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쓰는 경제스토리/Economic Focus

CGV의 좌석등급제, 기업의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꼼수?

비행청년 a.k.a. 제리™ 2016. 3. 2. 08:30

 

얼마 전, CGV가 영화 티켓에 대한 '가격 다양화'를 표방하며, 3월 3일부터 영화 관람료를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중 시간대를 기존 4단계(조조, 주간, 프라임, 심야)에서 6단계(모닝, 브런치, 데이라이트, 프라임, 문라이트, 나이트)로 세분화하고, 좌석도 ◇이코노미, ◇스탠다드, ◇프라임으로 구분하여 각 등급별로 티켓 가격을 1,000원씩 차등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 출처 : CGV 홈페이지(www.cgv.co.kr)

 

CGV가 새로운 가격정책을 발표한 이후, 고객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듯하다. '가격차별화'를 빙자한 '가격 올리기' 꼼수라는 비판에서부터, '이제 극장에서까지 금수저와 흙수저를 구분 짓겠다는 말이냐?'라는 이야기가 SNS를 통해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극장에서의 팔걸이는 누구의 것?'이라는 세기의 난제가 드디어 풀렸다며, 팔걸이는 돈을 더 낸 사람의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등장했다.

실제로 기존에 비해 관람료가 저렴해진 이코노미 존의 비율은 20%에 불과하지만, 가격이 오른 프라임 존의 비율은 35%다. 가격이 오른 좌석의 수가 더 많기 때문에, 영화가 매진될 경우 극장의 관람료 수입은 약 1.65% 정도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주 중 프라임 시간대 기준) 이러한 이유로 증권가에서 CJ CGV의 주식을 매집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CGV의 좌석등급제는 결국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꼼수가 아닐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좌석등급제로 인해 CGV의 이익은 분명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꼼수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가격차별화 전략은 상당히 고전적인 이윤 극대화 전략이기 때문이다.

 

 상품의 가격은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전통 경제학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각자 고유한 가격탄력성을 갖는다. '가격탄력성'이란 가격의 변동에 따라 소비의 양이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본의 아니게 말이 좀 어려워졌는데,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

 

나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역 안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가 1,200원짜리 '카페라테'를 하나 사서 마시곤 했다. 그런데 1년 동안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난 뒤, 예전처럼 편의점으로 들어가 '카페라테'를 집어 들었는데, 가격이 1,400원으로 올라버렸다. 고민 끝에 카페라테를 내려놓고 돌아서려는데, 어떤 아름다운 여자 손님이 내가 내려놓은 '카페라테'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자세히 바라보니, 1년 전에 여기서 잠깐 스쳐 지나갔던 그녀 같기도 하다.

 

△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oft_drink

 

위의 사례에서 나는 카페라테라는 상품의 가격이 200원 올랐기 때문에 구입을 포기했다. 가격의 변화에 소비를 줄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아니 우연히 만난 그녀는 가격이 오르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고 매일 같이 카페라테를 사는 소비자다. 경제학에서는 나의 소비성향을 두고 '가격탄력성이 높다(가격 변동에 민감하다)'고 정의한다. 반대로 그녀는 가격탄력성이 낮은(가격 변동에 둔감한) 소비자로 분류된다.

 

기업의 매출은 P(가격) Ⅹ Q(판매량)으로 정의된다. 가격탄력성이 높은 시장에서 기업이 가격을 올리면, 가격 상승분보다 판매량의 감소분이 크기 때문에 기업의 매출(또는 이익)이 감소한다. 반대로 가격탄력성이 낮은 시장에서는 기업이 가격을 올리더라도 판매량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기업은 매출액과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

 

 

 

 차별은 기업을 이롭게 한다.

그런데 만약 기업이 소비자 집단을 구분 짓고 각기 다른 가격을 제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에게는 싸게, 덜 민감한 소비자에게는 비싸게 값을 부른다면 말이다. 

