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꽃보다 유럽

54. 알바이신을 채운 집시의 열정 - 그라나다 동굴 플라멩고 공연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1. 17. 07:30

 

절벽의 도시 론다에서 이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라나다까지는 기차로 2시간 반, 오후 1시 반쯤 출발한 기차는 오후 4시쯤이 되어서야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참고로 론다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기차는 아침(8시), 점심(1시반), 저녁(5시)에 각각 한 대씩 있다. * 2015년 기준

 

TIP. 여행 일정이 fix되었다면, 미리 사이트에서 열차 티켓을 예매하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티켓을 사는 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다. 론다-그라나다 구간이 사람이 많이 몰리는 편은 아니기에 자리가 없어서 표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더러(성수기에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론다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이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론다에 도착한 날 떠나는 기차표를 예매하면 된다.(나 역시도 버스를 타고 론다에 도착해서 바로 나가는 티켓을 끊었다.)

 

 

그라다나에 도착해서도 이놈의 날씨는 도무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마라케시를 떠나 세비야에 도착한 이후로 하루도 먹구름을 보지 못한 날이 없다.(물론 중간 중간 해가 화창하게 내리쬐는 순간도 있었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여러번 언급한 것 같지만, 부활절 전후로 스페인 여행은 완전 비추임!

 

 

렌페 역에서 나와 숙소 이름을 구글맵에 입력했다. 렌페 역에서 숙소인 OLD TOWN HOSTEL까지는 2.5km, 걸어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멀다면 먼 거리지만, 거리 구경도 할 겸 그냥 걸었다. 사실 한국에서도 택시타는 것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는데, 해외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절대! 택시는 안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몸도 고달프지만, 골목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뭐 걷다보니 구름도 걷히고 날씨가 제법 좋아졌다.

 

 

골목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미술 전시관에서 만난 작품이다. 어둠 속에서 빛의 잔상으로 그려낸 그림이다. LIght Painting이라고 했던 것 같다. 생전 처음 접한 기법이라 신기한 마음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관심 있냐며, 은근 영업을 시작했다. 웃음으로 때우기엔 조금 불편한 분위기라 도망치듯 화랑(?)을 빠져나왔다. 아마 택시를 탔다면 접할 수 없었을 작은 추억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호스텔, 작지만 주인 아주머니가 매우 친절해서 마음에 쏙 들었던 곳이다. 주변 맛집부터 시작해서 주요 관광지 정보, 호스텔에 머무르는 다른 한국인 여행객 소개까지 도움 될만한 정보를 잔뜩 안겨주신 고마운 분이다. 경황이 없어서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해 숙소 포스팅을 별도로 남기지는 못하지만, 저렴하고 괜찮은 곳이니, 그라나다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숙소 리스트에 올려놓고 고민해보시길 추천한다.

 

 

아주머니께서 추천해 주신 주변 맛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라나다에서는 해가 지고 나면 동굴에서 뜨거운 파티가 열린다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는 유치찬란한 개뻥이고, 집시들이 몰려산다는 알바이신 지구에서 열리는 플라멩고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달동네를 연상케하는 알바이신 언덕 곳곳에는 집시들이 모여들어 동굴을 파고 생활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모여든 집시들이 전통음악인 플라멩고 공연을 하면서 알바이신 지구가 하나의 예술촌으로 거듭나게 된다.

 

 

알바이신 지구를 밤에 혼자 가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투어를 신청해서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이 사진을 보고 가이드가 제법 유명한 곳으로 우릴 데려온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진 중앙에 빨간 옷을 입은 그녀는 바로 '미셸 오바마', 미국의 영부인이다!!!

 

 

천조국의 영부인이 앉았던 자리를 겨우 물감으로 표시해두다니... 이건 좀 심한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나는 게, 의자 등받이의 양 끝 기둥과 중간에 갈색 물감으로 포인트를 준 것이 보인다. 누가 보면 유치원생이 '우리 엄마 자리~'라며 표시해 놓은 줄 알겠다.

 

 

그 유치원생이 그려놓은 것 같은 벽화가 인상적이다. 언뜻 보면 유치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알바이신 지구에 머무르는 집시들이 플라멩고 공연을 하는 모습을 묘사해놓은 나름 의미 있는 유치한 그림이다. ㅋ

 

 

그림은 유치하지만, 공연 실력 하나만큼은 진퉁인가보다. 일자로 길게 구성된 무대 벽면에는 과거 무용수들이 공연했던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데, 사진만 봐도 그 포스가 어마무시하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 공연에 대한 기대가 피어오른다.

 

 

집시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는 예술 공간에서 이 무슨 부적절한 행동이란 말인가...? 스페인의 청춘남녀때문에 무대의 화려한 소품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나저나 유럽 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도 애정행각을 참 자연스럽게 한단 말이지... 이런 건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어느덧 모여든 관객들이 빈 좌석을 하나 둘씩 채우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남자 무용수가 등장해 현란한 발놀림을 선보이면서, 공연장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마드리드에서 보았던 플라멩고는 라이브 공연 형태였는데, 그라나다의 동굴 플라멩고는 뮤지컬처럼 하나의 스토리가 있었다. 사전에 가이드에게 들은 설명에 따르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여 주인공의 사랑이 결실을 맺고 결혼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스페인 어를 모르니 내용이 이해될 턱이 없다. 그래도 막판에 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과 배우들이 다 같이 나와서 유쾌하게 춤을 추는 것을 보니 해피엔딩이 맞긴 맞나보다. 현란한 춤사위와 음악 등 공연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이날 함께 공연을 관람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문제였다. 공연 중에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물론 중간에 계속해서 자리를 떠나 왔다갔다하는데 도무지 공연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차이나 파워다 뭐다 말이 많지만, 직접 중국인들의 무례한 모습을 보니, 중국도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망할 놈의 중국인 관광객 무리 때문에 이야기가 잠시 다른데로 샜는데, 공연 관람을 마친 후, 다같이 전망대로 가서 그라나다의 야경을 마음껏 감상했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는데, 왜 건진 사진이 없을까? ㅠㅠ 사진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게 엄청나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기초적인 것이라도 좀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일년 반이나 지났다. 흠... 먹고 살기 바빠서라고 해 두자.

 

 

그라나다 여행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알함브라 궁전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알함브라 궁전은 무려 250년에 걸쳐 건축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알함브라 궁전을 두고 '에메랄드 사이에 박힌 진주'라고 표현할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저따위로 밖에 찍지 못하다니... 내 자신이 너무도 한탄스럽다.

 

그나저나,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파라도르에서 시작해서 포스팅 5개 분량이 이 날 하루에 모두 일어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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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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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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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지난 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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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미슐랭 별이 셋! 세비야 최고 맛집, 'Casa la Viuda'(까사 라 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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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낮에 다시 찾은 누에보 다리에서 자연과 건축의 하모니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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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생각지도 못한 발견, 론다의 소꼬리찜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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