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나홀로 터키

03.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황홀함, 벌룬투어로 터키여행의 시작을 알리다.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3. 3. 08:30

 

잠자리가 바뀌어서였을까? 아침, 아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터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벌룬 투어는 해가 뜨기 전,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카파도키아 상공에서 일출을 감상한 후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새벽 4시, 숙소 앞까지 우리를 데리러 온 픽업 차량에 몸을 싣자마자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사 이름이 크게 적힌 미니밴 차량은 괴뢰메 마을 곳곳의 호스텔을 들러 사람들을 태운 후, 꽤 그럴듯한 식당에 도착했다. 작고 퍽퍽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차로 다시금 10여 분을 달리고 나니 황량한 공터 곳곳에서 뭔가에 매달려 끙끙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 너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축 늘어진 벌룬에 불을 쪼이면 조금씩 풍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벌룬이 크게 부풀어 오를수록, 그 모습을 신기해하는 관광객들도 하나둘씩 늘어간다. 저마다 이 신기한 광경을 담기 위해 핸드폰이나 카메라를 꺼내는데,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얼굴이 후끈거렸다.

 

 

벌룬에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느라 다들 분주히 움직이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벌룬의 화염방사기(?)가 켜져 있었다면 더 멋진 사진이 나왔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운 순간이다.

 

 

20여 분 정도? 뜨거운 불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가며 보채고 나니, 그제야 열기구가 긴 잠에서 깨어나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캄캄했던 이곳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할 무렵, 벌룬이 하나둘씩 하늘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열기구의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만큼 벅찬 기대와 함께 나의 가슴도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다른 벌룬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다급하게 부른다. 고개를 돌리니, 인상 좋은 아저씨 한 분이 빨리 열기구 안으로 들어오라며 내게 손짓을 한다. 고등학교 때 담을 넘던 실력을 발휘해 열기구 바구니 안으로 올라탔다. 나 말고도 두어 명을 더 태운 후, 아저씨는 손을 번쩍 들어 이륙을 알린다. 머리 위에서 화염방사기가 불을 내뿜는데, 머리카락이 홀랑 다 타버리는 줄만 알았다.

 

 

카파도키가 벌룬투어의 묘미는 다른 벌룬을 구경하는데 있다.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올려다 보는 것도 멋있지만, 이륙을 준비 중인 벌룬을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것도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땅에서 먼저 날아오르는 벌룬을 구경할 때에는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증과 설렘이 밀려오는 반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에는 '맞아! 바로 그 느낌이지' 하며 저 쪽 벌룬에 탄 사람들과 묘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얼굴 한 번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바로 옆에서 두둥실 떠오르는 벌룬을 보면서 '내가 탄 열기구의 풍선도 저렇게 크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벌룬이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뷰가 펼쳐졌다. 어느 새 어둑어둑한 새벽이 지나고 주변이 환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괴뢰메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기암괴석 사이로 두둥실 떠오르는 벌룬의 모습이 장관이다.

 

 

사실 터키 여행의 성수기는 여름철이다. (아직 연재 전이지만,) 지난 남미 여행부터 본의 아니게 비수기를 골라서 여행을 하고 있는데, 성수기에 비해 물가도 싸고 북적이지 않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행은 자고로 성수기에 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벌룬 투어만 해도 겨울철에는 운행하는 벌룬의 수가 성수기의 절반도 안된다고 한다.

 

 

벌룬 투어의 가장 큰 볼거리는 하늘을 꽉 채운 수많은 벌룬들이다. 결국 비수기에는 그 감동이 고작해야 성수기의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는 거다. 물론 투어비가 성수기에 비해 10~20유로 정도 저렴하긴 하지만, 고작 돈 2~3만 원 아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급적 터키 여행은 여름에 하자!

