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꽃보다 유럽

43.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모든 것이 맘 같지는 않더라! - 메트로폴 파라솔과 스페인 광장에서의 허탈함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6. 24. 08:00

 

여행을 그리 많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여행했던 곳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나라를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스페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사람들, 깨끗한 환경, 맛있는 음식 등 여행지로서 스페인이 가지는 장점은 무수히 많다. 수많은 장점 중 가장 의외였던 것은 바로 '치안', 스페인에서는 낯선 도시에서조차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늦은 시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골목골목마다 펍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맥주를 마시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 첫 번째 여행지인 마드리드에서부터 친구들과 늦게까지 몰려다니면서 내성이 생긴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늦은 시각에 혼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곤 했지만, 별 탈이 없었고 그 덕에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다. 세비야에서의 첫 번째 밤에도 저녁 9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아무런 부담없이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 바로 메트로폴 파라솔이다. 

 

 

독일의 건축가 율겐 마이어 헤르만에 의해 2011년 완공된 메트로폴 파라솔은 높이 26미터에 너비가 자그마치 150미터나 된다. 약간은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디자인 탓에 완공 당시에는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메트로폴 파라솔은 대왕 버섯(Las setas)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막상 가서 본 모습은 버섯보다는 오히려 물고기에 가까웠다.

 

 

파라솔이라는 이름 때문에 뜨겁게 내리쬐는 스페인의 태양을 피해 메트로폴 파라솔이 만들어낸 시원한 그늘 아래서 맥주를 한 잔 들이켜는 그림을 상상하곤 했었는데... 웬걸, 어두컴컴한 밤중에 그것도 비 오는 날 오밤중에 이곳을 찾게 될 줄이야... 늘 출발하기 전부터 꼼꼼하게 계획하지만, 막상 여행을 하다 보면 항상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장면이 펼쳐지곤 한다. 계획과 다르게 펼쳐지는 우연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보면 여행은 우리의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

 

 

지금이야 사진을 뒤적거리며, '오, 그래도 여기 야경이 꽤나 이쁜데...'라고 중얼거리고 있지만, 사실 당시에는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느라 몸이 제법 피곤한 상태였고, 열흘 만에 다시 찾은 스페인의 하늘은 나의 바람과는 달리 빗방울을 심술궂게 흩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사진은 또 언제 찍어 놓았는지조차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여행을 즐기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불평만 늘어놓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저 때만큼 복에 겨웠던 때가 또 없지 싶다.

 

 

관광객 한 명 없이 썰렁한 이 곳,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하나 했는데, 계단 옆 쪽으로 작게 마련된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매표소가 있고, 거기서 티켓을 구입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참고로 메트로폴 파라솔 입장료는 3유로인데, 근처 카페나 펍에서 음료를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무료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나저나 클럽도 아니고 티켓에 1 drink 포함이라니...

 

 

입장권과 음료 쿠폰을 받아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는데, 맙소사! 정말 내가 클럽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반질반질 빛나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벽면에 하얀 원형의 스티커가 화려하게 붙어있는데, 괜히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하는 느낌마저 든다.

 

 

옥상에 도착했는데, 다시금 굵어지는 빗줄기에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아! 그냥 집에 갈껄 젠장...

 

 

사실, 세비야의 불그스름한 야경과 메트로폴 파라솔의 현대적인 조명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문제는 비! 여행에 있어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사진만 봐서는 뭐가 그리 불만인가 싶으시겠지만, 습한 날씨에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개고생인가?"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뭐 굳이 당시의 감정을 끄집어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투정만 잔뜩 부리고 있는데, 그래도 사진을 한 장씩 넘기다 보니, 다시금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날씨가 좋은 시기에 일정을 여유 있게 잡고 낮에 한 번, 밤에 또 한 번 이곳을 찾아 옥상에서 커피도 한잔하고 밤에는 펍에서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축구를 보면 엄청 행복하겠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투덜거리며 메트로폴 파라솔을 찾았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스페인 광장! 광장의 입장이 제한되는 12시쯤 그곳을 찾으면, 텅 빈 광장에서 화려한 야경을 혼자서 오롯이 차지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세비야 대성당에서 바로 스페인 광장으로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시간이 약간 애매한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빡빡한 일정에 기왕이면 하나라도 더 보자는 생각에 메트로폴 파라솔을 먼저 구경한 후,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동선이 무척이나 비효율적이었지만, 그 또한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11시가 좀 넘은 시각에 스페인 광장에 도착했는데 입구가 단단하게 잠겨있었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수많은 블로그에서 12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했었는데... 그들이 단체로 사기를 쳤을리도 없지 않은가? 당시에는 멘탈이 좀 심하게 무너져서 추스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절기와 동절기에 광장 운영시간이 조금 달랐던게 아닌가 싶다. 나처럼 3월에 세비야 스페인 광장을 찾는다면, 11시에 문을 닫을 것으로 생각하시고 조금 일찍 움직이시길!  

