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통화정책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베 총리가 아니라 '아배째라' 총리라는 우스개가 들릴 정도로 극단적인 엔화약세 유도정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통화정책에 대해 각국이 '근린궁핍화'정책이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일본의 입장에서는 엔저정책이 그들에게 나름대로 '이로운' 정책일 겁니다. 사실 이 문제는 최근 1~2년간의 경제상황을 두고 평가할 성격이 아니거든요.
때는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은 대외적인 무역수지적자와 대내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을 앞세운 일본 기업들의 미국시장 점령(말그대로 점령군 수준이었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이 일본 차량을 부수는 폭동까지 일으켰으니까요)은 미국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세상 어느 국가도 미국 경제의 붕괴를 원하지 않았고, 이는 플라자 합의라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 여기서 잠깐!! 플라자 합의가 뭐냐구요? -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위기가 '들어오는 돈이 없어서' 시작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무역수지가 적자니까 달러는 해외로 빠져나가는거구요. 재정지출이 수입보다 많으니, 정부 금고에서 돈이 줄줄 새고 있다는 거죠. 결국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당시 G5국가(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들은 철저히 미국의 입장에서 '국부의 유출'을 막고자, 달러화 가치를 낮추고, 미국을 상대로 떼돈을 벌던 일본의 엔화 가치를 높이기로 결의합니다
|
사실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일본경제는 차별화된 품질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동안 호황기를 구가합니다. 또한, 엔화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달러당 260엔 → 120엔) 일본 자본이 손쉽게 해외자산을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니의 콜롬비아 영화사 인수, 미쓰비시의 록펠러 센터 매입 등도 이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일본 기업의 입장에선 엔화 가치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엔고'를 이용해 매입한 자산가치가 상승하면 기업의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별 기업의 입장에선 나름대로 합리적인 행동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기업이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보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매입에 열을 올리다 보니, 일본 경제는 안쪽에서부터 곪아가기 시작합니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으니,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춰서 투자할 돈을 기업에 쥐어주고, 그 돈은 다시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엄청난 버블이 형성됩니다.
실제로 플라자 합의가 선언되었던 1985년 22조엔 정도였던 부동산 담보대출이 1989년에는 80조엔으로 2.6배나 증가합니다.
결국 1989년 12월 일본중앙은행이 긴축통화정책을 선언하면서, 버블이 '팡' 터져버렸습니다. 갑작스런 긴축정책은 자산가격의 폭락을 불러오게 되고, 차입을 통해 자산매입에 열을 올리던 일본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일본경제가 '장기 저성장 + 디플레이션'의 '잃어버린 20년'에 들어선거죠.
최근에는 서브프라임으로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자국 생산시설의 파괴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 일본경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자민당과,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일본의 경기부양이 국정운영의 최우선 목표일 겁니다.
일단, 아베 총리는 일본의 장기불황의 원인으로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지목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당시 국제정세 상, 일본이 엔화 강세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일본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음에도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수수방관한 것은 불합리했다고 주장합니다. 아베 총리는 비록 30여년전의 일이지만, 이제라도 지나치게 고평가된 엔화의 가치를 적정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럼, 엔화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난 11일 일본정부는 20조엔(241조원) 규모의 긴급경제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지진복구대책, 노후터널 등 사회인프라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지원기구 창설 등이 포함된 이번 경제대책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올해 약 5조엔 규모의 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올해 일본의 국채발행 규모가 50조엔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지난 정권이 재정 건전화를 위해 설정했던 연간 국채 발행 한도(44조엔)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일본정부의 재정악화를 각오하고 경기부양에 올인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중앙은행은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기존 1%에서 2%로 상향하고, 무기한 자산매입에 돌입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공표했습니다. 대개 양적완화는 자국통화의 평가절하 뿐 아니라 높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양적완화라는 카드를 섣부르게 꺼내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수십년간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양적완화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번에 일본 중앙은행이 발표한 목표 인플레이션율 2%는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제(3%±0.5%)와 비교하였을떄, 그다지 높은 수치가 아닙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각자 돈을 푼다면, 시장에는 엔화 공급이 엄청 늘어나겠죠?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엔화가치가 하락하고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일본 경제는 명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시나리오인데, 과연 그럴까요?? |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 일본정부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국채발행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국가부채가 GDP의 2.4배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에 확장적 재정정책의 범위는 제한적일 것 같습니다.
결국 돈을 찍어내서 경기를 부양해내겠다는 것인데 이 역시도 쉽지 않습니다.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다른나라와의 무역마찰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엔화약세가 지속되면서 일본과 경쟁하는 자동차, 전기전자 산업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었습니다. 일본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고는 하나, 전통적인 무역 흑자국이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키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경쟁국의 반발이 엄청날 것입니다.
만약, 일본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우려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일본국채를 경쟁적으로 매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본국채의 투매가 발생하면, 국채금리가 상승할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일본정부의 재정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과연 일본경제의 미래를 걸고 아베총리가 내놓은 엔화약세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지, 관심갖고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엔화약세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짝 언급해볼까 합니다.
'배워서 쓰는 경제스토리 > Economic Foc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소기업의 나라 대만은 어떻게 반도체 강국이 되었나? (0) | 2015.01.29 |
---|---|
브레이크가 고장난 유가하락, 그 원인은? (10) | 2015.01.23 |
핀테크(FinTech), 금융과 IT의 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0) | 2015.01.21 |
한 나라의 경제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GUIDES (0) | 2015.01.05 |
[엔화약세 파헤치기2] 엔화약세는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0) | 201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