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꽃보다 유럽

55. 발길 닿는 대로, 느긋하게 즐기는 그라나다 시내 여행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1. 21. 10:32

 

그라나다 - 사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는 도시라 그냥 지나칠 뻔도 했다. 이번 스페인-포르투갈 여행이 설렜던 이유는 어린 시절 즐겨했던 대항해시대2의 향수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그라나다는 스페인 남부 내륙에 있어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다. 론다도 마찬가지지만 거기는 버킷 리스트라 할 수 있는 파라도르가 있으니 그라나다와는 또 다르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그냥 사람들이 다들 그라나다 정도는 가본다고 하길래 아무 생각없이 일정에 넣었다. 마치 마트에서 장을 보다 아무 생각없이 카트에 툭 던져 놓았다가 계산할 때가 되어서야 생각나는 그런 과자, 이번 여행에서 그라나다가 딱 그랬다.

 

 

하지만 사실 그라나다는 대항해시대의 시작을 알린 도시였다. 1492년 1월, 이 곳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이사벨 여왕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떠났고, 그 다음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는 바로 그대로 이어진다. 그라나다 중심에 위치한 '이사벨 라 카톨리카 광장'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1892년에 조성되었다.

 

 

광장 중앙의 동상은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에게 항해 계획서를 보고하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순간이다. 이 곳 그라나다 여행이 예상했던 것 보다 재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곳, 'Por qué no te callas'. 가게 이름 치고는 좀 길고 입에 잘 붙질 않는다. 아기자기한 옷가지를 파는 이 가게의 이름의 유래는 2007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이베로 아메리카 정상회의, 쉽게 말하자면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끼리 모인 자리다. 이 회의 석상에서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역사문제를 들먹이며 스페인 총리에게 계속 딴지를 걸자 스페인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차베스 대통령에게 넌지시 한 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Por qué no te callas?'

 

번역하자면, '우쥬 플리즈 닥쳐줄래?' 정도일까? 이 한마디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모욕감을 느꼈고,스페인 국민들은 열광했다. 'porquenotecallas.com'라는 도메인이 생겨났고, 가격은 4,600달러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심지어 스페인에서는 이 문장을 가장 멋들어지게 말하는 사람을 뽑는 대회까지 열렸다고 하니, 당시 얼마나 파장이 큰 발언이었는지 짐작할 만 하다. 그러고 보니 간판 아래 입에 지퍼를 채우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카테드랄(Cathedral)', 그러니까 대성당이다. 그라나다 대성당은 약 180년에 걸쳐 건축되었는데, 엄청 오래 걸린 것 같지만 대개 300년이 넘게 걸리는 다른 대성당에 비하면 완전 날림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사실 이 곳은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위에 외벽만 덧칠해서 성당을 지은 것이라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대신 좌우 대칭를 이루는 일반적인 대성당과는 달리 그라나다 대성당은 비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슬람 사원을 기존 구조를 따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테드랄 옆에 있는 이 건물은 '왕실 예배당'이다. 건물 포스만 봐서는 '이게 대성당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왕실 예배당은 이사벨 여왕이 잠들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사벨 여왕 말고도 이사벨 여왕의 남편(페르난도), 딸(후아나), 그리고 사위(펠리페)까지 4개의 무덤이 왕실 예배당 안에 있다고 한다. 내부가 엄청 화려하다고 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난 사실 유럽 성당에는 조금 질린 상태라 건물 밖만 대충 훑어보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비브람블라 광장'이 위치해 있다. 광장 중앙의 분수대와 약간 포르투갈을 연상시키는 색깔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비브람블라 광장은 주변에 노천카페나 맛집이 많이 모여있어 점심시간 쯤 야외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내기 딱 좋은 장소다. 이 근처 어디에 유명한 츄러스 맛집도 있다고 하니,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곳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랫동안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아랍골목'으로 불리는 '알카이세리아 거리'다. 오래 전 비단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이 지금은 아랍풍의 다양한 물건을 파는 시장으로 재탄생했다.

 

 

좁은 골목 양 옆으로 마치 이스탄불의 '바자르'를 연상시키듯 아랍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의류나 소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모로코에서 봤던 것 보다는 살짝 더 고급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막상 사서 걸칠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냥 '아, 이런 곳도 있구나.'하고 아이쇼핑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그래도 가죽제품은 나름 잘 고르면 하나쯤 쓸만한 것을 건질지도 모르겠다. 주로 모로코에서 생산한 가죽 제품을 파는데, 약 20유로 정도면 나름 쓸만한 수제(?) 가방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뭐 나야 모로코에서도 사지 않았던 물건이기에 굳이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가죽 제품을 사는 것 같더라. 아! 일종의 재래시장인만큼 어느 정도 흥정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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