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Hi-Thai, 2016 & 2018

02. 태국 최대의 재래시장, 짜뚜짝 시장에서 두 손 가득 쇼핑을 즐기다.

비행청년 a.k.a. 제리™ 2017. 1. 2. 08:30

 

잠자리가 바뀌어서였을까? 이른 아침부터 저절로 눈이 떠졌다. 호스텔에서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후텁지근하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아! 동남아구나!' 쌀쌀한 겨울바람에 잔뜩 움츠러들었었던 어제까지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휴가를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태국은 대학생 시절, 패키지로 파타야를 여행했던 것이 전부인지라 내게는 조금 생소한 나라다. 그냥 필리핀, 베트남 같은 동남아 국가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왔는데, 첫인상이 제법 괜찮았다. 깔끔한 도로에 나름 맑은(?) 공기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산책도 할 겸, 버스 정류장을 찾아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티셔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머나먼 이 곳, 방콕에서도 세월호를 추모하는 걸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동시에, '아! 이 나라의 국왕이 얼마 전에 서거했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왕을 너무나 사랑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나라, 적어도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풍경이다.

 

 

땡볕아래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드디어 버스에 올라탔다. 태국에서는 버스에 타고 적당한 자리에 앉으면, 안내양(?) 아주머니가 동전통을 들고 승객에게 다가와 요금을 받아가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때 탄 버스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요금을 받아갈 생각이 없어보인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승객에게도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방콕에서는 당분간 버스를 무료로 운영 중이라더라. 버스 전체 노선은 아니고 일부 노선의 낡은(?) 버스에 한해서 말이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공짜라니 기분은 좋다. ㅎ

 

 

버스로 약 20~30분 정도를 당여 도착한 짜뚜짝 시장의 입구에는 2016년 10월에 사망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추모하는 사진이 놓여져 있었다. 태국에서는 국왕 사망 후 1년 간을 추모기간으로 지정했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관공서는 물론 백화점, 심지어 이런 재래시장 등 곳곳에 사진과 꽃을 두고 태국 전체가 국왕의 죽음을 애도한다.

 

 

방콕의 많은 재래시장 중, 단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짜뚜짝 시장은 '주말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여는 주말에 가는 것이 좋겠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평일에라도 가 보는 것이 좋다. 평일에도 제법 많은 수의 상점이 영업을 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about 짜뚜짝 시장

 - 위치 : BTS 모칫(Mo Chit)역에서 도보 10분

 - 영업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평일에는 정오 이후에 문을 여는 가게가 많음)

 - 점포 및 방문자 수 : 약 10,000여개 점포 / 일 방문자 20만 이상(주말기준)

 - 인기품목 : 가죽 여권지갑, 팝아트 판넬, 과일비누, 식기 및 주방용품 등

 

 

매서운 한파가 서울을 강타했던 12월의 어느 날, 방콕의 짜뚜짝 시장은 뜨거운 태양의 열기로 가득찼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과 타는 듯한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60바트,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2천원 정도를 내면, 망고가 듬뿍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짜뚜짝 시장 곳곳에 망고 또는 코코넷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이 널려 있으니, 무더운 날씨에 지칠 때마다 수분과 당을 보충해 보자.

 

 

