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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여행의 묘미, 예정에 없던 곳에서 뜻밖의 추억을 건지는 것 - 모로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5. 16. 08:00

 

여행을 시작하기 전, 모로코하면 '사하라 사막'이 먼저 떠올랐는데, 여행이 끝나고도 1년도 더 지난 지금은 모로코하면 '에사우이라의 바다'가 떠오른다. 여행이라는게 그렇다. 낯선 곳으로 떠나기 전에는 괜한 불안감에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아 계획을 짜곤 하지만,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여행지에 대한 느낌은 각자 다르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여행은 100% 계획된대로 움직이기보다는 70%의 계획과 30%의 우연을 버무리는 것이 좋다. 물론 사람마다 계획과 우연의 최적비율은 저마다 다르리다.

 

 

예정에 없던 도시, 에사우이라의 숨겨진 모습을 찾으러 가볼까? 메디나를 벗어나 서쪽으로 조금만 걷다보면 짠내 가득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작은 건물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항구 도시'의 느낌이 물씬 배어 있다.

 

 

바닷가답게 에싸우이라에서는 싱싱한 해산물을 비교적 싼 가격에 맛볼 수 있다. 길가에 위치한 푸드코트(?)에는 수레마다 갖가지 생선과 새우, 랍스터 등이 한가득 담겨 있는데, 원하는 만큼 접시에 담아 값을 치르고 나면 즉석에서 해산물을 구어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어렸을 때부터, 가시를 발라내는 것이 서툴러 생선을 멀리해왔던지라, 먹기 편한 왕새우를 5개 집어들었다.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해서 즉석에서 구워냈는데, 살이 통통히 오른게 정말 실하다. 정확한 가격이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100디르함(12,000원) 언저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모로코에서 먹는 것 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는 가격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현지 물가에 익숙해져서 상대적으로 비싼 음식 맛보는 걸 주저하는데, 막상 한국에 와서는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주머니 사정이 좀 빡빡해도 돈을 써야할 땐, 시원하게 쓰자!

 

 

해안가로 점점 다가갈수록, 길가에는 차보다 배가 더 많아진다. 잔뜩 엉켜있는 그물을 바라보며 뭔가 심각한 표정의 할아버지 두 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저 새로움 반, 호기심 반으로 지켜보고 있기에는 엉킨 그물을 푸는 일이 그렇게 녹록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스쳐가는 순간들은 항상 누군가에겐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오와 열을 맞춰서 가지런히 정박해있는 수 많은 고깃배, 한 사람 또는 한 회사가 이걸 모두 가지고 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간에 끼어있는 배는 원하는 시기에 바다로 나가지 못할테니까.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이 곳 에사우이라에 와서 저 배를 몽땅 산 다음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생에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에사우이라는 역사적으로 무역의 중심지로 각광받았던 도시다. 고대의 페니키아인부터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를 주름잡던 세력들은 어김없이 에사우이라에 진출, 해상 교역의 거점으로 활용해 왔다. 15세기에는 포르투갈이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요새를 구축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탓에 모로코에서는 다양한 문화권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에사우이라는 18세기 들어 프랑스 건축가인 코르니에 의해 도시 전체가 유럽풍으로 탈바꿈했고, 20세기까지 모로코와 외부를 연결하는 국제 교역항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한편 코르 뉘는 메디나 외곽 해안가에 '스콸라'라는 성채를 짓고 대포를 설치해 외부의 공격에 대비했는데, 지금도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를 벗어나 해안가를 걷다 보면, 당시에 건설된 높지 않은 성벽과 대포를 구경할 수 있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로 가득 찬 부둣가에는 현지인과 관광객이 어지러이 섞여있었다. 입구 쪽은 해산물을 파는 노점과 흥정하는 현지인, 그리고 그걸 구경하는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반면,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딱히 할 것도, 볼 것도 없어 방황하고 있는 내게 흔쾌히 모델이 되어준 에사우이라의 이름 모를 갈매기.jpg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면 휑~하고 날아갈 법도 한데, 부둣가에서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과자를 얻어먹으며 지내왔기 때문이었을까? 사진을 찍든 말든 개의치 않는 대담한 갈매기다. 사람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시하는 듯한 표정에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다.

 

 

해안가에 자리잡은 에사우이라에는 항구만 있는게 아니다. 사실, 이 곳은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유명한데, 바캉스 시즌만 되면 에사우이라의 해변에는 수상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웬만한 모텔 부럽지 않은 매트리스와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는 차광막까지, 한눈에 봐도 주머니 두둑한 부자들을 위한 시설이 목 좋은 곳에 놓여 있었다. 비록 비수기라 이용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7~8월 휴가 시즌에는 프랑스에서 휴가 온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하겠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가족들과 매트리스 하나 차지하고 모히또를 즐기리라 다짐해본다. 

 

 

어느덧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한 에사우이라의 해변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걷는 가족 혹은 연인들은 딱히 목적지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발걸음은 더욱 여유로워 보인다. 걷다가 지치면 그 자리에서 쉴 수 있는 여유. 일정이 빡빡한 여행을 하다 보면군 데라도 더 가고,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바둥거리는데, 그럴 때일수록 이런 여유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을 넋놓고 구경하다보니 날이 점점 어둑해진다. 해가 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 차는 것에 몰두하는 아이들을 보니 괜히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서너명의 친구들과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학교 운동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요즘 아이들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니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꼬맹이들을 본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지금 여기 모로코 해변의 아이들과 한국의 학원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예정에는 없었지만, 에사우이라 해변에서 바라본 일몰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해변에서 항구 쪽, 낮은 건물들과 배 너머로 지는 해의 모습은 호카 곶에서의 일몰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다.

 

 

그리고 에사우이라에서 건진 가장 큰 수확! 일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신비한 분위기는 물론 자체적으로 얼굴을 가리게 되어 인생 샷을 건질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사진을 찍어준 이름 모를 모로코 청년과 나의 소중한 디카 g7x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며, 에사우이라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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