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쓰는 경제스토리/Economic Focus

브레이크가 고장난 유가하락, 그 원인은?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1. 23. 15:17

 브레이크가 고장난 유가하락, 그 원인은?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 당 45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작년 7월만 해도 100달러 가까이 하던 유가가 6개월 사이에 반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과연 최근 반 년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번 유가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미국의 셰일오일이다. 셰일오일이란 지하에서 생성된 원유 중 지표면 근처로 이동하지 못하고 암석 등에 갇혀있는 원유를 말한다. 그 동안은 높은 채굴 비용 때문에 오랜기간 방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리먼사태 이후 미국이 자국 경기부양을 위해 셰일오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석유공급이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 출처 : 위키피디아(http://it.wikipedia.org/wiki/Gas_da_argille)

 

한편, 글로벌 경기 둔화로 석유 수요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요가 적고,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은 경제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이다. 하지만 유가 하락을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뭔가 찝찝한 구석이 있다. 과거에도 원유시장의 수급이 꼬였던 적이 종종 있었지만, 유가가 이렇게 급락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그 동안은 원유가격이 내려간다 싶으면, 중동에 있는 나라들끼리 쑥덕쑥덕하다가 원유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발표해 버렸다. 신문기사에서 종종 봤었던 'OPEC 원유 감산 결정'이라는 헤드라인이 바로 그 것!!! 일종의 담합을 통해 OPEC에서 원유 공급을 줄이면, 원유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 그래서 감산을 발표하는 그 순간부터 전 세계 투기자본이 원유 시장으로 몰려든다. 유가가 오르기 전에 사재기를 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말이다. 이제 유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면 중동 애들은 슬그머니 원유를 캐다가 시장에 내놓는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만수르는 맨체스터 시티를 샀고, 지금도 호날두와 메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놓았다 하는 것,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사우디 등 중동 애들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복잡한 머리싸움이 있다.

 

△ 출처 : OPEC 홈페이지(http://www.opec.org)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석유 부존량'이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전 세계의 석유가 고갈되는 무시무시한 날이 온다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한 10년 정도 지나니, 그 부존기간이 40년으로 늘어나버렸다. 과연 '석유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것'일까? 원유 가격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더 많은 원유를 캐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이 모여 채굴 기술의 혁신을 이뤄내고, 인간의 힘으로 뽑아낸 수 있는 원유의 양이 많아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양광, 풍력 등 대체 에너지 기술도 발전하게 된다. 어쩌면 더 이상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돌이 사라져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원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대체 자원의 등장으로 인해 석유의 전성시대가 끝날 수도 있다. 아마 중동 국가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셰일오일의 등장으로 중동 국가들이 점점 긴장하기 시작했다.

 

 

퇴적층 결을 따라 넓게 퍼져 있는 셰일오일을 뽑아내려면, 엄청난 기술과 비용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셰일오일을 채굴하는 데 드는 비용은 배럴 당 약 60달러 정도로, 일반적인 원유 채굴 비용(30달러) 2배 정도 된다. 셰일오일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원유가격이 100달러를 호가하던 때였기에, 충분한 수익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만약 원유가격이 지금 수준에서 반등하지 못한다면, 점점 도산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익성 부족으로 셰일오일 채굴관련 기술 및 인프라 개발이 중단됨에 따라, 미국의 셰일오일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시장에 원유를 계속 공급함으로써, 가격을 떨어뜨리고 미국의 셰일오일 기업을 말려 죽여버리는 것, 사우디 등 중동국가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문제는 미국과 사우디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 아니 고래가 있다는 것. 전통적으로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 비중이 높은 러시아가 유가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러시아는 수출의 절반 가량을 원유 및 관련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원유가격의 폭락은 러시아에게 있어 사실상 국가 도산의 신호탄. 실제로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러시아를 무릎꿇게 만든 것도 국제유가의 폭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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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상남자'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는 미국에 도전하는 신흥 깡패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는 중이었다. 지난 해, 크림반도에서 벌어진 우크라이나 사태는 '막 나가는 러시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것. 러시아가 이렇게 돌발행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효도르만큼이나 강한 군사력과 함께 천연 자원(석유, 가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유가가 폭락하면서, 러시아에 심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1년 사이에 반토막이 나버린 것.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도 빠르게 줄어들면서, 러시아의 국가부도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기 아까울 것이다. 러시아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리기 위해서인지 미국은 아직까지는 손실을 감수하고 셰일오일을 계속 캐내고 있다.


'치킨게임'이라는 말이 있다. 치킨이란 속어로 '겁쟁이'를 의미하는 데, 누가 정말 겁쟁이인지 알아보기 위해 하는 위험한 게임을 말한다. 가령, 철로 한복판에 서있다가 돌진해오는 기차를 먼저 피하는 사람이 진다던가, 도로의 양쪽 끝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가다가 충돌 직전에 먼저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그런 류의 게임을 말한다. 유가 시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그리고 러시아가 얽혀있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항복선언을 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치킨게임을 연상시킨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소설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그럴 듯하게 썰을 풀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 내일 유가가 폭등할 수도 있고, OPEC이 감산을 결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가하락이 조금은 더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 과연 유가의 바닥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 바닥에선 어디에 투자해야 목돈을 만질 수 있을까? 그리고 정유, 화학, 조선업에 투자해 정화조에 처박혀버린 우리의 계좌는 언제쯤 회복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