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일, 스페인-포르투갈 모로코 여행 2일차,
프리메라리가 직관의 추억을 가슴깊은 곳에 간직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로 향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몇 번 언급했었지만, 3월 첫주에 내가 참여하는 GNW(Global Network Week)는 일종의 MBA 교류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 20여개(?) 학교에서 특정 주제에 관한 커리큘럼을 개설하고, 학생들은 자유롭게 학교를 선택해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평소에 유로존과 금융위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애초에 방학동안 스페인 지역을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그냥 마드리드에 있는 IE 비즈니스 스쿨에 지원했다.
애초에 GNW는 공부보다는 스페인 지역을 여행하는 김에 학점이나 따자는 생각으로 지원한 것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유익한 시간이었다. 자연스레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며 한 뼘 성장한 느낌이랄까? 내 평생에 예일대 MBA 다니시는 분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줄이야!!!
뿐만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는 느끼기 어려운 현지 생활, 그리고 문화에 대한 것들도 비교적 많이 체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령, 90분 수업 후 30분이나 쉬는 시간을 가진다든지, 점심시간이 2시간이나 된다든지 하는 것들... 그리고 현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페인을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에 대한 그들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다.
뭐 아무튼 3월 2일은 이렇게 유익했던 1주일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꽤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 학교로 향했고, 스페인의 아침 출근 시간은 한국, 그리고 일본의 그 것과 다름없이 매우 분주한 분위기였다.
15분 정도를 걸어 드디어 학교에 도착했다. 이미 1층 로비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사실 전날 오프닝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저녁시간에 학교 관계자들과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끼리 얼굴을 익힐 겸 저녁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축구 때문에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처음에는 조금 서먹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히토츠바시에서 함께 온 학생들이 학교에 도착했고, 학교에서 준비한 간단한 아침 식사와 함께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약 30여분 간, 'Nice to meet you.'와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를 반복하다 보니, 처음의 서먹한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말고도 오리엔테이션을 제끼고 축구를 보러갔던 학생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과 함께,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뭔가 축구로 하나가 된 듯한 동질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유럽 경제 전반에 대한 오전 강의를 마친 후, 오후에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금융기관 중 하나인 BBVA를 방문했다. 사실, 그 동안 스페인의 금융산업에 대해서는 전혀 접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막상 직접 현장을 방문해 보니, BBVA도 차세대 먹거리 발굴을 위해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일부는 결실을 맺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역 이벤트와 고객들의 결제정보를 조합하여 소규모 가게에 대한 경영 컨설팅을 해주는 사업이었다. 가령, 세비야에서 프리메라리그 축구 경기가 벌어졌을때, 지역주민과 관광객, 연령대 별, 성별 소비 품목과 패턴을 분석해서 다음 이벤트때 매출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금융회사가 컨설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스페인이라고 하면, 사실 금융 선진국의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보다 몇 걸음 정도 앞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외에도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해서 지점 내부를 새롭게 디자인 한 미래형 BBVA 지점 모델하우스 등 BBVA가 준비하고 있는 다양한 혁신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부분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포스팅을 해 볼 계획이다.
그렇게 오후 일정까지 마친 후, 드디어 본격적인 마드리드 관광이 시작되었다. 여행을 계획할때만 해도 GNW에 참여하는 첫 주는 거의 관광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학교 일정이 일찍 끝났기 때문에, 주중에도 오후에는 마드리드 이곳 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은 바로 스페인의 국가대표 의류 브랜드 '자라(ZARA)'였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자라는 바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의류회사 '인디텍스'의 저가형 브랜드다. 품질은 다소 떨어지지만, 2주 단위로 최신 트랜드를 반영한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자라는 SPA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드리드에서 찾은 자라는 한국의 자라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일단 대리석으로 지어진 고풍스런 건물을 매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다, 내부 인테리어도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제품의 질이야 한국의 자라와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건물과 인테리어의 분위기가 달라서인지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페인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자라 매장을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자라가 워낙 유명해서이기도 하지만, 인디텍스 그룹의 창업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경영철학 중 하나가, '모든 제품을 스페인에 가장 싸게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 매장에 있는 자라의 모든 제품은 유럽 전역에서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물론, 자라 뿐 아니라 마시모 두띠 등 인디텍스의 다른 브랜드에도 이러한 경영철학은 똑같이 적용되니, 참고하시길...