아이스크림을 깔끔하게 비운 후, 본격적으로 쇼핑에 나섰다. 상점의 수가 무려 10,000여개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시장인지라, 애시당초 길을 찾는다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발길 가는대로 걸었다. 굳이 찾지 않아도 길을 걷다보면 매력적인 물건들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곳, 여기가 바로 짜뚜짝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전세계 어디에서든 통하는 뭔가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꼭 잡고 시장을 따라나설 때면, 호떡이나 떡볶이 같은 시장음식이 나를 반기곤 했다. 그런데 그로 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머나먼 태국 방콕의 짜뚜짝 시장을 걸으며,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재래시장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치 20여년 전 서울의 어느 날 처럼, 이 곳 짜뚜짝 시장 곳곳에서는 다채로운 종류의 음식들이 저마다 냄새를 풍기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음식의 종류는 떡볶이와 순대에서 치킨 조각, 팟타이 같은 것으로 달라졌지만, 음식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에 두고 온 친지, 가족, 직장동료들을 위한 선물을 한 번 골라보자. 1순위 추천 아이템은 바로 천연 과일 비누다. 정말로 천연 과일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나름 그럴듯한 향과 캐리어에 넣기 간편한 사이즈, 깨질 염려 없는 내구성까지 여행 선물의 3대 미덕을 완벽히 갖춘 훌륭한 아이템이다. 사실, 과일 비누는 방콕 시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지만, 뭐 그래도 기왕 짜뚜짝 시장을 찾았다면 비누 몇 개쯤은 골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격은 1개에 40~50바트(약 1500원) 수준.

 

 

벌써 3년 전, 태국으로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회사 인턴으로부터 무척이나 인상적인 선물을 하나 받은 적이 있다. 화려한 색감과 센스있는 한마디가 곁들여진 마크 주커버그의 팝아트 초상화였는데, 태국의 Keetatat Sitthiket라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짜뚜짝 시장, 예술품 코너의 한 상점에는 고흐부터 호날두, 심지어 소녀시대 태연까지 Keetatat Sitthiket이 그려낸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팝아트 초상화가 한 데 모여있었다. 단 한 컷의 그림에 인물의 스토리를 담아낸 이 액자의 가격은 200바트, 단돈 6천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다. 여러 개 구입하기에는 부피가 좀 크고, 나무 판넬의 파손 위험이 있긴 하지만 받는 사람의 만족도를 생각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터, 힘 닿는 데까지 사서 잘 한 번 포장해 보자. 위치를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지도를 보고 7번 섹션으로 찾아가 상점을 하나씩 뒤지다 보면 아마도 팝아트 갤러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참고로 가게 규모가 생각만큼 큰 편은 아니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차양막이 있는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앙증맞은 그릇을 하나 발견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그릇인데, 젓가락을 꽂는 구멍이 포인트다. 디자인은 일반 그릇에 비해 투박했지만, 단지 저 구멍 하나가 너무 재미있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흥정을 시작했다. 아무리 깎고 또 깎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에 350바트였다.

 

 

좀 전에 샀던 인생템, 팝아트 액자의 2배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이었지만, 저 구멍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은 지갑을 열고야 말았다. 그깟 구멍이 뭐길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절대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갓 끓인 라면을 그릇에 담아내 구멍을 통해 그 위에 젓가락을 올리면 모락모락 피어나는 새하얀 김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하찮은 안성탕면 하나에도 빈티지한 감성이 오롯이 스며드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 그려진 컵, 요것도 상당히 욕심났던 아이템이다. 컵에 그려진 동물들이 뛰쳐나오려는 듯, 그림의 일부가 손잡이 부분까지 이어진 것이 제법 위트있었다. 이미 쇼핑을 많이 하기도 했거니와, 집에 있는 식기와는 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쳤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한 두개 정도 살 껄'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짜뚜짝 시장은 워낙에 규모가 크고 상점도 많아서 하루에 둘러보기에는 꽤나 버거운 편이다. 저마다 여행이나 쇼핑하는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미리 세세하게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계획대로 쇼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어머, 이건 꼭 사야해!'하는 물건 정도만 미리 정해두고, 시장 곳곳을 보물찾기하듯 둘러보다 보면 아직 인터넷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물건을 득템할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맘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면, 그 자리에서 사도록 하자. 내가 놓쳐버렸던 저 티셔츠에 쓰인 대로 내일 또는 다음 기회를 노리다가는 자칫 미로같이 복잡한 시장 골목에서 길을 잃고 그 물건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바로 사는 것' 그게 짜뚜짝 시장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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