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고 쓰는 맛집스토리/서울맛집백서

[강남역] 그동안 몰랐던 한식의 가능성을 보다, 왕의 이야기를 담은 자연별곡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9. 27. 03:42

 

내가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던 1년 사이에, 한국에서는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메르스, 지뢰도발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야 이미 인터넷 뉴스를 통해 접해왔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한 달여의 지내다 보니, 밖에서 보던 것보다 한국 사회는 더욱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변화는 바로 '음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었다. '슈가보이' 백종원을 비롯,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요리사들이 '쿡방'을 통해 예능의 대세로 떠올랐고, 올반, 계절밥상 등 한식을 테마로 한 한식부페가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음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한식부페가 인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가봐야지' 하며 벼르고 있었는데,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았다. 결국 추석연휴 기간이 되어서야 귀국 후 처음으로 가족들과 외식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식부페'로 메뉴를 정했다.

 

 

'왕의 이야기를 담은 팔도진미 한식 샐러드바', 뭔가 거창한 타이틀을 가진 자연별곡의 입구다. 추석 전날이라 그런지 당일 오전에 전화를 했음에도 쉽게 점심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12시에 도착했을 때에는 매장이 텅텅 비어있을 정도였다. 역시 추석은 추석인가보다.

 

 

휴일이라 모처럼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거른 탓일까? 엄청난 배고픔이 몰려오고 있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확인한 후, 곧바로 음식을 챙기러 나갔다.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부페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그래도 명색이 추석(전날)인데, 전을 좀 먹어야 하지 않을까?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부친 전을 몇 개 가져다 먹다보니, 명절 느낌이 솔솔 나기 시작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계란 후라이도 여기서 바로바로 해 준다는 것! 전통한식과 계란 후라이, 뭔가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뭐... 맛있긴 했다.

 

 

개인적으로 자연별곡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이 3X3 식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페에서 가장 짜증나는 것은 음식이 서로 뒤섞인다는 점이다. 특히 국물이 있는 음식을 담을때는 그야말로 '대략 난감'인데, 자연별곡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칸칸마다 공간이 넓지 않아 종류별로 맛만 볼 정도로 담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단점을 가장한 큰 장점이다. 매번 탕수육 욕심에 눈이 멀어 다른 음식을 즐길 기회를 놓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음식을 조금씩 담아 골고루, 오랫동안 즐길 수 있었다.

 

 

자연별곡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매장 한가운데 자리잡은 두부보쌈이다. 명이나물, 두부, 보쌈김치와 함께 싸먹는 수육의 맛이 정말 최고였다. 물론, 보쌈 전문점에서 먹는 맛에는 조금 못미치지만, 기대치를 부페에 맞춘다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맛이다. 자연별곡의 대표 메뉴답게 뒷쪽으로 두부보쌈에 대한 문종의 일화가 적혀 있는데, 사실 그리 흥미로운 내용은 아닌 것 같아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다. 뭐, 두부보쌈 먹고 오랫동안 앓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겠지...

 

 

보쌈 뿐 아니라, 버섯 탕수육, 황태강정, 불고기 전골 등 다양한 음식들이 우리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폭식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집을 나섰건만, 대화하는 것도 잊은 채 다들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샐러드 바와 테이블을 넘나들며 접시를 채우고 비우기를 수차례... 얼마나 음식에 정신이 팔렸는지, 포스팅용으로 사진을 찍어두는 것 조차 잊어버렸다. 뒤늦게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테이블이 엉망이 된 뒤였다. 아쉽지만, 자연별곡의 메뉴는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라,

 

<자연별곡 메뉴소개> http://www.naturekitchen.co.kr/Menu/Menu.aspx

 

 

음식을 잔뜩 먹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순간, 상큼한 물냉면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인체의 신비라고 해야할까? 아무리 배가 불러도 우리 몸 어딘가에는 항상 냉면 한 그릇이 들어갈 공간이 반드시 남아있다. 이미 배가 잔뜩 부른 상태였지만, 면은 물론 국물까지 깔끔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자연별곡에는 물, 비빔, 코다리, 이렇게 세 가지 종류의 냉면이 준비되어 있다. 냉면을 먹으면 헛 배가 불러 다른 음식을 먹는데 방해가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자연별곡의 냉면 양은 딱 적당했다. 냉면 그릇에 동동 떠 있는 앙증맞은 메추리알이 자연별곡 냉면의 양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정말로 식사를 마무리 할 시간이다. 자연별곡에는 커피외에도 총 12가지의 전통차가 마련되어 있는데, 음식을 먹으며 틈 날때마다 종류별로 맛 보시길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귤피차가 마음에 들었음

 

 

찹쌀도너츠부터 경단, 고구마 케잌 등 다양한 디저트를 뒤로하고 고른 것은 바로, 흑임자 아이스크림! 부모님은 식사 후에 배스킨라빈스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드시려고 생각하셨다는데, 흑임자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드시고는 그 생각을 바로 지워버리셨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한편, 아이스크림 옆에 있는 팥빙수는 뭐 그냥저냥 평범한 수준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추석 연휴기간에 전통음식을 원없이 먹게 되었다. 덕분에 어머니께서는 추석 기간동안 파업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셨다. 나머지 가족들도 당시에는 배가 부를대로 부른 상태라 크게 반대하지 않았고, 아마도 올해의 추석 밥상은 이걸로 정리될 것 같다. 차례를 지내는 장손이 아니라면, 추석 당일에 한식부페에서 외식을 하는 것으로 명절 준비를 대신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동안 한식이라고 하면 워낙 손이 많이가고 맛도 강한 편이라, 해외에서 좀처럼 성공하기 어려운 메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와서 보니 한식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단 전통음식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맛이 크게 자극적이지 않았고, 보편적인 입맛을 위해 적당히 개량된(?) 레시피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유자드레싱에 사과를 버무린 무침요리는 외국인들 입맛에도 딱 맞을 것 같았다.

 

재료 조달 같은 세부적인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조만간 해외에도 이런 한식 부페가 생기지 않을까?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제쳐두더라도, 배낭여행을 하다 문득 한식이 생각날 때, 전 세계 어디서든 쉽게 찾아먹을 수 있는 그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참고> 자연별곡 강남역점

 - 전화번호 : 02)564-0540

 - 주소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117 지하1층

 - 이용시간 : 10:30 ~ 22:00-

 - 가격 : (평일점심) 12,900원 / (저녁 및 주말, 공휴일) 19,900원 <성인기준>

 

 그동안 몰랐던 한식의 가능성을 보다, 왕의 이야기를 담은 자연별곡

포스팅이 마음에 드시면, 아래 공감버튼을 눌러주세요.

작성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