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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집시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 사크로몬테 집시촌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1. 28. 08:30

 

집시(Gipsy),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경계하는 단어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등 유럽 어느 국가를 여행하든 인터넷에서 정보를 뒤지다 보면, '요새 경기가 안좋아져서 ㅇㅇㅇ에도 집시들이 국경을 넘어 많이 유입되었어요. 그래서 소매치기가 부쩍 늘었다고 하네요.' 류의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정설은 전해지지 않지만, 흔히 유럽의 집시는 인도에서 넘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영국에서는 처음에 집시가 이집트 사람인줄 알고 'Egyptian'이라도 불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Gyptian(집시안), Gipcy, Gipsy 순으로 단어가 변했다고 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 또 한편으로는 집시가 원래는 기마민족이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용병으로 활약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특히 여자들은 점성술에 조예가 깊어 사람들 손금을 봐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카톨릭이 유럽에 뿌리를 내리면서 집시의 점성술 문화를 이단 취급하면서 결국에는 집시들에게 핍박의 시대가 열리고야 말았다. 

 

 

여기 이 곳, 그라나다에는 집시들이 모여사는 '집시촌'이 있다. 집시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함께 급기야 집시가 식인종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게 되면서, 집시는 유럽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그라나다 북동쪽의 사크로몬테(Sacromonte)라는 작은 산의 경사면에 동굴을 파고 생활하게 되는데, 동굴 속에서 서글픈 그들의 운명을 노래하면서, 그라나다 특유의 동굴 플라멩고가 탄생하게 된다.

 

* 관련글 : 54. 알바이신을 채운 집시의 열정 - 그라나다 동굴 플라멩고 공연

 

 

지금도 언덕 곳곳에 집시들이 생활했던 동굴의 흔적이 남아있다. 1970년대 들어 국적을 부여받아 정식 스페인 국민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집시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지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크로몬테는 언덕이라고 하기엔 조금 높고, 산이라고 하기엔 다소 낮은 높이다. 뭐 적당히 알바이신 지구의 뒷동산 쯤이라고 해두자. 그라나다가 카톨릭 세력에 함락된 후, 무어인들은 알바이신 지구로 도망쳐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라나다는 크게 카톨릭 지역, 유대교 지역, 이슬람 지역으로 이뤄져 있는데 마지막까지 이슬람 교도들이 머물렀던 알바이신이 바로 이슬람 지역이다. 이 곳, 사크로몬테는 그 알바이신 지구 중에서도 더 험하고 외진 곳이다. 카톨릭이 이 곳 그라나다를 점령한 이후, 이슬람 교도들과 집시들은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지금은 그래도 번듯한 집을 짓고 살지만, 아주 오래 전에는 다들 동굴 속에서 살았을 것이라 생각해보니 문득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금도 알바이신 지구는 우범지역이라 늦은 시각에는 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옛날에는 분위기가 더욱 음산했겠지? 실제로 동네 골목을 산책하면서 관광객 몇 무리 외에는 사람을 만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아기자기하게 볼거리가 많은 동네임은 분명하다. 70년대 산동네를 연상시키는 빈티지한 분위기랄까? 허름한 지붕과 하얀 회벽, 그리고 자갈이 드러난 바닥이 운치있는 콜라보를 만들어낸다.

 

 

이리저리 한참을 걷다보면 뭔가 추상미를 가진 담벼락도 만날 수 있다. 하얀 집을 지어 벽에 접시를 걸어놓는 것은 스페인 남부 지역의 독특한 특징이다. 워낙 날씨가 덥고 햇볕이 뜨거워 빛을 반사시키기 위한 것이라 한다.

 

 

베란다 난간에 아슬아슬 올려진 화분과 하얀 벽면에 붙은 화려한 접시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집도 있었다.

 

 

워낙 골목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보니, '이건 언제 찍었지?' 하는 사진도 나온다. 하긴 저 때로부터 벌써 1년 반도 넘는 시간이 흘렀으니 생생히 기억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구불구불 좁은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저 건물은 아마 이슬람 사원이 아닐까? 첨탑에 종이 있는 것을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아니면 말고 뭐...

 

 

위로, 위로 꾸준히 올라가다보면 알함브라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가 나온다. 사진 속 건물은 '산 니콜라스 성당', 역시나 이슬람 사원 위에 덧대어 지은 성당이라 하나의 첨탑을 가진 좌우 비대칭 건물이다. 입장료를 내면 예배당 안에 있는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그냥 밖에서 봐도 알함브라 궁전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밤에 야경을 봤던 곳이기 때문에 감동이 살짝 덜하긴 했다. 아경이 훨씬 아름다웠기 때문에 괜히 또 왔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깔끔한 사진을 한 장 건졌으니, 블로그 독자들을 위한 것이라 해써 의미부여를 해보자.

 

 

뭐 알함브라를 빼면 밤 보다는 낮 풍경이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밤에는 이런 마을 전경을 감상할 수도 없고,

 

 

요렇게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도 만날 수 없으니 말이다. 쓱싹쓱싹 알함브라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어젯밤의 내 카메라보다 훨씬 훌륭한 솜씨다. 심지어 무료로 그림을 나눠주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화가였다. 그나저나 무료였는데, 왜 그림 한 장 안 얻어왔을까? 구겨질까봐 그랬나..? ㅡ.ㅡ;;

 

 

그림을 얻는대신,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위안이랄까? 보면 볼 수록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림솜씨다. 알함브라 궁전도 그렇지만 테두리의 문양까지 그야말로 대박! 이런걸 연필 한 자루로 쓱싹쓱싹 그리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축복받은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낮과 밤, 그리고 스케치에서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알함브라의 진면목은 다음 포스팅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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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미슐랭 별이 셋! 세비야 최고 맛집, 'Casa la Viuda'(까사 라 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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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알바이신을 채운 집시의 열정 - 그라나다 동굴 플라멩고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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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집시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 사크로몬테 집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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