로나의 '대'성당, 카테드랄인만큼 그 아름다움이나 규모가 상당하다. 1448년에 완성된 이 대성당은 높이가 무려 70m가 된다고 한다. 이왕이면 낮보다는 밤에 가 볼 것을 추천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정문을 환히 밝히는 조명 때문이다. 계단 중간쯤 위치를 잘 잡고 찍으면 나름 주님의 은총 가득한 천사를 연상케 하는 인생샷을 건질 수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보자.

 

 

물론 타고난 비주얼 때문에 이렇게 망할 수도 있지만...

 

 

카탈루냐 음악당을 마지막으로 야경투어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카탈루냐 음악당은 스페인의 3대 건축가로 꼽히는 도미니크 몬타네르가 1908년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밖에서 보는 모습도 충분히 멋지지만, 스테인글라스로 이뤄진 내부 인테리어가 정말 예술이라고 한다. 내부가 멋지다고 하니, 슬쩍 들어가 구경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여기서 열리는 공연 관람료가 꽤 비싸다고 해서 마음을 접었다. 그냥 나중에 기회되면 예술의 전당이나 한 번 가봐야겠다.

 

 

약 한시간 반 동안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의 밤거리를 누비며 참 야물딱지게도 돌아다녔다. 만약 혼자였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텐데... 처음 봤지만 그래도 한국어로 대화가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냥 지나쳤을 법한 것들도 조곤조곤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가이드 덕에 꽤 유익하고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번째 하루는 그렇게 알차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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