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어 내가 된 것인지,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도무지 모르겠나이다.
- 구운몽 中 -
꿈만 같았던 25일간의 유럽여행이 끝났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시차 적응 때문이었을까? 열 두어 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깨질듯한 두통과 함께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느낌이다. 기억이 더욱 흐려지기 전에 이번 여행을 기록해 둬야겠다.
이번 여행의 순간 순간에 대해서는 차차 포스팅하기로 하고, 오늘은 전체 여행을 간단히 요약해볼까 한다. 뭐 그냥 가벼운 예고편이라 생각해 주시길...
먼저 지난 25일 동안 찍었던 나라는 3곳, 바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다. 하지만 여행 대부분의 시간을 스페인에서 보냈고, 지나고 나니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대부분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포르투갈은 3일 밖에 머무르지 않아서인지 뭔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리고 모로코는... 음 뭐랄까... 나랑은 잘 맞지 않은 여행지였다는 생각? ㅋ
△ 마드리드에 도착한 첫 날부터 찾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사실, 이 순간에는 학교에서 준비한 공식 일정(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첫날부터 땡땡이를 치고 레알 마드리드와 비야레알의 경기를 관람했었다는...
여행 초반 마드리드에 머물렀던 1주일은 학교 프로그램 교환과정(?)에 참여했던 기간이었다. 그래서 일반 여행객들과는 다른 라이프 사이클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당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마드리드를 '막상 가보면 별로 할 것 없는 곳'으로 평가한다. 나는 그런 의견에 반 정도 공감하고, 반 정도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관광지로서는 사실 별 볼일 없는 곳일지 몰라도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삶을 체험하기에는 매우 좋은 곳이었다. 내 경우에는 같이 수업듣는 애들과 함께 현지 생활을 체험할 기회를 꽤 많이 누린 편이었고, 그래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이곳에서 레알마드리드와 비야레알의 경기, 현장에서 호날두의 삽질을 직접 보았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경기장 투어도 했는데 만족도는 단연 ★★★★★.
<관련 포스팅 : 04. 짜릿했던 스페인에서의 첫날밤, 프리메라리가 직관 후기>
△ 루이스 1세 다리에서 내려다 본 포르투 전경
여행책자와 각종 블로그에서 하도 많이 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직접 보면 사진 그 이상의 감동이 밀려온다.
마드리드에서의 긴 여정을 마친 후, 포르투갈의 포르투(오포르투)로 이동했다. 어쩌면, 본격적인 여행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하는 여행이어서 조금은 외롭기도 하고 가끔은 심심하기도 했는데, 특히 밥 먹을 때나 사진 찍을 때는 동행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워낙 작은 도시라 1박 2일의 일정이었음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포르투갈 근처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꼭 한번 시간내서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도시다.
<관련 포스팅 : 18. 포르투 최고의 핫 플레이스 (1편) - 밤에 더 아름다운 동 루이스 다리>
△ 서쪽으로 저무는 태양, 그리고 호카곶 기념비
버스 시간 때문에 일몰을 끝까지 즐기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던 순간이었다.
포르투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호스텔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꽤나 많이 만났다. 이미 리스본을 여행하고 포르투로 오신 분들이 많았는데, 그 분들이 한결같이 추천한 곳은 바로 '신트라'. 리스본 외곽에 위치한 지역인데, 이 쪽에 볼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일정상의 문제로 원래는 '포기했던 곳이었지만, 수 많은 분들의 추천으로 계획을 조금 수정했다. 포르투에서 자정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새벽에 리스본에 도착, 호스텔에 짐을 던져두고 신트라로 향하는 '엄청 빡센' 하루를 보냈지만,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첫날 아제나스 두마르, 무어인의 성, 페냐성 그리고 호카 곶까지 신트라 곳곳을 샅샅히 훑었다. 리스본으로 가시는 분들은 호카곶의 일몰을 반드시 감상하시길!!