어느 덧, 날이 저물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마요르 광장을 찾았다. 마요르 광장은 솔 광장과 함께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 중 하나로 17세기에 건축되어 대관식, 왕실 결혼식 등 행사가 치뤄진 곳이라고 한다. 마요르(mayor)의 뜻도 '시장(mayor)'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중요한(major)'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도 중요한 광장이라, 중요한 행사가 많이 열리나보다.
마요르 광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총 9개의 문 중, 쿠치예로스의 문으로 나가면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 많다고 하는데, 일행이 워낙 많았던데다 다들 배가 많이 고픈 상태라, 쿠치 어쩌고를 찾을 겨를이 없었다. 결국, 그냥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 중 괜찮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실, 스페인 어디를 가든 광장 주변은 음식값이 비싼 편이니, 이 점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단, 일부 음식점의 경우 금액 협상도 가능하니, 여러분들의 협상력을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물론, 가격 협상은 일행의 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
사실상, 스페인에서 맛보는 첫 저녁식사이니 만큼, 광장 분위기도 즐길 겸,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대부분의 레스토랑의 경우, 메뉴판을 보면 음식 당 3개의 가격이 적혀져 있다. 처음에는 S / M / L, 음식 사이즈별로 가격이 다른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음식을 먹는 자리별로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 놓은 것이었다. '야외 - 실내 바 - 테이블' 순으로 가격이 비싼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혼자 여행하더라도 꼭 '실내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시길...
일단 스페인에 왔으니, 유명하다는 음식은 일단 다 시켜보기로 했다. 나중에 절실히 느낀 부분이지만, 밥 먹을때 만큼 일행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을 때가 없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먹고 싶은 건 많은데, 위장에는 한계가 있다보니 포기해야 하는 음식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스페인의 대표 알콜, 상그리아!! 와인에 사과, 오렌지, 포도 등 각종 과일과 소다수 넣어 만든 칵테일이다. 주로 여름에 즐겨 마신다고 알려져 있는데, 스페인에 와보니 그냥 1년 365일 내내 마시는 술인것 같다. 사실, 술이 약한 편이라 여행 도중에는 음주를 즐기지 않는 편인데도 이번 여행 중에는 틈 날때마다 상그리아를 마셨던것 같다.
상그리아는 달달한 과일 향 때문에, 술이라기보다 음료수 같은 느낌이다. 당시에는 엄청 맛있다며 감탄하면서 마셨는데, 여행을 하다보니 저게 엄청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는... 스페인에서 상그리아는 어느 곳에서 마시더라도 중간 이상은 갔던 것 같다.
메인 음식이 나오기 전, 제공되는 식전 빵과 올리브는 금액이 별도로 청구되는 경우가 많으니, 굳이 빵으로 배를 채우지 않으시는 분들은 과감히 패스한 후 나중에 계산서에서 빼 달라고 이야기 하시길... 하지만 저 때, 우리는 다 먹음... ㅋ
드디어, 메인 요리가 나왔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바로 빠에야와 하몽. 스페인의 전통 요리 중 하나인 빠에야는 쉽게 말해 일종의 볶음밥인데, 8세기,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권 아래 있었던 시절부터 유래된 음식이라고 한다. 여러 종류의 빠에야 중 특히 먹물 빠에야와 해산물 빠에야가 유명하다.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긴 하나, 대체로 짜기 때문에, 주문 시 소금을 빼달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말자. 스페인 어로 소금을 빼달라고 할때는 씬 쌀(sin sal)이라고 하면 된다.
얼핏 보면 생고기 같이 생긴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건조시킨 음식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다 보면 돼지 뒷다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은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그 뒷다리를 케밥 썰 듯이 얇게 썰어낸 것이 아래 보이는 '하몽'이다. 11세기 무렵, 냉장시설이 없던 당시 돼지고기를 오래오래 즐기기 위해 고민한 끝에 소금에 절여서 보관하기 시작한 것이 하몽의 유래라고 한다. 하몽의 등급은 돼지의 종류에 의해 결정되는데, 도토리를 먹고 자란 흑돼지 뒷다리로 만든 하몽이 가장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하몽의 맛은 뭐랄까, 첫 맛은 나쁘지 않은데, 짜고 느끼해서 많이 먹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메뉴보다는 술 안주로 적극 추천할 만한 맛이다. 나중에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하몽은 은근히 과일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특히, 메론과 먹으면 신세계를 경험한다고 하는데... 나중에라도 꼭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확실히, 술과 음식이 눈앞에 있으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다들 말이 많아졌다. 안되는 영어로 그렇게 두어시간을 즐겁게 떠들다 보니, 어느 덧 밤은 깊어만 가고 마드리드에서의 들째 날도 조금씩 마무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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