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48

50. 여유 넘치는 아침, 한적한 비탈길을 오르다. - 론다 구시가지 도보여행

론다에서의 이튿날 아침. 4성급 호텔의 푸짐한 아침식사로 배를 두둑히 채웠다. 간만에 여유있는 아침 시간을 보낸 것은 어제 이미 론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누에보 다리의 야경을 마음껏 감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잔뜩 찌뿌린 날씨를 바라보며, '호텔에서 오랜만에 게으름을 피워볼까? 게다가 무려 4성급이잖아!' 악마의 속삭임이 귓가를 파고든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언제나 천사가 지배한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뚱아리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하늘 위 구름도 나처럼 물을 잔뜩 머금은 모양이다.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토해낼 것 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가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파라도르에서 누에보 다리를 건너 구 시가지로 접어들면서 만난 아줄레주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

48. 깎아진듯한 절벽 위 요새 같은 호텔, 파라도르 데 론다

어쩌면 내 평생 가장 맛있었던 대구 요리를 맛본 후, 배낭을 들쳐메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세비야에는 2개의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데, 론다로 가려면 'Prado San Sebastian'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한다. 구글맵에 'Estación De Autobuses Prado San Sebastian'을 입력한 후, 노란색 건물을 찾으면 된다. 세비야에서 론다까지의 거리는 약 130km로 버스로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 45분까지 하루에 5~7편의 버스가 운행하기 때문에 표를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론다에서 1박을 생각한다면 오후 3시반 버스를, 당일치기를 계획한다면 오전 7시 버스를 추천한다. 세비야~론다행 버스 출발 시각 : 07:00 / 10:00 / 11:00 /..

47. 미슐랭 별이 셋! 세비야 최고 맛집, 'Casa la Viuda'(까사 라 비우다)

드넓은 세비야 대성당과 높디높은 히랄다 탑까지 둘러보고 나니, 정말 미칠듯한 허기가 몰려왔다. 이제는 점심을 먹어야 할 때, 그리고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다. 세비야 대성당을 나오는 길, 오렌지 나무가 잔뜩 심어져 있는 정원이 펼쳐져 있다. '오렌지 정원'이라 불리는 이 곳은 이슬람 건축양식에 따라 조성된 중앙정원인데,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성당 구경을 마친 관광객들이 한 숨 돌리며 쉬기에 딱 좋은 장소가. 나무 그늘 아래서 구글맵을 켜고 'Casa La Viuda'를 입력했다. 그리고 나서 휴식이랄것도 없이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까사 라 비우다(Casa la Viuda)', 미망인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세비야, 아니 아마 스페인에..

46. 세비야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 눈에, 히랄다 탑에 오르다.

넓고 넓은 세비야 대성당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던 서울에서 온 수더분한 청년은 이내 체력이 떨어졌는지 어러움을 느낀다. 너무 안에만 있어서 그런걸까? 잠깐이라도 나가서 시원한 바깥 바람을 좀 쐬어야겠다. 마침 전망좋은 탑이 하나 있다는 말에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곳, 이름이 심상찮다. 뭐가 그리 지랄맞은지 모르겠지만, 이름부터가 지랄다 탑이다. 세비야 대성당에 붙어있는 이 탑은 12세기 말, 이 곳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에 의해 건축된 곳이다. 약 100여년 간의 공사 끝에 이슬람 사원을 세비야 대성당으로 리모델링을 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슬람 사원의 흔적이 바로 이 탑이다. 아, 그리고 한가지 비밀을 알려주자면, 이 탑의 이름은 '지랄다'가 아니라 '히랄다'다. 히랄다 탑! 총 3..

45. '죽어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 콜럼버스의 유언을 지킨 4명의 왕

1492년 10월 12일, 에스파냐를 떠난 지 3개월 만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탐험가 콜럼버스는 길고 고된 항해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신대륙 발견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막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넣게도 했지만, 이사벨 여왕이 죽고 난 후에는 재산과 귀족 지위를 모두 빼앗기고 쓸쓸히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 주지 않았던 에스파냐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을까? 콜럼버스는 눈을 감으며,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노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바티칸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과 함께 유럽의 3대 성당으로 알려진 이곳, 세비야 대성당은 콜럼버스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44. 지난 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다.

