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Traveling Story

[출장과 여행사이] 1. 워싱턴 DC를 한 눈에,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1. 25. 08:30

 

"미... 미국 출장이요?"

 

지난 일 년 동안에만 12개의 나라를 여행했지만, 정작 미국 땅은 아직까지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다. 그냥 막연히 '언젠가 갈 기회가 한 번쯤은 생기겠지'했는데, 그 기회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왔다. 미국, 그것도 워싱턴 DC 출장이라니,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어르신(임원)을 두 분이나 모셔야 한다는 것. 그래도 회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은 분명 가슴 떨리는 일이다. 일 주일 간의 출장 기간 동안 어디를 방문하고, 무엇을 조사해야 할 지를 차근차근 준비하다보니, 어느 덧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혹시 빠뜨린 것은 없을까?'하는 걱정과 왠지 모를 설레임을 반반씩 품은 채,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 날 따라 더욱 가벼웠다.

 

오전 7시,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공항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로밍 신청부터 체크인, 출국 심사까지 가는 곳마다 한참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넉넉치 않았기에 면세점 쇼핑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하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대한항공 라운지!

 

 

그동안 여권 지갑 한 구석에 PP카드를 고이 꽂은 채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라운지를 이용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머피의 법칙이었을까? 막상 휴식이 절실했던 수 많은 환승 공항들에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가 거의 없었다. 가뭄에 콩나듯, PP 카드로 입장이 가능한 라운지를 발견했을때는 환승시간에 쫓기던 날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번에 이용한 대한항공 라운지도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도움으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어차피 집에서 푹 쉬다 나온건데 라운지는 무슨...'이라며 튕겨댔지만, 일행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이 곳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샐러드, 과일, 각종 시리얼, 빵에 컵라면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있는 작은 부페에 온 느낌이랄까? 한 시간 정도 죽치고 앉아서 쉬다가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겨 빵 두어 조각과 커피를 마시며 기력을 충전한 후, 비행기에 올랐다.

 

 

서울에서 워싱턴까지는 비행기로 14시간, 라운지에서 충전한 기운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다. 이코노미석의 좁은 좌석에서 두 번의 기내식과 몇 잔의 와인에 의지해가며 자다깨기를 수 차례, 부시시한 머리와 멍한 정신을 부여잡고 '여러분은 지금 세계 정치의 중심지 워싱턴 DC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멘트와 함께 덜레스 공항(Dulles International Airport; IAD)에 착륙했다.

 

 

초췌한 몰골로 비행기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좀비처럼 무작정 걸었다. 어디론가 우리를 실어나르는 작은 버스 안에서 무심결에 바라본 창 밖으로 덜레스 공항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전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의 수도로 들어가는 길목치고는 다소 소박한 공항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뭔가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 발을 내딛은 나를 기다린 것은 '입국수속'. IS 때문에 전 세계가 떠들썩한 시기였기에 꽤나 까다로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고 유창하게 바디랭귀지 실력을 발휘한 뒤에야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는데, 평일임에도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다. 게다가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상쾌한 공기까지... 그래도 명색이 천조국의 수도인데, 첫 인상은 변두리 저 어딘가에 위치한 시골 마을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날따라 하늘은 또 어찌나 맑던지...

 

 

그 흔한 고층빌딩 하나 없는 워싱턴 우뚝 솟은 이 건물이 바로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이다. 1888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탑은 높이 170m의 세계 최장신 오벨리스크다. 유럽의 오벨리스크가 대부분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것인데 반해, 워싱턴 기념탑은 미국에서 직접 건설한 'Made in U.S.A.'다. 1848년 착공해서 1885년 완공까지 무려 37년의 세월동안 건축되었는데, 그 때문에 탑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색깔이 다르다. 혹자는 공사기간 동안 돌 색깔이 바래진 것이라고 설명을 하던데, 자세히 보면 오히려 아랫쪽 돌이 더 하얗고, 윗쪽이 누르끼리한 색을 띄고 있다. 뭐 내 생각에는 그냥 돌 종류가 다른거 같다. (아니면 아랫쪽부터 표백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거나... ㅎ)

