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9일, 야구판을 술렁이게 만든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다승 1위 피가로와 국가대표 좌완 김광현의 명품 투수전이 펼쳐지던 4회말 2사 주자 2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박석민은 힘없이 배트를 돌려 내야 플라이성 타구를 날렸다. 평범한 포수 플라이가 될만한 타구였지만, SK 포수 이재원은 공을 놓쳤다는 사인을 보냈고, 순간적으로 당황한 SK 내야진은 타구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SK 팬들이 상당히 아쉬웠을 법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덕아웃으로 들어가려던 2루주자 최형우가 가속도를 높여 홈으로 쇄도했고, 공을 잡은 김광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주자를 잡아냈다. 삼성 팬들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여기까지는 1년에 140여 경기를 치르는 도중에 한두번은 충분히 일어날 법한 상황이었다. 양 팀의 선수와 코칭스탭, 팬들은 저마다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뭐 야구든 인생이든 마음먹은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중계 카메라에 잡혀 있었다. 박석민의 타구를 잡은 것은 김광현이 아니라, 1루수 브라운이었던 것. 김광현은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최형우를 태그한 것이고, 얼음땡이 아닌 이상 심판의 아웃판정은 명백한 오심이었다. SK 팬들의 환호가 찝찝함으로, 삼성팬의 아쉬움이 분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프로야구 영상 다시보기
여기에 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상황이 다시 한번 연출되었다. 상대 선수와 심판, 팬까지 완벽하게 속인 김광현이 공을 가진 브라운과 어깨동무를 하며 덕아웃으로 들어가면서 공을 건네받다 바닥에 떨어뜨린 것. 그리고 그 장면은 브라운이 멋쩍게 웃으며 공을 줍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결국 경기는 연장 접전 끝에 김재현의 5%의 확률을 뚫은 끝내기 안타 덕에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야만없, '야구엔 만약이란 없다.'라는 뜻으로 자주 등장하는 신조어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저 상황이 제대로 판정을 받아 2루주자가 홈에서 세잎되었다면, 다승 1위 피가로는 1승을 추가하여 다승 단독 선두로 올라갔을 것이고, 안지만과 임창용 역시 각각 홀드와 세이브를 챙겼을 것이다. 삼성과 SK 양팀 모두 투수진의 소모를 줄여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 3연전을 맞이했을 것이다.
어쨌든 상황은 번복되지 않았다. 삼성은 승리를 거두었고, SK는 패배의 아쉬움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듯, 누구도 공식적으로 판정 번복을 요청할 수도 없다. 하지만 각종 야구 커뮤니티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논란으로 뜨거운 밤을 지새웠고, 김광현이라는 이름은 포털 검색어 1위를 점령했다.
모두가 피해를 본 것만은 아니다. 두산의 장민석(舊 장기영), 강민호, 그리고 저 멀리 유럽 대륙의 클로제 등이 이번 사건을 통해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2012년 5월 12일, SK와 넥센의 경기 4회초 2사 1,3루 상황에서 송은범이 던진 공이 뒤로 빠지면서 3루주자가 홈에 들어왔고 득점이 인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당시 타자였던 장민석이 발에 공에 맞았다고 자수함으로써 득점은 인정되지 않았고, 2사 만루 상황에서 후속타 불발로 그렇게 이닝이 마무리 되었다.
2014년 6월 14일 기아와 롯데의 경기 도중 타석에 들어선 안치홍의 배트에 금이 가있는 것을 발견한 롯데 포수 강민호는 그 사실을 안치홍에게 알려줬고, 덕아웃에서 새로운 배트를 들고 나온 안치홍은 홈런으로 강민호의 호의에 화답하게 된다.
2012년 이탈리아 세리에 리그 경기 중, 헤딩골로 인정받았던 득점이 사실 머리가 아닌 손에 맞은 것이라고 심판에게 고백함으로써, 일약 축구계의 신사로 떠오른 클로제의 일화는 이미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다.
혹자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만약, 장민석이 혹은 클로제가 당시 상황을 그냥 넘어갔다고 해서 그들을 바난할 수 있겠느냐고, 실제로 당시 장민석은 넥센 팬 뿐 아니라 해설자마저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위의 사례와 김광현의 사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넥센과 SK 경기를 돌이켜 보자. 데드볼 상황에서는 사건의 발단이 장민석에게 있지 않았다. 장민석의 몸에 공이 맞았지만,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은 '심판'이었다. 선수에게는 심판의 판정을 번복할 '의무'가 없다. 잘못된 판단이라면 이를 어필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마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장기영이 어물쩡 넘어갔더라도 그 행동이 비판을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물론, 선수 개인적으로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본인과 팀에 불리한 부분을 사실대로 밝혔고, 그런 점에서 장민석의 행동은 매우 '신사적'이었다.
반면, 이번 김광현의 빈 글러브 태그에서는 심판의 '오심'이 김광현의 (오해를 살 만한)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김광현 본인과 소속팀이 부당한 이익을 가져가게 되었다. 김광현의 행동이 부적절한 '기만행위'로 여겨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사실을 바로잡을 의무 혹은 책임이 일차적으로 선수 본인에게 있다고 판단된다.
이제, 김광현에게 여론의 포화가 쏟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미 포털 댓글의 저승사자 '국거박'은 이미 김광현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물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야 할 의무가 심판에게 있기는 하지만, 그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선수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기사 댓글
경기가 끝나고 난 후, 김광현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를 했다. 태그를 위한 연속동작이었을 뿐,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그의 인터뷰에 팬들의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김광현의 태그 역시 그러한 실수 중 하나였을 것이라 믿는다. 짧은 찰나에 본인의 실수를 인지하고 솔직히 밝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떳떳하게 마운드에 오르는 김광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광현의 경기 중 빈 글러브 태그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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