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인천에서 이스탄불... 그리고 괴레메까지, 기나긴 여정의 시작

 

2015년 12월 25일은 앞으로 수 년 동안 잊지 못할 내 인생의 특별한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을 새가며 일을 한 것도 모자라 (아마도) 평생동안 가장 붐비는 인천공항을 경험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역에 내려서 게이트 앞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세 시간. 2015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대한 기억은 지친 심신을 이끌고 하염없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것 밖에 남지 않았다. 혹시라도 비행기를 놓칠까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 비행기에 올라타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 시간쯤 정신없이 곯아떨어졌을까? 웅성대는 소리에 잠이 살짝 깼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 아! 기내식이구나. 허리를 곧추 세운 후, 좌석 앞 테이블을 내려 음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비빔밥 대신 새우요리를 주문했는데, 맛이 제법 괜찮았다. 

 

전날 밤을 샌 덕분이었을까? 기내식을 먹을 때(2번)를 제외하고는 비행시간 내내 푹 잘 수 있었다. 물론 불편한 의자 탓에 중간중간 뒤척이긴 했지만, 10시간 중 9시간을 잠들어 있었던 덕에 터키에 도착해서도 시차를 거의 느끼지 않았다.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있는 그대여,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보자.

 

 

퍼질러 잠만 잔 탓에, 기내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야말로 먹고 자고만 했을 뿐... 아무튼 당신이, 아니 내가 잠든 사이에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드디어 형제의 나라 터키에 도착했다. 부시시한 머리를 손으로 대충 정리하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발이 탱탱 부어있어서 도무지 신발이 들어가질 않는다. 옆에 서 있던 스튜어디스분이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라며 빙긋 웃는데, 어찌나 멋쩍던지... 그나저나 발이 이 정도로 부었으면, 도대체 얼굴은 얼마나 커졌을까? 젠장, 스튜어디스가 웃은 건 내 발이 아니라 얼굴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에서 내려 드디어 터키의 땅을 밟는 순간, 발이 부어서였을까? 푹신한 느낌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도착한 곳은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한국에서 왔으니 당연히 국제선이다. 여기서 한 시간 가량 국내선을 타고 최종 목적지인 카파도키아의 네브세히르 공항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른 의문점 하나! 나는 입국심사를 받고 나가야하는 걸까? 아니면 환승게이트를 찾아 헤매야 하는 걸까? 입국심사는 최종 목적지인 공항에서 받으면 되려나?

 

정답은...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 일단 아타튀르크에서 네브세히르 공항으로 가려면 국내선을 타야하는데, 내가 있는 곳은 국제선 쪽이기 때문에 입국심사를 마친 후,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환승 게이트는 국제선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로 가는 승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당시에는 잠이 덜 깨서인지 상당 시간 동안 멍하니 서서 고민을 했었다. ㅠㅠ 혹시라도 장시간 여행으로 판단력이 흐려지신 분들께 이 포스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 참고로 국내선 이용 시, 터키항공은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바로 환승이 가능하지만, 다른 항공사의 경우에는 사비하 괵첸 공항으로 이동해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할 수도 있으니, 이 부분은 사전에 꼭 체크하시길...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왔다면, 왼쪽으로 유심칩을 파는 통신사 매장이 몇 개 보일 것이다. 한국에서 로밍 신청을 하고 왔거나, 와이파이 외에 별도의 인터넷 접속이 필요없다면 모르겠지만, 이제는 해외여행에서 현지 유심칩을 구매하는 것은 선택이라기보다 필수에 가깝다. 다만, 이스탄불 시내로 바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공항보다 시내 매장의 가격이 훨씬 저렴하다고 한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의 유심칩 구입 방법은 http://jerrystory.tistory.com/222 를 참고하시라.

 

혹시라도 비행기가 연착되진 않을지, 공항 환승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지, 공항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지, 심지어 배가 고파서 밥이라도 먹어야하지 않을지 등등 다양하고 창조적인 걱정을 떠올리면서 카파도키아 행 비행시간을 최대한 늦춰서 예매한 탓에 공항에서 서너시간을 멍하니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버거킹에서 밥도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마셔가며 터키 현지 물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공항과 시내의 물가는 천지차이였다는 사실. 어쩐지 생각보다 너무 비싸더라... ㅠ

 

 

기나긴 환승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카파도키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록 한 시간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나름 기내식이라고 빵도 가져다 주었다. 과일에 초코렛 무스까지, 한 끼 식단의 면모를 갖춘 훌륭한 기내식이었다. 특히 초코렛 무스는 맛이 제법 괜찮았다.

 

살짝 아쉬운 맘이 들 정도로 짧은 비행을 마친 후, 카파도키아의 네브세히르 공항에 내렸다. 공항 직원의 안내에 따라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수화물을 기다리는데 괜시리 가슴이 두근두근...

 

 

사실 인천공항에서 수화물을 부칠 때, 이스탄불이 아닌 카파도키아까지 짐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아타튀르크 공항)까지는 아시아나,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네브세히르 공항)까지는 터키항공을 타고 이동했는데, 마침 아시아나와 터키항공이 '스타얼라이언스'로 묶여있는 파트너 사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무튼 중간에 환승할 때는 짐을 찾을 필요가 없어 편했는데, 막상 짐을 찾을 때는 '혹시라도 이스탄불에서 짐이 안넘어왔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뭐 짐찾는 과정에서 자잘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짐을 찾은 후, 공항 밖으로 나오니 숙소에서 미리 예약해 둔 셔틀버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브세히르 공항에서 카파도키아, 정확히는 괴뢰메 마을까지는 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숙소를 통해 셔틀버스를 미리 예약할 수 있다. 셔틀버스를 타면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셔틀버스 요금은 1인당 20리라.(편도, 2015년 12월 기준)

 

 

공항에서의 대기시간을 포함해서 장장 20여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현지시각으로 저녁 11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괴레메 마을의 숙소는 99%가 '동굴호텔'이다. 바위를 깎아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 집을 짓는 대충 그런 형태인데, 이게 묘하게 운치가 있다. 얼핏 추워보이기도 하고,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서 불편하다는 후기도 있지만, 첫 인상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눕고 나니, '아! 드디어 터키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에 침대 옆의 라지에이터,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돌가루가 떨어질 것만 같은 벽과 천장까지... 한국에서의 일상과 180도 다른 분위기가 낯설면서도 기분 좋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일상에서의 탈출!'

이 것이야 말로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자,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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