 

 

기념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건물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 곳은 워싱턴 기념관 내부 관람을 위한 티켓을 나눠 주는 곳이다. 기념관 내부는 오전 9시 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데, 사진에 보이는 바로 저 건물에서 1인 당 최대 6장까지 티켓을 받을 수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입장료가 공짜라는 점. 어차피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굳이 티켓을 받아야 하냐고? 아마 기념탑 내부의 수용인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30분 단위로 관람객의 수를 적당히 조절하기 위한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워싱턴 기념탑은 엘레베이터를 포함해서 내부가 좁은 편이라 사람들이 조금만 몰려도 서로 엉켜서 이동이 불편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티켓을 보여주고 간단한 짐 검사를 하고 나면 만날 수 있는 워싱턴 각하의 옆모습. 조각 아래에 G. Wasington 이라고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이름이 적혀있다. 워싱턴 대통령 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는 역대 대통령들을 기념하는 건물들이 꽤 많다고 한다. 역사의 차이 때문일까? 역대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우리와 무척이나 달랐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약 1분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고, DC의 전경을 360도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눈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저 멀리 산 능선이 어렴풋이 보였을텐데, 여긴 뭐 저 끝 지평선까지 건물이 늘어져 있다. 내가 미국에 오긴 왔나보다.

 

 

워싱턴 기념탑에서 바라본 링컨 기념관의 모습. 바로 앞에 보이는 동그란 것이 2차 세계대전을 기리는 공간이고 그 뒤로 직사각형으로 펼쳐진 호수가 바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이 뛰었던 바로 그 곳이다. 참고로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 미 의회는 일직선으로 나란히 위치해 있다. 링컨 대통령이 기념관에 앉아 건너편 의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일을 잘 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란 이야기도 있던데, 이건 뭐 믿거나 말거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워싱턴 기념관에서는 백악관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TV를 통해 백악관을 볼 때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직접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단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저 당시에 오바마도 백악관 어딘가에서 워싱턴 기념관을 바라보며, 정국을 구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전망대 바로 아래층에는 작은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좁은 공간공간에 기념탑의 역사에 대한 설명부터 공사 현장과 인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그리고 자잘한 소품들이 놓여있었는데,

 

 

그 중에서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바로 이것! 피뢰침이다.피라미드 모양의 돌을 감싸고 있는 왕관 모양의 금속은 워싱턴 기념탑 가장 윗 부분에 설치된 피뢰침과 정확히 똑같은 제품(?)이다. 그리고 그 아래로 휘거나 구부러진 금속들은 기념탐 가장 윗단에 설치되어있다가 번개를 맞아 장렬히 전사한 피뢰침이다. 실제로 워싱턴 기념탑은 워싱턴 DC에서 유난히 높히 솟아오른 건물이기에 번개에 취약한데, 가장 최근에 번개를 맞아 피뢰침을 교체한 것은 2012년이라고 한다.

 

 

워싱턴 DC에 초대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탑이 지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 전역의 각 주에서 선물을 보내왔다고 한다. 의미있는 문구나 그림, 탑의 모양 등을 새겨진 큼지막한 대리석들은 워싱턴 기념관을 이루고 있는 다른 석재들과 함께 탑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실물을 축소해 놓은 것이고, 실제 작품은 엘레비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30분 남짓의 짧은 시간동안 워싱턴 기념탑에 대한 설명도 듣고 높은 곳에 올라 DC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 보며,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공짜로... 물론 관광을 목적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한 것이라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단조로운 구성이었지만, 출장 중에 잠깐 들르기에는 최적의 코스가 아닌가 싶다. 자, 그건 그렇고... 첫날이라는 핑계로 농땡이를 부렸으니, 이제는 열심히 일을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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