 

 

내일 오후에 론다로 넘어가야 하는 일정 탓에 그토록 보고싶었던 스페인 광장의 야경은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만 했다. 그 기회라는 것이 다시 올지도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아쉬운 마음에 담장 너머로 우뚝 솟은 탑을 바라보며 연신 셔터만 눌러댔다. 그나저나 이쁘긴 진짜 이쁘다. 꼭! 다시 세비아에 가서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보고 말리라! 그때 했던 다짐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세비야 공항에 처음 내려 빗줄기를 맞았을 때부터 뭔가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왔었는데, 결과적으로 오늘은 날씨부터 음식, 동선 등등 여러가지로 엇박자가 자꾸 나면서 뭔가 꼬이는 하루였다. 한 달 가까이 긴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날도 하루 이틀쯤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애써 위로를 해봤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착잡한 기분을 떨치기는 힘들었다. 얼른 돌아가서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려나?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멋진 하루가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관련글 -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포스팅으로 이동합니다.

* 여행준비

1.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을 준비하며,

2. 포르투갈-모로코-스페인, 도시별 체류 일정

3. 열차예매를 위한 꿀팁, 페이팔 계정 만들기

4. 여행계획 세울 때, 알아두면 유용한 사이트

5. 배낭여행 짐을 싸며, 유럽 여행 준비의 마침표를 찍다.

 

* 꽃보다 유럽 :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

01. 24박 25일, 꿈만 같았던 순간들

02.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오르다

03. 유럽 여행 도시별 핵심정보 - 마드리드 편

04. 짜릿했던 스페인에서의 첫날밤, 프리메라리가 직관 후기

05. IE 비즈니스 스쿨과 함께 한, 마드리드 생활 2일차

06. 마드리드 씨티투어 - 알무데나 성당, 마드리드 궁전 등

07. 유럽 3대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을 공짜로 즐겨보자!(feat. 레티로 공원)

08. 작지만 아름다운 동화 속의 마을, 세고비아 - 악마의 다리, 세고비아 대성당

09. 백설공주의 성, 세고비아 알 카사르에 가다

10. 꽃할배도 반한 세고비아 전통요리를 즐겨보자! - 코치니요 전문점 메종 데 깐디도

11. 도시의 진정한 매력은 광장에서 나온다. - 마드리드 3대 광장 집중 탐구

12. 세련미 넘치는 마드리드 전통시장, 산 미구엘 시장을 가다.(feat. 산 기네스 a.k.a. 대왕 츄러스 가게)

13. 마드리드에서의 시작과 끝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14. 작지만 아름다운 포르투, 그리고 타트바(Tattva) 호스텔

15. 포르투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무료 워킹투어 체험기

16. 포르투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할 메뉴, 프랑세지냐 맛집 피코타(Picota)

17. 와인에 대한 당신의 상식을 넓히는 순간, 포르투 와이너리 투어

18. 포르투 최고의 핫 플레이스 (1편) - 밤에 더 아름다운 동 루이스 다리

19. 동화 속 상상이 현실로 - 해리포터의 배경, 렐루 서점에 가다

20.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포르투, 클레리고스 종탑에 오르다

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를 찾아서

22. 포르투 최고의 핫플레이스(2편) - 도루 강의 물줄기를 따라서

23. 야간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부제 - 새벽녘의 멘붕)

24. 대서양과 맞닿은 절벽마을, 아제나스 두 마르(Azenhas do Mar)에 가다.

25. 7세기 이슬람 세력의 위엄이 그대로, 신트라 무어인의 성

26. 신트라 숲 속에서 찾은 아름다운 보석, 페나 성에 가다.

27. 대륙의 서쪽 끝, 호카곶에서 석양을 바라보다.

28. 리스본 여행의 단 하나의 이유 - 에그타르트 맛집, ​Pasteis de Belem(파스테이스 데 벨렘)

29. 리스본을 떠나기 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서다.

30. 드디어 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에 첫 발을 내딛다.

31.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 모로코 사막투어의 긴 여정을 시작하다.

32. 글레디에이터의 배경, 아이트 벤 하두 투어기 

33. 사하라 사막은 어디에...? 지루하게 흘러간 사막 투어의 첫 번째 하루

34.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베르베르족 마을과 토드라 협곡

35. 낙타 등 위에서 내려다 본 사하라 사막,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지우다.

36. 대서양만큼이나 파란 하늘을 품은 도시, 에사우이라

37. 여행의 묘미, 예정에 없던 곳에서 뜻밖의 추억을 건지는 것 - 모로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38. 다시 찾은 마라케시, 모로코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길을 잃다.

39. 입생로랑이 사랑한 코발트 블루의 세상,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

40. 그 곳은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 밤에 더 밝게 빛나는 제마 엘프나 광장

41. 다시 유럽으로... 세비야에서 맛 본 '오늘의 메뉴'

42. 세비야 대학에서 버스 터미널을 거쳐 대성당까지, 세비야에 도착하자마자 강행군이 시작되다.

43.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 모든 것이 맘 같지는 않더라! - 메트로폴 파라솔과 스페인 광장에서의 허탈함

44. 지난 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다.

45. '죽어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 콜럼버스의 유언을 지킨 4명의 왕

46. 세비야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 눈에, 히랄다 탑에 오르다.

47. 미슐랭 별이 셋! 세비야 최고 맛집, 'Casa la Viuda'(까사 라 비우다)

 

이 글이 맘에 드셨다면, 하트♡를 눌러주세요!!

작성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