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14

40. 그 곳은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 밤에 더 밝게 빛나는 제마 엘프나 광장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마조렐 정원을 뒤로하고 마라케시 메디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일단은 좀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로코에 머무르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이 조금은 무뎌지고, 그림자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마라케시의 색깔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길가의 야자수 나무 뒤로 보이는 것은 이슬람 3대 사원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다. 쿠투비아 모스크의 높이는 67m로 마라케시 시내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랜드마크다. 기왕 지나가는 김에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제마 엘프냐 광장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지만, 광장은 노점..

39. 입생로랑이 사랑한 코발트 블루의 세상,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모로코 삐끼와 한바탕 설전을 치르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아둥바둥대야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고 기분이 크게 상해버려서 다 때려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문제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켜고 위치를 확인해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것보다 다음 목적지가 그나마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혹시라도 또 방향을 잊을까 두려운 마음에 큰길을 따라 다시금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생전 처음보는 건물과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당시에는 당나귀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를 붙잡고 히치하이킹이라도 하고 싶은 ..

38. 다시 찾은 마라케시, 모로코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길을 잃다.

에싸우이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마라케시, 벌써 세번째 방문이다. 처음에는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탔고, 사하라 사막 투어를 마친 뒤에는 봉고차로, 그리고 이제는 에싸우이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을 거쳐 메디나로 들어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받걸음에 여유가 묻어났다. 터미널 인근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와 모처럼만에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다. 오전의 제마 엘프냐 광장은 마치 예전 여의도 광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지난 밤에 보았던 화려하고 북적이는 모습과는 천양지차! 문득 '낮져밤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스쳐간다. 광장에서 갈라져 나오는 수많은 골목길마다 모로코 사람들의 일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

37. 여행의 묘미, 예정에 없던 곳에서 뜻밖의 추억을 건지는 것 - 모로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여행을 시작하기 전, 모로코하면 '사하라 사막'이 먼저 떠올랐는데, 여행이 끝나고도 1년도 더 지난 지금은 모로코하면 '에사우이라의 바다'가 떠오른다. 여행이라는게 그렇다. 낯선 곳으로 떠나기 전에는 괜한 불안감에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아 계획을 짜곤 하지만,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여행지에 대한 느낌은 각자 다르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여행은 100% 계획된대로 움직이기보다는 70%의 계획과 30%의 우연을 버무리는 것이 좋다. 물론 사람마다 계획과 우연의 최적비율은 저마다 다르리다. 예정에 없던 도시, 에사우이라의 숨겨진 모습을 찾으러 가볼까? 메디나를 벗어나 서쪽으로 조금만 걷다보면 짠내 가득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작은 건물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항구..

36. 대서양만큼이나 파란 하늘을 품은 도시, 에사우이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낸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뒤로 하고, 마라케시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장장 열 두세시간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사실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 그 멀고 먼길을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메르주가에서 페즈로 넘어가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택시기사와의 흥정이 필수다. 참고로 페즈까지는 차로 8시간 정도 소요되며, 가격은 1,000~1,500디르함(12만원~18만원) 정도(2015년 기준)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일행 중에 유일하게 페즈로 넘어가는 타츠야가 택시 기사에게로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밴으로 돌아와 짐을 챙겨 가는데,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서너명이 함쎄 이동하면 개인 부담이 확 줄어드는데, 택시 기사 말로..

35. 낙타 등 위에서 내려다 본 사하라 사막,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지우다.

눈앞으로 황량한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부터가 사막이라고 가이드가 넌지시 내게 말을 건넨다. 드문드문 푸른 잎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그동안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사막과는 조금 달랐지만, 아무렴 어떨까? 이곳이 바로 사막이라는데, 벌써 몇 달전, 아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으로부터 일 년도 훨씬 더 된 그 때, 모로코 여행을 처음 계획했던 그 순간부터 꿈에 그리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벌어지기 직전이다. 사막을 걷는 여행자라니,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순간까지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들 각자 알아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짐을 챙긴 후, 사막을 함께 누빌 낙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하라 사막의 주차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곳에서는수십 마리의 낙타가 다소곳이 앉아 우리의 간..

34.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베르베르족 마을과 토드라 협곡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또다시 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는 왠지 어제 봤던 것만 같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분명히 어제 하루 종일 차로 내달렸는데, 아직도 사하라 사막까지는 한참 남았다고 한다. 약간의 멀미와 피곤함에 어느새 눈이 점점 감긴다. 마라케시에서 시작하는 사막투어는 그야말로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는 모로코의 풍경, 황톳빛 땅과 푸른 하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처음에는 '안 그래도 나무가 없어서 활량한 땅에 건물까지 황토색으로 지어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자꾸 보다보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싶다. 나도 모르게 모로코에 정이 들었나보다. 잠깐 쉬어가는 길에 만난 모로코 소년, 곱슬곱슬한 머리에 동그란 얼굴과는 달리 꽤 시크한 매력을 가진 남자아이다. 사진을 찍거나..

33. 사하라 사막은 어디에...? 지루하게 흘러간 사막 투어의 첫 번째 하루

조금은 허무했던 아이트 벤 하두 투어가 모두 끝났다. 짧은 자유시간 동안 각자 흩어져 사진을 찍은 후, 가이드를 따라 마을을 내려왔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쳐버렸다. 빨리 차로 돌아가 물이나 한 잔 들이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이드를 따라 차로 돌아가는데, 강 위로 세워진 튼튼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마을로 들어갈 때에는 징검다리를 건너느라 동네 꼬마들에게 팁을 삥 뜯겼는데 말이다. 가이드와 현지 주민들 사이에 은밀한 커넥션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던 순간에 저 멀리서 후다닥 달려오시는 분은 우리 일행 중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할머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할머니를 놓고 떠날까 봐 달려오시는 것 같다. 무릎이 안좋으신지 마을로 향하는 내내 ..

32. 글레디에이터의 배경, 아이트 벤 하두 투어기

내 이름은 막시무스,북부 군 총사령관이자 펠릭의 장군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복이었다. 태워 죽인 아들의 아버지이자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안 되면 죽어서라도... - 영화 글래디에이터 中 - △ 이미지 출처 : http://10-themes.com/425522.html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 영화 3개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나 홀로 집에, 타이타닉, 그리고 글래디에이터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의 세세한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 같은 무언가가 오래도록 남아있는 그런 작품들이다. 아마도 2000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아카데미 시상식 12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고대 로마제국을 현실감 넘치게 구현..

31.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 모로코 사막투어의 긴 여정을 시작하다.

새벽 6시 30분, 귓가에 울리는 우렁찬 알람소리와 발가락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까끌한 이불의 감촉이 조금은 낯설었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의아함과 함께, '아! 모로코에서의 하루가 꿈이 아니었구나'하는 깨달음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래, 지금은 모로코를 여행 중이다. 그리고 재빨리 일어나 사막투어를 출발해야 한다. 시간이 넉넉치 않음을 느끼고 서둘러 샤워를 한 후, 짐을 챙겨 리아드를 나섰다.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온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어딘지 모를 공터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사막으로 떠나는 수많은 관광객들과 그들을 실어나를 자동차들로 제법 북적이고 있었다. 간단하게 이름을 확인한 후, 한 무리의 사내들의 안내에 따라 벤에 몸을 실었다. 투어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