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고 쓰는 일본스토리/Story in Tokyo

기업 철학이 담긴 편집샵, 투데이즈 스페셜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1. 24. 12:39

[일본 유통산업 체험기 ①] 기업 철학이 담긴 편집샵, 투데이즈 스페셜

 

 

 

너무 많은 정보는 정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매년 새로운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인 트렌드 코리아. 이 책은 2015년 키워드로 “COUNT SHEEP”을 꼽았습니다. COUNT SHEEP의 첫 글자 'C' 는 Can't make up my mind를 의미하는데요.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문장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돈만 충분히 있다면 소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각 나라별 유명한 브랜드는 어찌나 많은지. 설령 브랜드를 정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제품 라인업을 찬찬히 비교하다 보면 진이 쏙 빠지곤 합니다. 넘쳐나는 제품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비에 대한 의사결정은 더 이상 객관식 문제가 아닌 주관식 또는 서술형 시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에 와서 보니 '편집샵'이 참 많습니다.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한군데 모아 일상의 생활공간을 재현해 놓은 공간에 전시해 놓은 상점을 말하는데요. 디스플레이 자체가 '우리 집에 있을법한 가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매장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가져와 매장에 전시되었던 모습 그대로 올려놓고 사용하면 됩니다. 실내 인테리어라든지 다른 제품과의 조화 같은 것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것이죠.

 

오늘은 그 가운데 하나, 일본의 대표적인 잡화 브랜드 '투데이즈 스페셜'을 소개할까 합니다. 'Today's special'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매일매일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바로 오늘이 특별한 날이 될 것'이라는 기업의 철학을 담아낸 이름입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하루가 될 오늘, 지유가오카(自由が丘)에 위치한 투데이즈 스페셜 1호점을 찾았습니다.

 

 

매장 1층에는 식품, 주방소품이 2층에는 의류와 인테리어 소품 코너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1층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로 '마이보틀'이었습니다. 투명한 플라스틱병에 삐뚤빼뚤 쓰여진 'MY BOTTLE'. 저게 뭐길래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건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무려 1,400엔(1만 4천 원)의 가격에도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 한국에서는 부르는게 값이라고 하네요. 이참에 보따리 장사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만, 실제로 해외 직구니 구매 대행이니 해서 한국사람들이 저 병을 하도 사재기하는 바람에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수량 제한이 생겼다고 합니다.

 

 

마이보틀 옆에는 '투데이즈 스페셜 컵'이 놓여 있었는데요. 올해는 혹시 저 컵이 히트하게 될지 한번 유심히 지켜봐야겠습니다.

 

 

투데이즈 스페셜에는 마이보틀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매장 안은 마치 벼룩시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다양한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릇과 인테리어 소품은 물론 식자재에 크고 작은 화분까지 없는 게 없구나.. 하는 느낌?

 

 

박물관에 있을법한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모양부터,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까지, 참 다양한 종류의 그릇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런 그릇들을 보다가 문득 테이블 채로 들어다 집에 옮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매장 안쪽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잔뜩 놓여 있었는데요. ‘Keep Green’이라는 슬로건에서 '친환경'의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편집샵답게 아기자기한 소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잘 보셨나요? 보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신 분들은 혹시 안계셨는지요. 좋은 제품들로 꾸며진 좋은 공간, 이런 '좋음'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우리 대신 직접 제품을 고르고, 디스플레이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완성감입니다. 이런 '좋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큐레이터라고 부릅니다. 이쯤에서 눈치채셨겠지만, 투데이즈 스페셜의 가장 큰 컨셉이 바로, 이 큐레이터에게 있습니다.


하루 하루, 고객의 특별한 날이 될 오늘을 위해 '각 분야의 스페셜 리스트들이 직접 고른 제품을 고객들에게 소개해' 주는 가게. 그것이 바로 투데이즈 스페셜입니다. 그래서 모든 제품 옆에는 그 물건을 고른 큐레이터들의 이름과 간단한 프로필이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자적인 매장을 낼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큐레이터들에게는 고객과 소통하는 소중한 창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등용문이라고나 할까요?

 

  

 

그동안 유통산업이라고 하면 산지의 물건을 도시에 가져다주는 '배송'의 역할에만 주목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바라보는 유통산업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물건을 '전달'하는 소극적 역할을 넘어, 똑같은 제품이라도 창의적인 디스플레이를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제품을 가져와 조화롭게 꾸며놓음으로써, 소비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소규모 공급자들이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상품을 개발해서 '한 번 팔아보는'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제품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유통망 자체의 브랜드가치를 가지고 있는 '투데이즈 스페셜' 같은 매장이 우리나라에도 많아진다면, 우리나라의 유통산업도 한 걸음 성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본 포스팅은 자유광장(http://www.freedomsquare.co.kr/)에 기고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