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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드디어 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에 첫 발을 내딛다.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12. 7. 07:30

 

 

아프리카. BJ의 눈웃음과 별풍선이 난무하는 인터넷 방송국 이야기가 아니다. 사자와 얼룩말이 뛰어노는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를 내가 여행하게 될 줄이야!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베리아 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모로코는 사실 정통(?) 아프리카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문화적으로는 중동에 더 가까운 나라가 아닐까? 일단 아랍어를 쓰는데다, 국민의 약 99%가 이슬람을 믿는 것만 봐도 그렇다. 뭐 그래도 어찌되었든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나라가 아닌가? 이제 나도 새로운 대륙에 발을 내딛는거다.

 

 

리스본을 떠나 카사블랑카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내가 모로코로 여행을 가는 중이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살면서 코카콜라를 수천번은 마셨겠지만, 이때의 코카콜라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랍어로 정확하게 적힌 '코카콜라'라는 문구가 이 날 따라 유난히도 눈에 쏙 들어왔다.

 

 

리스본에서 비행기로 약 4시간을 날아 드디어 마라케시 공항에 도착했다. 모로코의 수도인 카사블랑카에 들러 비행기를 갈아탔는데, 아프리카의 작은 공항에서 국내선을 환승하는 것이라 만만히 보았다가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이상하게도 공항 안에서는 바깥 세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무리의 사내들과 낯선 비행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하여 'UNITED STATE OF AMERICA'. 혹시, 오바마가 이 근처에 있는 건 아닐까?

 

 

계속 주위를 두리번대다가 공항 안으로 들어왔더니, 눈 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모로코라고 하면 그냥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정도로 생각했는데, 공항 터미널은 유럽의 그 어떤 공항보다도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새하얀 건물에 유리창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아랍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나 할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곳 마라케시 메나라 공항은 영화 '섹스 앤 더 시티2'에도 등장하는 나름 유명한 장소라고 한다.

 

 

마라케시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버스를 이용해서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공항에서 나와 왼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19번 버스를 타면 30디르함(약 3,600원)에 시내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에 오른 뒤, 배낭을 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리면 되는데, 잘 모르겠다면 버스기사분께 제마 엘프냐 광장 근처에서 알려달라고 하자. 참고로 왕복 티켓은 50디르함(약 6,000원)이고, 공항으로 올 때에는 내렸던 장소에서 같은 버스(19번)를 타면 된다.

 

물론 일행이 많다면, 택시를 타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다. 통상적으로 100디르함(약 12,000원) 정도라고 하는데, 뭐 다들 아시다시피 이 곳 모로코는 뭐든지 흥정하기 나름이다. (1디르함 = 약 120원)

 

 

버스에서 내려 미로같은 메디나를 지나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사실, 블로그를 검색하면서 눈여겨 봐둔 숙소가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영업을 하지 않더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적당한 숙소를 찾아볼까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삐끼들이 나에게 악마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아... 안돼... 안된다고...'를 되뇌여 보았지만, 나의 발걸음은 녀석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녀석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은 'Amourd' Auberge'라는 리아드였다. 정확한 숙박비가 생각이 나진 않지만, 하루에 100~150디르함사이였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객실도 꽤 깔끔한 편이고, 시내 중심가인 제마 엘프냐 광장과도 가까워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삐끼'.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다고, 당당하게 팁을 요구하는데... 모로코 삐끼의 악명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놈을 그 중에서도 꽤 악질이었다. 동전 몇 개를 쥐어주며 돌려보내려 했지만, 결국 10유로를 쥐어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함께 따라온 꼬마 삐끼한테도 팁을 별도로 챙겨주라니... '아! 여기가 진정 모로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삐끼가 자리를 떠난 뒤에서야 리아드 주인에게서 '아까 그 놈이 꽤 독한 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앞으로 일주일 간의 여행이 힘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배낭을 들쳐메고 모로코 여행을 하다보면, 반드시 묵게 되는 곳이 바로 모로코의 전통 가옥, '리아드(Riad)'다.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려 있고, 내부에 정원을 갖춘 것이 특징인데, 전통 양식을 유지한 채로 약간의 리모델링 후 숙박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리아드의 가장 큰 매력은 곳곳에 묻어있는 엔티크함이라고나 할까? 수돗물이 졸졸졸 약하게 흘러나오지만, '이 또한, 모로코의 멋이구나'하며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는 곳. 밤에 외풍이 좀 심하면 어떠한가? 카운터에 이야기해서 담요를 몇 장 더 얻어 덮으면 되지. 모로코는 그렇게 즐기는 거다.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특히, 제마 엘프냐 광장은 '아까 오후에 지나쳤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광장 중앙을 빼곡히 채운 포장마차(?)부터 시작해서, 코브라를 일으켜 세우는 피리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문신을 새겨주는 할머니까지 그야말로 난리부르스다. 구경할 것은 많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광장에 펼쳐진 수많은 식당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종이가 깔린 플라스틱 테이블 위로 빵과 함께 무심하게 던져진 올리브. 하나씩 집어먹으면 묘한 중독성때문에 좀처럼 끊기 힘든 음식이다. 참고로, 이 곳 제마 엘프냐 광장에서는 식전 빵과 올리브가 '유료'로 제공된다. 뭐, 사실 한국이나 반찬이 공짜로 나오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따로 주문하지 않은 것이라도 일단 손을 대면 돈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다. 하지만 식전 빵 치고는 꽤 가격이 쎈 편이니,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이걸로 허기를 달랠지는 각자가 잘 판단하시길...

