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 6

40. 그 곳은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아름답다 - 밤에 더 밝게 빛나는 제마 엘프나 광장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마조렐 정원을 뒤로하고 마라케시 메디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일단은 좀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로코에 머무르는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살이 조금은 무뎌지고, 그림자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마라케시의 색깔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길가의 야자수 나무 뒤로 보이는 것은 이슬람 3대 사원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다. 쿠투비아 모스크의 높이는 67m로 마라케시 시내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랜드마크다. 기왕 지나가는 김에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숙소에 도착해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제마 엘프냐 광장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지만, 광장은 노점..

39. 입생로랑이 사랑한 코발트 블루의 세상, 마조렐 정원(Jardin Majorelle)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모로코 삐끼와 한바탕 설전을 치르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졌다.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아둥바둥대야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고 기분이 크게 상해버려서 다 때려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문제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는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켜고 위치를 확인해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것보다 다음 목적지가 그나마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혹시라도 또 방향을 잊을까 두려운 마음에 큰길을 따라 다시금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생전 처음보는 건물과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당시에는 당나귀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를 붙잡고 히치하이킹이라도 하고 싶은 ..

38. 다시 찾은 마라케시, 모로코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길을 잃다.

에싸우이라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마라케시, 벌써 세번째 방문이다. 처음에는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탔고, 사하라 사막 투어를 마친 뒤에는 봉고차로, 그리고 이제는 에싸우이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을 거쳐 메디나로 들어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안했던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는지 받걸음에 여유가 묻어났다. 터미널 인근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후, 숙소로 돌아와 모처럼만에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다. 오전의 제마 엘프냐 광장은 마치 예전 여의도 광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지난 밤에 보았던 화려하고 북적이는 모습과는 천양지차! 문득 '낮져밤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스쳐간다. 광장에서 갈라져 나오는 수많은 골목길마다 모로코 사람들의 일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

34.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베르베르족 마을과 토드라 협곡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또다시 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는 왠지 어제 봤던 것만 같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분명히 어제 하루 종일 차로 내달렸는데, 아직도 사하라 사막까지는 한참 남았다고 한다. 약간의 멀미와 피곤함에 어느새 눈이 점점 감긴다. 마라케시에서 시작하는 사막투어는 그야말로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는 모로코의 풍경, 황톳빛 땅과 푸른 하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처음에는 '안 그래도 나무가 없어서 활량한 땅에 건물까지 황토색으로 지어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자꾸 보다보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싶다. 나도 모르게 모로코에 정이 들었나보다. 잠깐 쉬어가는 길에 만난 모로코 소년, 곱슬곱슬한 머리에 동그란 얼굴과는 달리 꽤 시크한 매력을 가진 남자아이다. 사진을 찍거나..

33. 사하라 사막은 어디에...? 지루하게 흘러간 사막 투어의 첫 번째 하루

조금은 허무했던 아이트 벤 하두 투어가 모두 끝났다. 짧은 자유시간 동안 각자 흩어져 사진을 찍은 후, 가이드를 따라 마을을 내려왔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쳐버렸다. 빨리 차로 돌아가 물이나 한 잔 들이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이드를 따라 차로 돌아가는데, 강 위로 세워진 튼튼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마을로 들어갈 때에는 징검다리를 건너느라 동네 꼬마들에게 팁을 삥 뜯겼는데 말이다. 가이드와 현지 주민들 사이에 은밀한 커넥션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던 순간에 저 멀리서 후다닥 달려오시는 분은 우리 일행 중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할머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할머니를 놓고 떠날까 봐 달려오시는 것 같다. 무릎이 안좋으신지 마을로 향하는 내내 ..

30. 드디어 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에 첫 발을 내딛다.

아프리카. BJ의 눈웃음과 별풍선이 난무하는 인터넷 방송국 이야기가 아니다. 사자와 얼룩말이 뛰어노는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를 내가 여행하게 될 줄이야!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베리아 반도와 마주보고 있는 모로코는 사실 정통(?) 아프리카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문화적으로는 중동에 더 가까운 나라가 아닐까? 일단 아랍어를 쓰는데다, 국민의 약 99%가 이슬람을 믿는 것만 봐도 그렇다. 뭐 그래도 어찌되었든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나라가 아닌가? 이제 나도 새로운 대륙에 발을 내딛는거다. 리스본을 떠나 카사블랑카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내가 모로코로 여행을 가는 중이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살면서 코카콜라를 수천번은 마셨겠지만, 이때의 코카콜라는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