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쓰는 경제스토리/Economic Focus

[유럽 재정위기] 그리스와 EU는 같은 배를 타고 계속 항해할 수 있을까?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2. 19. 09:01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쉽게 돈을 빌려주지 마라. 굳이 돈을 빌려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냥 준다고 생각하고 받을 생각을 하지마라' 당시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십 수년이 지난 지금, 나름 사회 경험이 쌓이고 나니, 그때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란게 참 묘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사정이 생겨 급하게 돈을 빌려야 할 순간이 온다. 이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갑'이고, 돈을 빌리는 사람은 '을'이다. 하지만, 막상 돈을 빌려주고 난 후에는 돈 빌려준 사람이 '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빌려간 사람이 제때 돈을 갚지 않더라도 '심한 말' 한 마디조차 하기 어렵다. 그냥 잘 어르고 달래가면서, 빨리 돈을 갚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새벽에 축구하는 나라, 그리스와 유럽을 보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씀이 자꾸만 떠오른다. 이미 2,400억 유로(약 300조원)라는 어마어마한 구제금융 지원을 받은 그리스가 지난 18일, 유럽 채권단에 긴축정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여기에 구제금융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6개월 연장하라는 요구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지 한번 잘 살펴보자.

 

 

그리스 문제가 국제사회에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충 2011년 쯤 부터다.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국가들은 저마다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기 시작했다. 없는 살림에 돈을 풀려면, 돈을 마구 찍어내거나 빌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스를 포함한 유로존 국가들은 스스로 돈을 찍어낼 권한이 없기 때문에,(유로화는 유럽 중앙은행(ECB)에서 관리한다.) 대부분 국채를 발행해 경기를 부양해 왔다.

 

리먼 사태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러 국채 만기일이 다가오자, 투자자들은 과연 유럽 국가들이 나라 빚을 갚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게으른 돼지들(PIGS ;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이 보유한 현금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이자, 채권자들은 돈을 달라고 아우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리스는 유럽연합(EU)과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사실, 독일이나 프랑스 입장에서는 그리스가 술먹고 노름판을 전전하다 때 되면 집으로 쳐들어와 돈 달라고 깽판치는 막내 동생 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유로존이라는 같은 지붕아래 사는 형제인 것을...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 번 다뤄보겠지만, 사실 그리스가 저렇게 개망나니가 된 데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책임도 있긴 하다.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단, 그리스가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을 전제로 했다.

 

사실, 구제금융이라는 것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 오기 마련이다. 예전 우리의 IMF 시절을 떠올려 보자. 있는 놈들이 그깟 돈 좀 빌려준다고 유세란 유세는 다 떨면서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엄청나게 간섭해 댔던 그 시절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여간 아니꼬운 일이 아니었지만, 사실 그들 입장에서는 빌려준 돈을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돌려받기 위한 요구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들의 요구에 최대한 열심히 따랐고, IMF를 빠른 시간내에 성공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잠깐 딴 데로 샌 것 같은데,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에도 상당한 요구조건이 달라붙었다. 자금 마련을 위한 국유 자산 매각, 부실 공기업 민영화, 재정 지출 축소 등이 유럽중앙은행(ECB)의 요구였다. 파산을 면하기 위해 그리스는 이러한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자금을 지원받았고, 그렇게 그리스 위기는 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그리스를 둘러싼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그리스 정부의 긴축정책은 국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사회 전반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파도 속에서 그리스의 실업률은 2014년 26.5%까지 치솟았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49.6%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그리스의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구제금융 이전 그리스의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은 각각 12%, 32% 수준이었다. 2009년 기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날로 커져만 갔고, 급기야 지난 1월 치뤄진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압승을 거두며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리고 시리자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그리스 총리 자리에 오른 후, 취임연설을 통해 '지난 5년간 겪었던 치욕의 역사를 뒤로하고, 구제금융 이행조건인 긴축정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40살의 혈기왕성한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EU를 향해 웃통을 벗어제끼며, 배째라고 날뛰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그가 던진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깟 돈 몇푼 빌려주면서 긴축재정을 하라는 둥 너희들 요구는 지나친 면이 있다. 구제금융 협상을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자. 단, 지금까지 빌려준 건 한 6개월 정도 더 쓰게 해줘라.'

 

치프라스의 목표는 단순하다. 일단, 2,400억 유로를 받기위해 약속한 구조조정안을 두고 전면 재협상을 실시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 국가채무의 상당 부분을 변제받는 것이다. 치프라스가 그리스의 운명을 걸고 이런 도박에 자신있게 임할 수 있는 것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과 '그렉시트'라는 강력한 패를 양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디폴트 선언은 겨우 진정되어가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또 다른 불을 지피는 것이기에 모두가 기를 쓰고 막으려 들 것이다. 유로존에서 그리스가 탈퇴(exit)하는 것 역시, 유로존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으로 자칫 유로화의 신뢰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유럽 국가 그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다.

 

결국, 돈을 받아야 하는 을의 입장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그리스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여러모로 좋을 것이 없다. 이제 EU도 그리스에 대해 보다 강경할 자세를 취하려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구제금융이 지속되지 않으면 그리스 경제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고, 치프라스는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스와 EU는 서로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과연 이들의 치킨게임은 어떤 엔딩을 맞이하게 될 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그리스와 EU는 같은 배를 타고 계속 항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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