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Hi-Thai, 2016 & 2018

01. Prologue - Escape from normal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2. 19. 08:30

 

2016년,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골치아픈 일들을 뒤로 하고 과감하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사실, 회사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시기라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고심끝에 방콕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한 달전부터 계획했던 휴가는 출발 전날이 되어서야 결재가 떨어졌고, 비행기가 뜨는 당일에서야 겨우 짐을 꾸리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으로 들어서는 순간만큼 가슴 설레는 때가 있을까? Escape from Normal, 이 블로그의 모토이자, 이번 여행의 컨셉이다.

 

 

누군가가 30년을 살짝 넘은 일생동안 가장 잘한 일을 물어본다면 주저하지 않고 'pp카드를 만든 것'을 꼽으리라. 면세점 쇼핑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출국심사대를 나와 2층 허브라운지로 향했다. pp카드 하나만 있으면 이 모든 음식이 무료! 쾌적한 환경에서의 아늑한 휴식은 덤이다.

 

 

같은 음식도 라운지에서 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무 생각없이 음식을 담고 나서야 내가 어제까지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에라 모르겠다. 'escape from normal'이라고 생각해야지 뭐, 열심히 처묵처묵하고 또 한 접시를 더 비웠다. 두둑해진 뱃살을 쓰다듬으며, 방금 내가 한 짓이 'escape from normal'이 아니라 'back to the normal'임을 깨달았다. 젠장,

 

 

라운지에서 충분히 배를 채운 후, 방콕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구름 위로 비행기가 떠오르고 해는 땅 아래로 가라앉는 순간, 창 밖으로 그림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30만원짜리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더니, 역시나 좌석에 스크린 하나 없는 열악한 환경이다. 앞으로 5시간을 어떻게 버텨야할까? 그나마 스마트폰에 다운 받아놓은 영화가 하나 있길래 그걸로 두시간은 대충 때울 수 있었다.

 

 

기내식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이놈의 배가 눈치없이 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5천원짜리 비빔밥을 하나 주문했더니, 전투식량을 닮은 밥 봉지가 나타났다.

 

 

뜨거운 물을 붓고 5분을 기다린 후, 고추장 양념을 쓱싹쓱싹 비비면, 제법 그럴 듯한 비쥬얼의 비빔밥이 완성된다. 한 숟갈 떠 먹어보면 밥인듯 밥아닌듯 밥같은 정체불명의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나름 버섯 비빔밥이라고 라면 스프에 있을법한 버섯도 종종 씹힌다. 소스는 뭐랄까? 비빔면 소스 같다고 해야 하나? 전체적으로 암튼 정통 비빔밥과는 분명 거리가 있는 음식이다. 그래도 나름 불량식품처럼 묘한 매력을 가진 메뉴다. 언제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맛 볼 수 있는 신라면을 4천원 주고 먹을 바에야, 새로운 경험을 하는 셈 치고 이걸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뭐, 베스트는 기내에서 먹을 음식을 미리 싸오는 거지만 말이다. (참고로 옆좌석에 앉은 승객이 먹던 파리바게트 샐러드가 엄청 맛있어 보였음)

 

 

어느 덧 비행기는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했고, 잽싸게 짐을 찾은 후 방콕에 첫 발을 내딛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오면 좌,우로 통신사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서 7일짜리 유심칩을 하나 샀다. 299밧, 우리 돈으로 만원 남짓한 가격이다.

 

 

공항철도(ARL : Airport Rail LInk) 표지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자동판매기에서 토큰을 하나 구입했다. 종점(파야타이)까지 운임은 45밧(1,500원)이다. 스크린 오른쪽 상단에 English 버튼을 누르면 여렵지 않게 토큰을 구입할 수 있다.

 

 

파야타이 역에서 빠져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급히 부른다. 'Are you Korean?' 익숙한 억양의 영어 한마디에 뒤를 돌아보니, 한국 여자분이었다. 혹시 카오산로드로 가는 거라면,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는 제안에 선뜻 응했다.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택시가 카오산로드 근처에 도착했다.

 

 

아! 여기구나! '소이 람부뜨리'라는 골목 입구에서 여기가 바로 '배낭여행의 성지'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배낭여행객들의 활기 넘치는 에너지가 후끈한 공기를 타고 내게 전해지는 듯한 기분에 머릿 속을 어지럽히던 한국에서의 복잡한 기억들이 일거에 사라지기 시작한다.

 

 

전철역에서 만난 한국분을 따라 무작정 찾아간 한인 게스트 하우스 '홍익인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는 침대가 있는지 물었는데, 다행이 한 자리가 있다고 한다. 12월은 태국 여행의 성수기라 첫날 숙소가 내심 걱정되었는데, 큰 숙제를 하나 해결한 셈이다. 뭐랄까 계획을 하나도 세우진 않았지만,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것 같은 묘한 상황에 이번 여행이 생각보다 순조로울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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