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쓰는 여행스토리 105

39. 입생로랑이 사랑한 코발트 블루의 세상,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모로코 삐끼와 한바탕 설전을 치르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아둥바둥대야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고 기분이 크게 상해버려서 다 때려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문제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켜고 위치를 확인해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것보다 다음 목적지가 그나마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혹시라도 또 방향을 잊을까 두려운 마음에 큰길을 따라 다시금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생전 처음보는 건물과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당시에는 당나귀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를 붙잡고 히치하이킹이라도 하고 싶은 ..

38. 다시 찾은 마라케시, 모로코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길을 잃다.

에싸우이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마라케시, 벌써 세번째 방문이다. 처음에는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탔고, 사하라 사막 투어를 마친 뒤에는 봉고차로, 그리고 이제는 에싸우이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을 거쳐 메디나로 들어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받걸음에 여유가 묻어났다. 터미널 인근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와 모처럼만에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다. 오전의 제마 엘프냐 광장은 마치 예전 여의도 광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지난 밤에 보았던 화려하고 북적이는 모습과는 천양지차! 문득 '낮져밤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스쳐간다. 광장에서 갈라져 나오는 수많은 골목길마다 모로코 사람들의 일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

37. 여행의 묘미, 예정에 없던 곳에서 뜻밖의 추억을 건지는 것 - 모로코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여행을 시작하기 전, 모로코하면 '사하라 사막'이 먼저 떠올랐는데, 여행이 끝나고도 1년도 더 지난 지금은 모로코하면 '에사우이라의 바다'가 떠오른다. 여행이라는게 그렇다. 낯선 곳으로 떠나기 전에는 괜한 불안감에 여기저기서 정보를 모아 계획을 짜곤 하지만,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여행지에 대한 느낌은 각자 다르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여행은 100% 계획된대로 움직이기보다는 70%의 계획과 30%의 우연을 버무리는 것이 좋다. 물론 사람마다 계획과 우연의 최적비율은 저마다 다르리다. 예정에 없던 도시, 에사우이라의 숨겨진 모습을 찾으러 가볼까? 메디나를 벗어나 서쪽으로 조금만 걷다보면 짠내 가득한 바람이 코끝을 간질인다. 작은 건물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항구..

36. 대서양만큼이나 파란 하늘을 품은 도시, 에사우이라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낸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뒤로 하고, 마라케시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장장 열 두세시간에 달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사실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 그 멀고 먼길을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메르주가에서 페즈로 넘어가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택시기사와의 흥정이 필수다. 참고로 페즈까지는 차로 8시간 정도 소요되며, 가격은 1,000~1,500디르함(12만원~18만원) 정도(2015년 기준)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일행 중에 유일하게 페즈로 넘어가는 타츠야가 택시 기사에게로 다가가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밴으로 돌아와 짐을 챙겨 가는데,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서너명이 함쎄 이동하면 개인 부담이 확 줄어드는데, 택시 기사 말로..

35. 낙타 등 위에서 내려다 본 사하라 사막,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지우다.

눈앞으로 황량한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부터가 사막이라고 가이드가 넌지시 내게 말을 건넨다. 드문드문 푸른 잎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그동안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사막과는 조금 달랐지만, 아무렴 어떨까? 이곳이 바로 사막이라는데, 벌써 몇 달전, 아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으로부터 일 년도 훨씬 더 된 그 때, 모로코 여행을 처음 계획했던 그 순간부터 꿈에 그리던 일이 눈앞에 현실로 벌어지기 직전이다. 사막을 걷는 여행자라니,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순간까지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들 각자 알아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짐을 챙긴 후, 사막을 함께 누빌 낙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하라 사막의 주차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곳에서는수십 마리의 낙타가 다소곳이 앉아 우리의 간..

34.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베르베르족 마을과 토드라 협곡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또다시 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는 왠지 어제 봤던 것만 같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분명히 어제 하루 종일 차로 내달렸는데, 아직도 사하라 사막까지는 한참 남았다고 한다. 약간의 멀미와 피곤함에 어느새 눈이 점점 감긴다. 마라케시에서 시작하는 사막투어는 그야말로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는 모로코의 풍경, 황톳빛 땅과 푸른 하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처음에는 '안 그래도 나무가 없어서 활량한 땅에 건물까지 황토색으로 지어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자꾸 보다보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싶다. 나도 모르게 모로코에 정이 들었나보다. 잠깐 쉬어가는 길에 만난 모로코 소년, 곱슬곱슬한 머리에 동그란 얼굴과는 달리 꽤 시크한 매력을 가진 남자아이다. 사진을 찍거나..

01.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 길에 오르다.

"뭐, 그건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암튼 몸 건강히 잘 다녀와라." "그래, 그리고 이 거 한 달만 좀 부탁한다." "어, 근데 그냥 이렇게 갔다 오면 되는 거냐?" "몰라~ 그냥 어떻게 되겠지..." 캐리어 하나를 친구에게 던져주고 돌아섰다. 텅 비어버린 방은 내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남들은 설렘에 잠을 설친다는데, 그날따라 유독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이 곳이 어지간히도 익숙해지긴 했다보다. 이른 새벽, 혹시라도 빠뜨린 것은 없는지, 침대 밑과 욕실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핀 후 미리 챙겨둔 배낭을 들쳐 메고 길을 나섰다. 2015년 7월 28일, 그때 그 길을 또 걸을 수 있는 날은 아마 다신 오지 않을 것 같다. 벌써 올해에만 세 번째, 공항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익숙..

[프롤로그] 남자, 여행에 미치다

"I am gonna travel Lartin America."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문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남미라니.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비행기로 꼬박 열 몇 시간을 날아가야 겨우 도착하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5년 7월, 당시 나는 일본의 한 대학교에서 MBA를 공부하고 있었다. 8월 말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 마지막 학기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한 달여의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직장인들은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마도 내 인생의 마지막 방학이 될 그 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2015년 8월을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한 달로..

03.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황홀함, 벌룬투어로 터키여행의 시작을 알리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였을까? 아침, 아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터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벌룬 투어는 해가 뜨기 전,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카파도키아 상공에서 일출을 감상한 후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새벽 4시, 숙소 앞까지 우리를 데리러 온 픽업 차량에 몸을 싣자마자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사 이름이 크게 적힌 미니밴 차량은 괴뢰메 마을 곳곳의 호스텔을 들러 사람들을 태운 후, 꽤 그럴듯한 식당에 도착했다. 작고 퍽퍽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차로 다시금 10여 분을 달리고 나니 황량한 공터 곳곳에서 뭔가에 매달려 끙끙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 너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축 늘어진 벌룬에 불을 쪼이면 조금씩 풍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

33. 사하라 사막은 어디에...? 지루하게 흘러간 사막 투어의 첫 번째 하루

조금은 허무했던 아이트 벤 하두 투어가 모두 끝났다. 짧은 자유시간 동안 각자 흩어져 사진을 찍은 후, 가이드를 따라 마을을 내려왔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쳐버렸다. 빨리 차로 돌아가 물이나 한 잔 들이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이드를 따라 차로 돌아가는데, 강 위로 세워진 튼튼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마을로 들어갈 때에는 징검다리를 건너느라 동네 꼬마들에게 팁을 삥 뜯겼는데 말이다. 가이드와 현지 주민들 사이에 은밀한 커넥션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던 순간에 저 멀리서 후다닥 달려오시는 분은 우리 일행 중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할머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할머니를 놓고 떠날까 봐 달려오시는 것 같다. 무릎이 안좋으신지 마을로 향하는 내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