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48

73. [에필로그] 여행의 끝은 또 다른 일상의 시작

내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어 내가 된 것인지,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도무지 모르겠나이다. -구운몽 中- 지금으로부터 약 2년 반 전, 그러니까 2015년 3월 말 남유럽 여행기 연재를 시작하며 인용했던 구절이다. 평생 처음으로 한 달 여의 긴 여행이 끝난 후, 당시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글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기 연재를 끝내는 지금 나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문구이기도 하다. 2015년 3월 말, 여행기 연재를 시작할 때 만해도 이게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 달도 채 안되는 여행 이야기를 3년 가까이 질질 끌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무리 핑계를 대도 작가의 게으름 때문이다. 지난 3년 여의 시간동안 귀찮음과 사투를 벌여가며 글을 ..

72. 바르셀로나의 잠 못 이루던 밤(feat. 야경 핫스팟, 티비다보 미라베 레스토랑)

똑같이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지만, 그 도시 주민과 여행객이 느끼는 감정은 180도 다르다. 누군가는 지금 이 열차를 내일도 모레도, 또 한 달 뒤에도 똑같이 타고 내리겠지만, 여행자는 평생 다시 이 장소에서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여행의 매 순간은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이다. 마치 시한부 환자의 하루하루처럼, 바르셀로나에서의 시한부 삶이 서서히 끝나간다. 어느 새 이번 여행의 마지막 저녁.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이 곳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장소가 어디일지 한참을 고민해본다. 4박 5일간의 비교적 여유있는 일정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에서부터 구엘공원, 몬주익 언덕 등 주요 관광지는 물론 캄프누 경기장에서 엘 클라시코까지 관람한 터라 여행 명소에 대한 목마..

7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 산파우 병원 방문기

한 달여간의 배낭여행을 시작하며 집을 나서던 순간이 떠오른다. 몇 번이고 확인한 후 꾸린 배낭을 들쳐메고서 그래도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괜스레 방안을 수차례 돌면서 이것저것 훑어보고 현관문을 나서면서도 몇 번씩이나 뒤를 돌아보았던 그 순간 말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에서의 일정이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 달여간의 배낭여행의 종착지, 바르셀로나에서도 이제 왠만큼 볼만한 것들은 다 본 것 같다. 그래도 혹시라도 빠뜨린 것은 없는지 괜히 블로그와 여행 책자를 뒤적여본다. 마치 여행을 시작하며 집을 나서던 그 때처럼, 그렇게 한참을 검색하다 찾아낸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으로 알려진 산파우 병원, 이번 여행의 사실상 마지막 날 아침, 호스텔을 나서 산파우 병원으로 ..

70. 내 인생 최고의 90분, 엘클라시코 직관기 (2편) - 마! 이기 축구다. 아나?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그 현장에 내가 있다니... 초록의 잔디와 칠흑의 하늘의 경계선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전광판에는 엘클라시코를 알리는 양팀의 앰블럼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상 낙원(地上樂園)' 2015년 3월 22일의 캄프누는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었다. 단언컨데 35년을 살면서 한 공간에 모인 사람 전부가 이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축구가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두 빅클럽의 경기는 마치 미-소 냉전 시대처..

69. 내 인생 최고의 90분, 엘클라시코 직관기 (1편) - 티켓 찾아 삼만리

El Clasico, 굳이 번역을 하자면, 전통의 라이벌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냥 레알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간의 경기라고 하자. 어차피 그 때 말고는 들을 일이 없는 단어니까. 엘 클라시코는 비단 스페인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끄는 경기다.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어하는 그 경기를 만약 내가 본다면? 그런데 그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맙소사! △ 사진출처 : https://www.sbat.com/football/news/how-to-watch-el-clasico 때는 바야흐로 2015년 3월 22일, 전 세계 축구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기가 열리는 그날, 나의 스페인 여행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스페인 여행의 종착지가 ..