황홀하다던 세비야 스페인 광장의 야경을 담지 못해서였을까? 유난히도 밤잠을 설치고 난 후, 어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세비야의 날씨는 여전히 흐렸지만, 상쾌한 아침 공기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시내 구경도 할 겸,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언제 어디서나 구글맵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배낭여행을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그래봐야 스마트폰이 나온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제 세비야 도착해서 숙소로 가는 길에 지나쳤던 것 같은 이 건물은 세비야 투우장이다. 커다란 빨간 천을 펄럭이며 황소와 싸우는 투우는 '정열의 스페인'을 상징하는 스포츠다. 하지만 투우의 본고장인 이곳, 스페인에서조차 지금은 그..

42. 세비야 대학에서 버스 터미널을 거쳐 대성당까지, 세비야에 도착하자마자 강행군이 시작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포르투갈에서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온 뒤로 여행이 부쩍 편해졌던것 같다. 외향적이고 놀기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이나 유난히 입에 잘 맞았던 음식 덕분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길에서도 '스마트폰'을 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드리드에서 1주일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한 달짜리 유심칩을 구매해 두었고, 그 덕에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인터넷에 접속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라스 에스코바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일단 세비야 대성당으로 가봤다. 이미 폐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내일 오픈 시간이나 확인해 볼 요량이었는데, 뜻밖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약 두 시간 정도 후에 저녁 미사가 있다는 것이다. '가만있자..

41. 다시 유럽으로... 세비야에서 맛 본 '오늘의 메뉴'

모로코에 첫 발은 내딛은지도 어느 덧 일주일이 지났다. 모로코, 그리고 마라케시가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을 보니 이제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순간임이 분명하다. 집 앞 놀이터처럼 익숙한 제마 엘프나 광장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19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는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마라케시 메나라 공항은 오늘도 여전히 아름답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환전소! 모로코 화폐(디르함)는 다른 나라에서 사용할 수 없을 뿐더러 환전소에서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남은 돈은 반드시 유로화로 환전해야 한다. 공항 환전소 외에는 디르함을 달러나 유로로 바꿔주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환율이 정말 개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거라도 건져야지... 환전에 발권까지 마친 후, 공..

27. 대륙의 서쪽 끝, 호카곶에서 석양을 바라보다.

시간이라는게 참 묘하다. 똑같은 한 시간도 어떤 때는 순식간에 지나자는 반면, 또 어떤 때에는 느릿느릿 길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신트라를 여행했던 그 날의 한 시간은 정말이지 날아가는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신트라에서의 추억을 돌이켜 보니, 그 날의 하루는 정말 길었던 것 같다. 매 순간 순간을 치열하게, 일분 일초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한 달여의 유럽여행 중 가장 많은 곳을 가고, 많을 것을 보면서 알차게 보낸 하우렸다. 당장 블로그만 봐도 그날에 대한 포스팅이 벌써 4개째 진행 중이다. 5분 단위로 시간을 확인하며, 바쁘게 고생하며 보냈던 시간을 보상받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ㅋ 이번 여행에서 가장 바쁘게 보냈던 그 날, 아조네스 두마르..

26. 신트라 숲 속에서 찾은 아름다운 보석, 페나 성에 가다.

영국의 천재 시인, 바이런이 '위대한 에덴'이라 칭했던 곳, 대서양에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 바람 덕에 여름철에도 시원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예로부터 포르투갈뿐 아니라 스페인, 영국의 귀족들은 이 곳 신트라에 별장을 짓고 자연을 음미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신트라의 수 많은 건물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대부분 '페나 성'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포르투갈 특유의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 건물은 마치 놀이동산에나 있을법한 화려한 건물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페나 성은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의 모티브가 되었고, 그 노이이슈반슈타인 성을 본따 만든 것이 디즈니 성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디즈니랜드의 할아버지 앞에 와 있는 셈이다. 434번 버스를 타고 페나 성 앞에 내린 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