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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품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나이키 퓨얼밴드 SE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2. 3. 08:30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품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나이키 퓨얼밴드 SE

 

 

 

드디어 퓨얼밴드가 내 손에 들어왔다. 원래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은, 그 물건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지름신을 영접하는 순간, 최대한 빨리 순응하는 편이다.

 

퓨얼밴드에 대한 욕심은 연초, 다이어트 계획과 함께 시작되었다. 때마침, 유럽여행이 조금씩 다가오면서, 걸을 일이 많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퓨얼밴드를 사야할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팔목에는 퓨얼밴드가 감겨져 있었다.

 

지난 글에도 언급했듯이, 퓨얼밴드는 상당히 매력적인 기기이다. 그러나 퓨얼밴드에 대한 내 첫인상은 카톡 프로필만 믿고 나간 소개팅 자리에 앉아있는 마음이랄까? 지금부터 나의 기대와 실망에 대해 썰을 풀어보자.

 

#1. 떠나간 연인에 대한 추억

 

여기서 문제 하나! '퓨얼밴드는 ㅇㅇㅇ(이)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퓨얼밴드란 무엇인가? 장난감? 레어템? 조력자?

내가 보기엔 퓨얼밴드는 만보기다. 아주 패셔너블한 만보기. 예전에 라이프그램이라는 제품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 '디지털 만보기'라고 해야 하나? 암튼 디자인부터 대 놓고 '저는 만보기 입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물건인데, 첫 인상과는 달리 매우 매력적인 녀석이었다.

 

△ 원래 LG는 뭐 하나씩 빼놓고 만들기로 유명하다. 라이프그램에서 LG는 디자인을 빼놓았다.

 

기능이라고 해봐야 하루동안 움직인 거리와 걸음 수, 소모 칼로리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데,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동기화가 가능하고,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챌린지'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지인들과 경쟁을 할 수도 있었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소소한 재미를 주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투박한 디자인 때문에 팔에 차고 다니기 보다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일이 많았고, 그 때문에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내 손을 떠나가 버렸다. 작년 8월 쯤, 라이프그램을 잃어버리면서, 자연스럽게 걷고 뛰는 것에 대한 흥미도 함께 잃어버렸다. 

 

#2. 새로운 인연에 대한 설렘, 그리고 기대

 

술만 먹으면, 아니 어딘가를 걷기만 하면 생각나는 라이프그램을 잊기 위해 새로운 만보기가 필요했다. 순박한 이미지의 라이프그램과는 달리, 퓨얼밴드는 외모에서부터 차갑지만 도시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퓨얼밴드의 섹시함에 이미 예전에 쓰던 그 기기는 이름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정도 디자인이라면 이제부터 당당하게 손목에 차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이키에서 만든 최신형 웨어러블 디바이스라고 하니, GPS는 물론 어마어마한 기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 주말에 종종 보던 '트랙 자랑'을 조만간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3. 첫 만남

 

지난 토요일, 하라주쿠의 나이키 매장에서 퓨얼밴드를 구입했다. 가격은 9천엔 남짓, 대충 9만원 정도다. 원래 15~20만원 정도를 생각했는데, 거의 절반 가격에 득템한 셈이다. 다만, 재고 부족으로 내가 원하는 색상과 사이즈를 선택하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디자인은 대충 적응하면 다 똑같아지기 마련이니, 별 후회는 없다.

 

참고로 퓨얼밴드는 안쪽 면과 이음새 부분을 기준으로 그린, 핑크, 오렌지, 블랙 정도의 색상을 고를 수 있다. 바탕색은 모두 '블랙'이며, 버튼을 누르면 하얀색 LED로 글자나 숫자가 표시된다. 사이즈는 S, M~L, XL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사이즈 조절을 위한 보조 밴드가 함께 들어있다.

 

 

위에 보이는 사진에서처럼 조그만 구멍에 바늘(?)을 꽂고 누르면 보조 사이즈를 추가할 수 있다. 사실 직접 구성품을 보면 누구나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 후회

 

사실 퓨얼밴드에 기대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깔끔한 디자인, 체계적인 운동량 측정, 편리한 동기화 정도? 하지만 디자인을 제외한 나머지 두가지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하자면, 나쁘진 않지만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

 

일단 퓨얼밴드는 '뜀박질'에 특화된 기기이다. 운동량을 측정하는 기준이 '걸음'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자전거나 등산같은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만으로도 다양한 스포츠의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아쉬운 일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자전거나 등산을 할 때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트랭글' 앱을 사용할 생각이다.

 

 

 

 

둘째, GPS를 지원하지 않는다. 사실 구입전에 리뷰를 꼼꼼하게 읽고 이 내용을 확인했었더라면, 절대 퓨얼밴드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GPS 기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절망했다. 퓨얼밴드를 차고 뛰는 것 만으로는 지도에 내가 운동한 코스가 뜨지 않는다. 흠... 디자인을 제외하고는 퓨얼밴드와 라이프그램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째, 안드로이드 이용자들은 기록을 동기화하기가 상당히 번거롭다. 사실, 이부분은 좀 더 내용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 구글스토어를 아무리 뒤져봐도 안드로이드 용 퓨얼밴드 앱을 찾을 수는 없었다. 리뷰를 검색해 보면, 2014년 6월 쯤 안드로이드 앱이 중으로 출시되었다는 내용이 꽤 있었는데, 아무튼 나는 그 앱을 찾지 못했다. 앱을 출시했더라도 이용자가 찾을 수 없다면?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USB를 통해 PC에 연결하면 기록을 금방 동기화할 수는 있지만, 흠.. 뭐랄까... 암튼 좀 그렇다.

 

#5. 마치며,

 

사실 퓨얼밴드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가 커서 그렇지, 기기만 보면 그리 나쁜 물건은 아니다. 사실 라이프그램이 퓨얼밴드보다 나았던 점은 단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믿기 어렵겠지만 가격도 거의 비슷하다. 주변에 라이프그램보다 퓨얼밴드를 쓰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함께 경쟁할 사람을 찾기에도 훨씬 용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얼밴드는 상당한 아쉬움을 주는 기기이다. 물론, 퓨얼밴드는 스스로 '대단한 기기'라고 자랑한 적이 없다. 그냥 나 혼자, '나이키가 만든 웨어러블 디바이스'라는 수식어에 도취되어 '뭔가 대단한 기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이것이 나이키, 그리고 퓨얼밴드가 영리하다고 했던 이유다.

 

하지만 퓨얼밴드에 대한 아쉬움은 스포츠 의류회사 '나이키'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퓨얼밴드를 처음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나이키가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해 본업(스포츠 의류)에 재미(엔터테인먼트)를 얹어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분명 나이키도 그러한 변신을 꿈꿨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아직까지는 나이키가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혁신기업으로 거듭나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나이키가 웨어러블 사업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소비자가 느끼는 한계에 대해 본인들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하드웨어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소프트웨어 부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기기는 삼성이나 애플 같은 장인들이 만들면 된다. 중요한 것은 웨어러블 기기에 축적될 데이터를 나이키의 플랫폼으로 끌어올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아직 소비자들에게 나이키는 '스포츠의 대명사'와도 같은 존재다. 과연 나이키가 자신들의 명성에 어울릴 만한 '스포테인먼트 플랫폼'를 구축해 고객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 만약 그 날이 오면, 내 손목에는 또다른 퓨얼밴드가 감겨져 있을 것 같다.

 

<나이키 퓨얼밴드 SE(NIKE+ Fuelband SE) 리뷰> ... 클릭하시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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