<관련 포스팅 : 27. 대륙의 서쪽 끝, 호카곶에서 석양을 바라보다.>
△ 메르주가 사막투어
모로코 여행의 꽃 사막투어, 난생 처음 탄 낙타는 생각보다 편안했고, 사막 역시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것은 바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아프리카도, 이슬람 국가도 내게는 생전 처음으로 가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메르주가 사막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겠지만, 모로코 여행 전반에 대한 인상은 사실 그리 좋지 않았다. 구글 맵에 비해 정확하지 않으면서도 팁을 요구하는 삐끼들과 저렴하지만 딱 그만큼의 시설만 갖춘 숙소, 복잡한 도로와 매연 등 지나고 나니 부정적인 기억이 더 많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니, 모로코 여행을 계획중이신 분들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관련 포스팅 : 35. 낙타 등 위에서 내려다 본 사하라 사막,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지우다.>
△ 세비야 대성당 안에 위치한 콜럼버스의 관
죽어서라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결연한 의지와 그 의지 때문에 관을 메고 있는 4명의 왕
모로코에서 세비야로 넘어온 뒤로는 날씨가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매년 부활절 즈음해서는 스페인에 항상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이 때부터는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날씨를 체크했던것 같다. 그 좋다는 스페인 광장도 흐린 날씨 탓에 제대로 카메라에 담아 올 수 없었고, 세비야 대성당에서는 뭐가 뭔지 몰라 벙찐 상태로 셔터만 눌러댔던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다시 방문해 세비야를 제대로 즐기리라...
<관련 포스팅 : 45. '죽어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 콜럼버스의 유언을 지킨 4명의 왕>
△ 누에보 다리, 그리고 파라도르 론다 호텔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그리고 찍으러 내려가는 동안에도 기분이 최고였다. 하지만 다 찍고 올라갈 땐?
스페인 남부의 작은 도시, 론다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당일치기로 찾는 곳이다. 예전에 꼬꼬마 시절, 관광산업에 대한 보고서를 쓰면서 언제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보고서에서 인용했던 '파라도르 론다'에서 1박을 했는데, 혼자였다는 것 말고는 완벽했던 1박 2일의 시간이었다. 흔히 누에보 다리와 절벽 말고는 볼 게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사실이다. 다만, 언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 함정. 당일치기로 여행하기에는 야경이 너무나 아까운 장소이기도 하다.
<관련 포스팅 : 49. 절벽 위의 작은 마을, 론다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이유>
△ 알바이신 지구에서 본 그라나다 궁전
부족한 촬영 실력 때문에, 그라나다 궁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지 못했으니, 꼭 가서 직접 확인하시길...
그라나다 부터는 현지 가이드 투어를 적극 활용했다. 몇 년전, 이탈리아에서 만족도가 높았던 유로 자전거나라 투어를 이용했는데, 역시 자전거나라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과 적절한 BGM은 알바이신 야경과 알함브라 궁전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훨씬 배가시켜 주었다. 그라나다는 이슬람 건축물과 음료를 주문하면 안주를 공짜로 주는 '독특한 문화' 탓에 스페인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니, 여행 계획을 짤 때 빠트지리 않기를...
△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사실 유럽의 성당은 다 거기서 거기라, 여행 초반에 몇개만 보고 나면 더 이상 볼만한게 없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만 제외하면,
궂은 날씨 탓에 바르셀로나를 한 70% 정도 즐겼을라나...? 몬주익 언덕에 올라도 안개 밖에 없었고, 날씨 탓에 몬세라토 관광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바르셀로나는 이번 여행에서 세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만족도 높았던 도시 중 하나다. (총 방문 도시가 8개인 것은 함정) 평생 잊지 못할 엘클라시코 직관의 영광을 선사해 준 곳도 바로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앞에서는 언젠가 이 성당이 완공되면 바르셀로나를 다시 한 번 찾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도시별로 간단하게 느꼈던 점을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할 말이 마구마구 샘솟는 것을 보니, 본 게임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알찬 '썰'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대가 된다. 글을 시작할때만 해도 희미해진 기억 탓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그 당시의 느낌과 생각이 '아직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최대한 빨리, 그 순간 순간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나에게도, 그리고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좋을 것 같으니, 당분간은 여행 포스팅에 집중할 생각이다.
그럼, 맛보기는 여기까지... 본 편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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