66. 구엘과 가우디가 꿈꿨던 바르셀로나 상류층을 위한 신도시, 구엘공원

20세기 초, 카탈루냐 지역의 부호였던 에우세비 구엘은 자신이 후원하던 건축가 가우디를 불러 마음 한 구석에 꼭꼭 숨겨두었던 야심찬 계획을 털어놓는다. "바르셀로나 외곽에 영국 귀족의 정원을 닮은 전원도시를 건설합시다. 아름다운 공원을 만들고 한 50~60개 가구가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를 지어 돈많은 사람들에게 분양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이 그동안 꿈꿔왔던 아름다운 건물들을 마음껏 지어보시오. 당신은 재능을, 그리고 나는 돈을 여기에 한 번 있는대로 쏟아부어 봅시다." 그로부터 14년간 가우디는 구엘의 뜻대로 신 시가지 건설에 온갖 노력을 쏟는다. 하지만 이 공사는 구엘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규모가 큰 사업이었다. 중앙 광장과 건물 두 채가 완성될 무렵 구엘의 잔고는 바닥나기 시작했..

65. 곡선이 만들어낸 건축의 미학, 까사바트요 & 까사밀라

사그라라 파밀리아의 진한 감동을 가슴에 품은 채 지하철을 타고 '그라시아 거리'로 향했다. 서울로 치면 청담동 갤러리아 명품관 주변에 해당하는 그라시아 거리는 전 세계적인 명품 매장이 많아 여자 관광객들이 주로 선호하는 장소다. 명품 매장이 많다고 했지, 싸게 판다고는 안했으니, 각자 판단은 알아서 하시고, 평일이라 그런지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익숙한 명품 매장이 나타났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직진했다. 내가 그라시아 거리에 온 이유는 쇼핑이 아니라 가우디의 또 다른 역작, 까사바트요와 까사밀라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눈 앞에 나타난 까사바트요. 1900년대 초반, 이 곳 그라시아 거리는 당시 내노라하는 건축가들이 각축을 벌이던 전쟁터였다. 저마다 화려한 디자인을 앞세워 건축미를 뽐내던 춘추전국시..

64.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천상의 아름다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속살을 파헤치다.

천재(天才), 하늘이 내린 그의 재주는 시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을 준다. 가우디의 재능은 신이 그에게, 그리고 바르셀로나에 내린 커다란 축복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우디가 평생을 바친 역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건축이 진행 중인 대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평생동안 직접 보는 것은 물론 단 한번도 상상치도 못했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의 다리뼈를 닮은 듯한 기둥과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내리쬐는 빛,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데, 그냥 할..

63. 아직도 진행 중인 가우디의 원대한 계획,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천재라 불리우는 한 남자가 있었다. 당대에도 그랬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건축가였던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성당을 짓고 싶었다. 어마어마한 크기는 물론 내, 외부에 디테일한 디자인을 새겨 넣기 위해 그는 평생을 그 성당에 매달려왔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고 오로지 성당 건축에만 신경을 쓰던 그는 길을 건너다 달려오는 전차를 보지 못하고 그만 전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답지 않은 허름한 옷차림 탓에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받은 그는 그렇게 쓸쓸히 숨을 거둔다. 바르셀로나, 아니 스페인이 자랑하는 세계적 건축가였던 가우디는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쓸쓸히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숙원사업이었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은 내노라하는 후..

62. 어둡고 비장했던 바르셀로나의 밤(feat. 유로자전거나라)

여행을 아무리 오래 하더라도 어떤 도시에 도착한 첫번째 날의 감정은 대개 비슷하다. 대중교통과 방향, 그리고 도시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되기 전까지 낯섦과 신기함에 둘러싸여 적당히 어리바리대다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자연스러워질때쯤 새로운 도시로 떠나는 것이 배낭여행객의 일상이다.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최고조에 이르는 때는 아마 첫날밤이 아닐까? 야경이 궁금은 한데, '혹시나 위험하진 않을까?', '대중교통이 끊기면 숙소로 잘 찾아올 수는 있을까?' 하는 불안감에 호스텔 문지방은 마음 속으로 수십번은 넘나들곤 한다. 이럴 때, 한 줄기 빛과 희망이 되는 것이 있으니, 이름하여 '야경투어'. 바르셀로나의 구시가지를 둘러보는 야경투어는 람블라스 거리 어딘가에 위치한 '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