 

 

아무튼 나는 올리브와 식전 빵에 낚이고 말았다. 그리고 빵을 적당히 뜯어먹는 동안 주문한 '치킨 따진'이 내 앞에 도착했다. 모로코의 대표음식이라 할 수 있는 '따진'은 고기를 야채, 과일 등과 함께 푹 쪄낸 음식이다. 맛은 뭐랄까, 닭도리탕과 찜닭의 중간 정도의 느낌이다. 모로코 특유의 향이 솔솔 풍기는데,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 가지 불만은 양이 좀 적다는 것 정도? 생각보다 적은 양에 한 번 놀라고, 나중에 계산하면서 생각보다 높은 가격에 또 한번 놀랐다.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니, 이 날은 뭔가 아다리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밥은 먹었지만, 뭔가 사기당한 느낌에 마음은 오히려 점점 공허해지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허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구세주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오렌지 주스'. 마라케시에서는 4디르함, 단돈 500원에 100% 무가당(?) 오렌지 주스를 맛볼 수 있다. 한국 사람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활짝 웃으며 '곤니치와'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이 녀석의 모습에 모로코에 대한 불쾌한 기분이 조금은 씻겨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타민 가득한 오렌지 주스로 기를 채운 후, 광장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전통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통에 광장 전체가 시끌벅적 들썩이는데, 그 음악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듯 들렸다. 분위기에 취한 것인지, 음악이 나를 홀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몇 장 찍었다는 이유로 또 삥을, 아니 팁을 뜯기고야 말았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 여기에 있을 줄이야.

 

 

목적지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다 보니, 어느새 상점가에 들어섰다. 향신료부터, 신발에 옷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쇼핑 천국이 펼쳐졌다. 나야 뭐 배낭하나 달랑 메고 온 거라, 사고 싶어도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눈으로만 구경하고 말았지만, 이 곳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지갑 속 현금이 모두 현물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빈 손으로 돌아가기에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다음날부터 시작될 사막투어 때 입을 전통의상을 한 벌 장만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돌아가던 중 고소한 냄새를 따라가보니, 빵집이 쨘! 하고 나타났다. 아까 먹은 따진이 성에 차지 않았는데, '잘 되었다'하는 마음에 빵을 종류별로 집어들었다. 메르주가 사막투어를 앞두고 있다면, 마라케시에서 미리 빵을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중간에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들르긴 하지만, 여행사와 커넥션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맛과 가격 모두 평균 이하다. 조금 번거롭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라케시에서 점심거리를 사서 떠날 것을 추천한다.

 

스페인, 포르투갈과는 확연히 다른 모로코의 좁은 골목길이 어느덧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심신의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스르륵 감기는 순간에도 내가 아프리카에 와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눈을 감았다 뜨고 나면, 꿈에 그리던 사막투어가 시작되겠지...

 

다사다난했던 모로코에서의 첫날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30. 드디어 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에 첫 발을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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