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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내 인생 최고의 90분, 엘클라시코 직관기 (2편) - 마! 이기 축구다. 아나?

비행청년 a.k.a. 제리™ 2017. 7. 26. 09:41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그 현장에 내가 있다니... 초록의 잔디와 칠흑의 하늘의 경계선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 전광판에는 엘클라시코를 알리는 양팀의 앰블럼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상 낙원(地上樂園)' 2015년 3월 22일의 캄프누는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었다. 단언컨데 35년을 살면서 한 공간에 모인 사람 전부가 이처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셀카를 찍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축구가 세계를 하나로 만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두 빅클럽의 경기는 마치 미-소 냉전 시대처럼 세계를 둘로 나눠놓는다. 하지만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기 전 까지는 모든 축구팬은 같은 꿈을 꾼다. '너를 밟고 내가 간다. 오늘은 우리가 이긴다.'

 

 

드디어 선수들이 하나 둘 씩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로를 마주보던 관중들의 시선이 이제 한 곳으로 향한다. 그저 간단하게 몸을 푸는 것이 전부지만, 그 일거수 일투족을 눈과 카메라에 그리고 가슴 속에 또렷하게 담아내기 위해서다.

 

 

분명 몇 분 전 까지만 해도 한산하던 관중석이 이제는 발디딜 틈도 없이 빼곡해졌다.

 

 

요즘 MLB에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는 에릭 테임즈도 이 경기를 보기 위해 스페인까지 건너왔다. 는건 당연히 구라. 자기가 무슨 장판파의 장비도 아니고 엘클라시코가 열리는 캄프누에 레알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나타나다니... 배포 한번 대단한 녀석이다. 호날두 마킹 유니폼을 캐리어에 고이 접어두고 나온 내 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코끝이 찡해진다. 그치만 저 정도 덩치도 등에 마킹은 차마 못한걸 보면서, 애써 내 비겁함을 합리화 해 본다. 

 

 

어라! 저기 저 녀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너 혹시 메시니?

 

 

오후 8시 22분, 킥오프까지는 아직 38분 남았다.

 

 

내 앞에서는 네이마르가 몸을 풀고 있고,

 

 

메시 뒤에서는 핫핑크 져지를 입은 가레스 베일이 보이는데 왠지 모르게 포즈가 요염하다.

 

 

네이마르의 프리킥을 옆에서 지켜보던 메시의 1:1 쪽집게 특강.jpg

 

 

경기 시작 전, 간단한 사진 촬영이 진행되었다. 저기 뒷편으로는 바르셀로나의 유니폼과 카탈루냐의 깃발을 상징하는 카드 섹션이 펼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고 관중석의 분위기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었던 나는 적진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병사마냥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레알을 응원하면서도 겉으로는 덤덤한척 했던 '나는, 겁쟁이랍니다.'

 

 

바르셀로나 팬들의 압도적인 야유 속에 부담을 가질만도 했지만, 전반 내내 레알 마드리드는 경기를 비교적 잘 풀어나갔다. 특히 바르셀로나 전술의 핵, 메시는 그야말로 꽁꽁 묶였다. 비록 전반 중반에 메시가 프리킥 찬스에서 기가 막힌 패스를 올리며 마티유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긴 했지만 그 장면 외에는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 30분 경, 벤제마의 기가 막힌 힐패스를 받은 호날두가 깔끔하게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레알 마드리드가 분위기를 가져가면서 후반전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올랐다. 물론 그 기대감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여긴 바르셀로나의 안방이고 내 주변에는 축구에 미친 좀비 수만명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명경기에 팝콘이 빠질 수는 없지! 하프타임을 맞아 팝콘과 콜라를 준비하며, 후반전 관람을 위한 만반의 채비를 갖췄다. 혹시라도 흥분한 관중들이 콜라병을 그라운드로 던질 수도 있기 때문에 패트병 뚜껑은 그 자리에서 압수!

 

 

다시금 사람들이 관중석을 채우고 후반전 휘슬이 울렸다. 1:1로 대등한 경기를 펼친 양 팀이 후반전에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설렘과 흥분, 기대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의 공을 빼앗에 역습에 나서려고 한다.

 

 

이 장면에 관중들은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다.

 

 

바르셀로나 진영에서 반칙으로 레알마드리드가 프리킥을 얻어냈다.

 

 

이 장면에 관중들은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다.

 

 

바르셀로나가 골 찬스를 아쉽게 놓쳤다.

 

 

이 장면에 관중들은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그러던 와중에 메시의 움직임이 살아나면서 바르셀로나가 경기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후반 10분 경 알베스의 패스를 받은 수아레즈가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와 함께 멋진 골을 뽑아냈다.

 

 

그제서야 관중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경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골대 뒷편의 바람인형들도 신이 났는지 호랑나비 댄스를 열정적으로 추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응원가 떼창을 시작했다. 그 동안 응원문화 하나만큼은 롯데 자이언츠가 세계 최강인줄 알았는데, 지상 최대의 노래방은 따로 있었다. 역시 사람은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혀가는구나.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라 골 장면은 못찍고 세리머니라도 찍으려고 했지만, 수아레즈의 초상권을 지키려는 바르샤 선수들의 눈물겨운 동지애만 남았다.

 

 

전반과는 달리 중원에서의 레알 선수들의 몸놀림이 점점 둔해졌고, 메시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레알 진영을 헤집고 다녔다. 네이마르의 뻘짓으로 점수차가 더 벌어지지 않은 것이 레알로서는 다행이랄까? 어쨌든 엘클라시코라는 명성에 걸맞게 양 팀은 전,후반 90분 내내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며 명경기를 만들어냈다.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 없었던 90간의 승부가 막을 내리고 바르셀로나 팬들은 세상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이로서 나의 레알 마드리드 직관은 1무 1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내며 마무리되었다.

 

 

바르샤 팬들의 기쁨을 취재하기 위해 방송사 카메라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카메라가 돌든 말든 성직자 같은 의상을 입은 우리 바르샤 팬 아저씨 한 명은 승리의 기쁨을 카톡으로 집에 전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엘 클라시코는 프리메라리가의 수 많은 시즌 경기 중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거리는 승리의 기쁨에 취한 사람들로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운전자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바르샤 깃발을 흔들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그들의 삶과 축구를 즐기는 방식이다. 저 멀리 동양에서 건너 온 내게 바르샤를 응원하냐고 묻는 그에게 차마 레알마드리드 팬이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암표를 파는 할아버지에게도, 수아레즈의 결승골이 터진 직후 옆에서 응원하던 이름 모를 그녀에게도 내가 레알마드리드 팬임을 부정했었다. 예수님의 제자임을 3번 부정했던 베드로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패배의 아픈 기억을 안고 집으로 향하던 그 시각, 바르샤의 안방 캄프누는 엘클라시코의 승리를 자축하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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