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고 쓰는 일본스토리/Story in Tokyo

일본 최대의 피규어 축제, '원더 페스티벌 2015'를 가다.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2. 9. 08:00

 

 

일본은 참 섬세한 나라다. 뭐랄까, 디테일에 강하다고 해야 하나? 사람을 대할 때에도 아주 사소한 배려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재주가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쇼핑몰 중 하나인 '이온몰'에서는 이슬람 고객을 위해 별도의 '기도실'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이슬람 신자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래도 그런 사소한 배려에 고객들은 감동하고, 기업의 '팬'이 되곤 한다.

 

흔히, 일본은 '오타쿠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의 수준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본의 콘텐츠 산업 규모는 약 14조엔(1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년 365일 도쿄의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는 각종 캐릭터에 열광하는 젊은이(와 소수의 중장년층)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일본 전역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전시회가 열리곤 한다.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매니아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섬세하고 구체적인 장면 묘사에 있다.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었던 현장을 찾아가보면 현실과 작품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작은 것 하나까지 작품에 그대로 구현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작품 속 등장인물을 현실로 가져오는 캐릭터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품 속 주인공이 살아서 현실로 나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실감 돋는 구현은 일본 캐릭터 산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자,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지바로 향했다. 오늘은 일본 최대의 피규어 캐릭터 축제인 '원더 페스티벌 2015(Wonder Festival 2015)'가 열리는 날이다. 일본의 수많은 피규어 제작업체들은 바로 오늘, 원더 페스티벌을 통해 신제품의 출시를 알린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때문에 조금은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쩌면 오늘이 내 평생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원더 페스티벌은 1년에 딱 두 번(2월과 8월)밖에 열리는 않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원더 페스티벌이 열리는 카이힌마쿠하리 역은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어딘지도 모른채, 인파에 휩쓸려 가다보니 멀리서 행사를 알리는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대형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티켓 부스 앞에서 줄을 선 후, 입장 티켓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이 티켓, 뭔가 심상치 않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큰 전시회 티켓이 아닐까? 원더 페스티벌 2015의 티켓은 다름아닌 잡지 사이즈의 두꺼운 책자였다. 줄을 서면서 주변을 둘러봤을때, 사람들이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있었던 것이 티켓이었다니, 꽤 신선한 느낌이었다. 책자 안에는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는 업체들로 보이는 회사와 캐릭터에 대한 소개문구가 적혀 있었다. 물론 일본어로 되어 있었기에, 나는 그냥 그림만 대충 훑어보았다.

 

행사가 열리는 마쿠하리메세(幕張メッセ)는 마치 우리나라의 킨텍스 같은 느낌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크기의 전시장이었는데, 이번 원더 페스티벌은 마쿠하리메세를 통채로 빌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도대체 이렇게 큰 공간을 어떻게 채우려고 하는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전 10시 반 정도에 전시장에 들어갔는데 이미 내부는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는 일행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우리는 나중에 만날 시간과 장소를 미리 공유하고 삼삼오오 뿔뿔이 흩어졌다.

 

 

원더 페스티벌은 피규어 못지 않게 '코스프레'로도 유명한 행사이다. 맨 처음 찾은 부스에서 만난 점원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제대로 찾아오긴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입이 떡 벌어질만한 광경이 펼쳐지는데, 누가 한건진 모르겠지만, 일본 도심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작품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냥 대충 건물 모형을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도쿄 시내 건물 하나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정교함에 떡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도쿄의 상징인 도쿄 타워는 눈에 잘 띄도록 컬러로 표현해 놓은 센스에 한 번 더 감탄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구경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것!! '아스나'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 같은데, 눈을 깜빡깜빡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게 인형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다들 한 번 보고 가시길

 

 

한참을 넋놓고 지켜보다가 문득, '이제 몇년 후면 여자친구 대신 인형을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오싹한 느낌이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부스마다 관람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뭐 나는 평소에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이 없었던 편이라, 봐도 잘 모르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이었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모르고 봐도 '정교한 묘사'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근육과 힘줄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여 묘사한 작품을 보면서 이걸 만든 사람은 도대체 전공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체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스승을 해부하는 허준의 모습을 그린 드라마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전시장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구경을 하다보니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이것을 보고, 우리는 힘을 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18세 이하 입장금지' 일본어는 모르지만, 저 정도 문장은 독해가 가능하다. 나와 함께 움직였던 2명의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갑을 뒤져 신분증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이곳은.... 음......

 

일본은 참 대단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구역이다. 지면 관계 상, 디테일한 묘사는 어렵지만, 그나마 수위가 낮은 걸로 하나 던져 두겠다

 

 

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원더 페스티벌은 '코스프레'로도 매우 유명하다. 행사장 여기저기에 범상치 않는 복장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용기를 내어 카메라를 들이대니, 친절하게도 포즈까지 잡아주는 친절한 분들이다.

 

 

근데, 저 사람들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원더 페스티벌 행사장 내부에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행사 주최측에서 고용한 전문 모델과 자발적으로 복장을 챙겨서 온 일반인들. 사실 엄밀히 말해 일반인까지는 아니고 코스프레 모델을 꿈꾸는 아마추어 지망생들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행사장 2층 복도에서는 아마추어 모델과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양한 복장을 한 모델들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요구에 친절하게 응대해주고 있었다. 자세부터 표정까지... 다소 무리해 보이는 요구에도 밝게 웃으며 응해주는 모습에 적잖게 놀랐다. 자세히 보니, 이들은 한쪽에 연락처(이메일 주소와 메신저 아이디)가 적힌 팻말을 두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 곳을 오가는 업계 관계자들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보였다. 원더 페스티벌은 단지 새로운 캐릭터 제품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넘어, 모델 지망생의 꿈을 꽃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채용박람회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이 곳은 단지 '모델 지망생'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대부분 '아마추어'들이었다.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꽤나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커다란 조명판까지 혼자 설치해가며 사진을 찍는 1인 미디어 작가들이 많았다. 그리고 원하는 사진 한 컷을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며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고생을 마다하고 건진 한 컷이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얻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내용이 갑자기 조금 진지해졌는데, 사실 '원더 페스티벌'은 매우 유쾌한 공간이다. 이 곳에서 만난 가장 유쾌한 사람들은 바로 이 커플(?)!! 3D 프린터 등 최첨단 기술이 판 치는 행사장에서 가장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저기 보이는 동전 투입구에 200엔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사실 돌리지 않아도), 어렸을 때 즐겨하던 뽑기알이 나온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한번 해보라고 권하는 모습에 '과연 저걸 누가 할까?' 싶기도 했지만, 막상 내 앞으로 지나갈 때엔 나도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큰 전시장을 가득 메운 부스와 관람객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보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위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아침에 집을 나설때만 해도, 오늘 포스팅는 '우리도 언젠가는 일본 못지않는 콘텐츠 산업의 기반을 다지길...'이라고 하며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요즘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뽀로로 테마파크', '로보카 폴리 안전 체험관' 등 캐릭터를 활용한 문화공간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도 엄청나게 발전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원더 페스티벌을 통해 일본 콘텐츠 산업의 위력을 느끼고 나니,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개의 히트상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산업 전반이 거대한 시스템안에서 서로 시너지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른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본문화 체험기 ⑦] 일본 최대의 피규어 축제, '원더 페스티벌 2015'를 가다.

* 본 포스팅은 자유광장(www.freedomsquare.co.kr)에 기고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