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보고 쓰는 리뷰스토리

헤밍웨이가 극찬한 바로 그 연필, 팔로미노 블랙윙 602

비행청년 a.k.a. 제리™ 2017. 9. 20. 09:32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아주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기에, 글 쓰는 것 또한 금새 끝나버렸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조각난 여행의 기억들을 모아 글을 연재하면서 글쓰기가 하나의 습관처럼 일상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글로 먹고 사는 '글쟁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부끄러운 상상을 해본다.

 

문구류에 대한 욕심, 또는 허세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혹자는 고작 그런걸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는냐고 묻기도 했지만, 자고로 글쟁이는 글의 품격에 어울리는 도구를 갖춰야 한다며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글을 쓰는 것보다 돈을 쓰는 횟수가 더 많아졌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카드가 한 번씩 긁힐 때마다, '글쟁이'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 같아 괜시리 어깨가 으쓱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 비록 그의 글을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누구나 그의 이름은 알 정도로 세계적인 대문호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극찬한 연필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블랙윙', 바로 오늘 소개할 아이템이다.

 

 

1924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약 60여년 간, 탄탄한 매니아 층을 형성했던 블랙윙 연필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뿐 아니라 존 스타인벡, 레오나르도 번스타인, 척 존스 등 작곡가에서 만화가까지 다양한 예술 분야의 거장들에게 사랑받았다. 

 

 

내노라하는 셀럽들이 블랙윙을 애용한 이유는 바로 그 품질에 있다. 블랙윙은 연필심에 흑연 뿐 아니라 왁스와 점토를 첨가, 다른 연필들이 감히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필기감을 구현해냈다. 또한 연필 끝, 지우개 달린 부분에 메탈 클립을 장착, 지우개를 다 쓰면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선보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1988년 제조사인 'Eberhard Faber'가 단종을 결정, 블랙윙은 역사 속으로 그 자취를 감추었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걸 깨닫는다고 했던가? 생산 중단 이후, 블랙윙의 인기는 오히려 더욱 치솟았다. 보스턴 글로브 등 언론사에서는 블랙윙을 그리워하는 기사가 실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베이에서는 중고 연필이 개당 30~40달러에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자연히 생기기 마련, 2010년 'California Republic Stationers'은 기존 블랙윙 연필을 복원, '팔로미노 블랙윙'을 출시한다.

 

 

연필 한 다스에 22,500원, 개당 2,000원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이 연필은 가격만 봐서는 도무지 손이 나가지 않는 제품이다. 하지만 '존 스타인벡, 척 존스, 레너드 번스타인 등 문화, 예술계의 거장들이 사용하는 연필'임을 강조한 마케팅 전략의 성공으로 팔로미노 블랙윙 역시 탄탄한 매니아층을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연필을 받자마자 연필깎이에 돌린 후, 사용해봤다. 'Half the pressure, twice the speed' 절반의 힘을 들여 두 배의 필기 속도를 구현한다는 블랙윙의 슬로건처럼, 가벼운 무게감에도 불구, 날렵하고 부드러운 필기감이 손끝에 전해졌다. 지우개가 달린 금속 부위가 무게추 역할을 하면서 중심을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혹시라도 소중한 연필이 상할까 하는 염려에 포인트 가드도 한 세트 주문했다. 연필 앞부분에 씌우면 연필심이 부러지거나 필통이 연필심에 지저분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쓴다고 하는데, 가격을 생각하면 주 용도는 그냥 감성 또는 허세가 아닌가 싶다. 참고로 가격은 개당 12,000원 정도

 

 

어머니, 아버지가 알면 놀라 뒤로 쓰러지실 가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연필에 끼워놓으면 제법 그럴듯한 자태를 뽐낸다. 괜시리 회사에 가져가 연필에 포인트 가드를 꽂아놨더니 다들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렇게 나는 또 한 발자국 글쟁이에 다가가는 것인가?

 

 

제품 리뷰라고 하면, 제품을 사용해보고 느낀 점과 기능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리뷰는 요란하기만 하고 내실없는 그런 글이 아닌가 싶은 자괴감도 들지만, 사실 연필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그럴듯한 리뷰를 쓰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이번 리뷰를 통해 팔로미노 블랙윙 602가 가진 감성과 브랜드 스토리가 보다 많은 분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글을 마친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감성을 담을 수만 있다면, 명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00원짜리 연필이 2,000원에 팔리는 마법, 우리는 그 가능성을 블랙윙에서 보았다.

 

이 글이 맘에 드셨다면, 하트♡를 눌러주세요!!

작성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