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7

50. 여유 넘치는 아침, 한적한 비탈길을 오르다. - 론다 구시가지 도보여행

론다에서의 이튿날 아침. 4성급 호텔의 푸짐한 아침식사로 배를 두둑히 채웠다. 간만에 여유있는 아침 시간을 보낸 것은 어제 이미 론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누에보 다리의 야경을 마음껏 감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잔뜩 찌뿌린 날씨를 바라보며, '호텔에서 오랜만에 게으름을 피워볼까? 게다가 무려 4성급이잖아!' 악마의 속삭임이 귓가를 파고든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언제나 천사가 지배한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뚱아리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하늘 위 구름도 나처럼 물을 잔뜩 머금은 모양이다.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토해낼 것 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가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파라도르에서 누에보 다리를 건너 구 시가지로 접어들면서 만난 아줄레주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

48. 깎아진듯한 절벽 위 요새 같은 호텔, 파라도르 데 론다

어쩌면 내 평생 가장 맛있었던 대구 요리를 맛본 후, 배낭을 들쳐메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세비야에는 2개의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데, 론다로 가려면 'Prado San Sebastian'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한다. 구글맵에 'Estación De Autobuses Prado San Sebastian'을 입력한 후, 노란색 건물을 찾으면 된다. 세비야에서 론다까지의 거리는 약 130km로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45분까지 하루에 5~7편의 버스가 운행하기 때문에 표를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론다에서 1박을 생각한다면 오후 3시반 버스를, 당일치기를 계획한다면 오전 7시 버스를 추천한다. 세비야~론다행 버스 출발 시각 : 07:00 / 10:00 / 11:00 /..

47. 미슐랭 별이 셋! 세비야 최고 맛집, 'Casa la Viuda'(까사 라 비우다)

드넓은 세비야 대성당과 높디높은 히랄다 탑까지 둘러보고 나니, 정말 미칠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이제는 점심을 먹어야 할 때, 그리고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다. 세비야 대성당을 나오는 길, 오렌지 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는 정원이 펼쳐져 있다. '오렌지 정원'이라 불리는 이 곳은 이슬람 건축양식에 따라 조성된 중앙정원인데,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성당 구경을 마친 관광객들이 한 숨 돌리며 쉬기에 딱 좋은 장소가. 나무 그늘 아래서 구글맵을 켜고 'Casa La Viuda'를 입력했다. 그리고 나서 휴식이랄것도 없이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사 라 비우다(Casa la Viuda)', 미망인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세비야, 아니 아마 스페인에..

46. 세비야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 눈에, 히랄다 탑에 오르다.

넓고 넓은 세비야 대성당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던 서울에서 온 수더분한 청년은 이내 체력이 떨어졌는지 어러움을 느낀다. 너무 안에만 있어서 그런걸까? 잠깐이라도 나가서 시원한 바깥 바람을 좀 쐬어야겠다. 마침 전망좋은 탑이 하나 있다는 말에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곳, 이름이 심상찮다. 뭐가 그리 지랄맞은지 모르겠지만, 이름부터가 지랄다 탑이다. 세비야 대성당에 붙어있는 이 탑은 12세기 말, 이 곳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에 의해 건축된 곳이다. 약 100여년 간의 공사 끝에 이슬람 사원을 세비야 대성당으로 리모델링을 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슬람 사원의 흔적이 바로 이 탑이다. 아, 그리고 한가지 비밀을 알려주자면, 이 탑의 이름은 '지랄다'가 아니라 '히랄다'다. 히랄다 탑! 총 3..

45. '죽어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 콜럼버스의 유언을 지킨 4명의 왕

1492년 10월 12일, 에스파냐를 떠난 지 3개월 만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탐험가 콜럼버스는 길고 고된 항해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넣게도 했지만, 이사벨 여왕이 죽고 난 후에는 재산과 귀족 지위를 모두 빼앗기고 쓸쓸히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 주지 않았던 에스파냐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콜럼버스는 눈을 감으며,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노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바티칸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과 함께 유럽의 3대 성당으로 알려진 이곳, 세비야 대성당은 콜럼버스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44. 지난 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다.

황홀하다던 세비야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담지 못해서였을까? 유난히도 밤잠을 설치고 난 후, 어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세비야의 날씨는 여전히 흐렸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언제 어디서나 구글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배낭여행을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그래봐야 스마트폰이 나온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제 세비야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길에 지나쳤던 것 같은 이 건물은 세비야 투우장이다. 커다란 빨간 천을 펄럭이며 황소와 싸우는 투우는 '정열의 스페인'을 상징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투우의 본고장인 이곳, 스페인에서조차 지금은 그..

43.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모든 것이 맘 같지는 않더라! - 메트로폴 파라솔과 스페인 광장에서의 허탈함

여행을 그리 많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여행했던 곳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나라를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스페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사람들, 깨끗한 환경, 맛있는 음식 등 여행지로서 스페인이 가지는 장점은 무수히 많다. 수많은 장점 중 가장 의외였던 것은 바로 '치안', 스페인에서는 낯선 도시에서조차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늦은 시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골목골목마다 펍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맥주를 마시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 첫 번째 여행지인 마드리드에서부터 친구들과 늦게까지 몰려다니면서 내성이 생긴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늦은 시각에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지만, 별 탈이 없었고 그 덕에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다. ..

39. 입생로랑이 사랑한 코발트 블루의 세상,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모로코 삐끼와 한바탕 설전을 치르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아둥바둥대야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고 기분이 크게 상해버려서 다 때려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문제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켜고 위치를 확인해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것보다 다음 목적지가 그나마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혹시라도 또 방향을 잊을까 두려운 마음에 큰길을 따라 다시금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생전 처음보는 건물과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당시에는 당나귀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를 붙잡고 히치하이킹이라도 하고 싶은 ..

38. 다시 찾은 마라케시, 모로코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길을 잃다.

에싸우이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마라케시, 벌써 세번째 방문이다. 처음에는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탔고, 사하라 사막 투어를 마친 뒤에는 봉고차로, 그리고 이제는 에싸우이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을 거쳐 메디나로 들어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받걸음에 여유가 묻어났다. 터미널 인근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와 모처럼만에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다. 오전의 제마 엘프냐 광장은 마치 예전 여의도 광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지난 밤에 보았던 화려하고 북적이는 모습과는 천양지차! 문득 '낮져밤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스쳐간다. 광장에서 갈라져 나오는 수많은 골목길마다 모로코 사람들의 일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

37. 여행의 묘미, 예정에 없던 곳에서 뜻밖의 추억을 건지는 것 - 모로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여행을 시작하기 전, 모로코하면 '사하라 사막'이 먼저 떠올랐는데, 여행이 끝나고도 1년도 더 지난 지금은 모로코하면 '에사우이라의 바다'가 떠오른다. 여행이라는게 그렇다. 낯선 곳으로 떠나기 전에는 괜한 불안감에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아 계획을 짜곤 하지만,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여행지에 대한 느낌은 각자 다르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여행은 100% 계획된대로 움직이기보다는 70%의 계획과 30%의 우연을 버무리는 것이 좋다. 물론 사람마다 계획과 우연의 최적비율은 저마다 다르리다. 예정에 없던 도시, 에사우이라의 숨겨진 모습을 찾으러 가볼까? 메디나를 벗어나 서쪽으로 조금만 걷다보면 짠내 가득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작은 건물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