 

 

외롭게 홀로 두둥실 떠있는 벌룬의 자태! 12월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라며 애써 위로해보지만, 도저히 아쉬움을 달랠 수가 없다. 여름이라면 사진 속 여백이 수많은 벌룬들로 꽉꽉 채워져 있겠지? 기회가 되면, 7월에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아야겠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데, 갑자기 조종사 아저씨가 끙끙대며 소리를 지른다. 벌룬에 뭔가 문제가 생긴 눈치다. 그치만 우리는 금세 사태를 파악했다. 벌룬이 고장 난 척하며 고도를 급격히 낮추고, 우리에게 협곡을 가까이서 보여주려는 속셈인 것을,

 

 

삐죽삐죽 솟아오른 봉우리 사이를 묘기하듯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후, 열기구가 다시금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때쯤이면 으레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멀리 절벽 사이사이에서 벌룬들이 두더지 게임을 하듯 쑥쑥 튀어나왔다.

 

 

이 사진을 보니 벌룬이 제법 많은 것도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을 마구 찍어대기보다 열기구 바구니에 기대어 멍하니 경치를 감상했다. 벌룬 하나하나가 물속의 공기방울과 오버랩되면서 문득 필리핀에서 스킨스쿠버를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2015년 한 해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높이 올라간 걸까? 눈높이가 푸른 하늘에 맞춰지면서 시야가 탁 트이는데 갑자기 고소공포증 비슷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조종사 아저씨께 물어보니 대략 3,000피트 상공이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 3,000피트라, 네이버를 뒤져보니 대략 900m 정도 되는 높이인데, 얼마나 높은지는 여전히 감이 잘 안 온다.

 

 

주변이 환해진 뒤라 이미 해가 뜬 줄 알았는데, 웬걸 이제 막 해가 뜨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눈높이를 맞춘 채, 일출을 감상하고 있다니! 당시에도 그랬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도 터키, 그리고 카파도키아 괴뢰메 마을을 꼭! 한번 여행해 보자.

 

 

이상하게 오늘따라 마음먹은 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 것 같다. 당시의 가슴 벅찬 설렘과 느낌을 글로 담아내기엔 나의 작문 실력이 부족한가 보다. 삼십몇 년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던 감정과 경험을 글로 표현한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주는 울림이 더 큰 것 같아, 비슷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최대한 여러 장을 올리는 중이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열기구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벅찬 감정도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당히 넓은 공터를 찾은 조종사는 풍선의 바람을 급하게 빼는 듯한 액션을 취했고, 아주 낡은 경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처럼 벌룬이 덜컹거리며 착륙에 성공했다. 혹시라도 다칠 수 있으니 무릎을 굽히고 무게중심을 약간 뒤에 두는 엉거주춤 자세를 이륙 전에 배웠었는데, 다들 혹시라도 죽을까 봐 온 힘을 다해 포즈를 취하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물론 나의 몸도 엉거주춤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약 한 시간 가량의 비행이 끝나고 나면, 벌룬 회사에서 준비한 샴페인을 나눠 마시며 무사귀환을 자축한다. 추운 겨울날 아침이라 바람이 매섭게 몰아친지라 샴페인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샴페인을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동안, 투어사에서는 참가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벌룬 투어를 무사히 마쳤다는 인증서를 나눠 주었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인증서까지 주나며 쿨내를 풀풀 풍기며 인증서를 받아들었는데, 내 이름이 뭔가 이상하게 적힌 것 같다. 아침에 픽업 차량에서 이름을 적어 내라길래 잠결에 대충 적어서 냈는데, 글씨를 삐뚤뺴뚤써서 그런지 직원이 내 이름을 잘못 옮겨 적었나 보다. '이름을 다시 적어서 발급해 달라고 할까?', '이것도 하나의 추억거린데, 그냥 가져갈까?'를 한참 동안 고민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쿨가이'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터키 여행의 첫 번째 코스, 벌룬 투어에서 나는 그렇게 자아를 찾아가고 있었다. 왠지 이번 여행도 뭔가 기대가 된다! ㅎ

 

<관련글> -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포스팅으로 이동합니다.

 

[프롤로그] 여행을 떠나든가, 회사를 떠나든가

[터키 완전정복] 떠나기 전, 이것만은 꼭 알아두자!

01. 인천에서 이스탄불... 그리고 괴레메까지, 기나긴 여정의 시작

02. 한국인 스텝이 있어 더욱 정겨운 '트레블러스 돔 케이브'(Travellers The Dorm Cave)

 

포스팅이 맘에 드셨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주세요!!

작성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