아마도 높은 가격을 제시받은 소비자들은 분노할 것이다. 똑같은 제품을 누구에게는 싸게, 누구에게는 비싸게 판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낮은 가격을 제시받은 소비자가 물건을 사서 높은 가격을 제시받은 소비자에게 재판매할 수도 있다. 기업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해답을 찾았다. 바로 시간적, 공간적 차이를 두고 다른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 출처 : https://informationstrategyrsm.wordpress.com/2015/10/10/price-discrimination-in-practice/


똑같은 자동차, 똑같은 스마트폰이 한국과 미국에서는 각기 다른 가격으로 팔린다.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원가의 차이, 운송료 등을 고려해도 가격차이가 쉽게 납득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미국의 자동차가 싸다고 해서 미국에서 자동차를 사다가 한국으로 가져오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가격차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기업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또 다른 예로는 전기 요금이 있다. 똑같은 양의 전기를 쓰더라도 낮과 밤의 요금이 다르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낮에 비싼 요금을 책정하더라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밤에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저장한 후, 이를 낮에 사용하는 공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시장이 교란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소비자 집단을 나누고 각 집단에 다른 가격을 제시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하지만 가격차별화 전략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번째로 시장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고, 두번째는 시장 간 상품의 거래비용이 가격 차이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좌석등급제는 극장을 이롭게 할까? 

다시 CGV의 사례로 돌아가보자. CGV는 소비자 집단을 '자리를 중요시하는 고객'과 '가격을 중요시하는 고객'으로 나누고 두 집단에 서로 다른 가격을 제시하려고 한다. 기업의 가격정책이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하기 위해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 법과 원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면 그 전략은 분명 좋은 것일테니까,

 

사실 영화관에서 가격탄력성에 따라 소비자 집단을 나누고 가격차별화를 시도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학생할인'과 '조조할인'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일반인에 비해 싼 가격에 티켓을 파는 것은 극장이 착해서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소비행태는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고, 극장이 가격을 조금만 낮춰도 티켓 판매는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영화가 매진이 되지 않는 한, 학생들에게 낮은 가격에 티켓을 팔면 극장은 수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

 

학생은 아니지만,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라면 조금 부지런히 움직이면 된다. 아침 일찍 영화관에 도착하면 남들보다 싸게 영화를 볼 수 있다. 극장이 아침에 영화 티켓을 싸게 파는 것도 온 국민을 부지런하게 만들어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게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GV_Aeon_Canary.jpg

 

CGV가 도입하려는 좌석등급제의 컨셉은 학생할인, 조조할인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CGV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가격차별화가 갖춰야 할 첫번째 조건, '명확한 시장의 구분'이다. 비록 가격과 자리에 대한 관객들의 선호도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 차이를 납득하지 못한다면 불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학생할인과 조조할인의 사례에서는 시장을 '학생과 일반인', '이른 아침과 일상 시간대'로 명확히 구분지을 수 있었다.

 

좌석등급제를 시작도 하기 전에 여론이 들끓는 것은 1,000원을 더 내거나 덜 내야 하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CGV는 앞, 중간, 뒤로 구분되는 좌석의 품질(?) 차이를 그 근거로 제시하지만, 아직까지는 소비자들이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논리적으로는 '좌석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소비자라면 돈을 더 내고 '프라임'석에 앉는 것이, '저렴한 가격'을 원한다면 목이 좀 아프더라도 '이코노미'석에 앉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하지만 문제는 본인이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좋은 좌석에서 싼 가격에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프라임석과 이코노미석의 단점만을 떠올리며, CGV의 좌석등급제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기업은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결국 CGV의 좌석등급제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좌석등급제'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유형의 소비자인지' 스스로 깨우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프라임이라는 이름을 비즈니스 또는 퍼스트라 살짝 바꿔보자. 비즈니스 석 또는 퍼스트 석을 이용하는 승객과 이코노미 석을 이용하는 승객은 본인이 '가격'과 '안락함' 중에 어떤 것을 선호하는 소비자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비즈니스나 퍼스트 석이 비싼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코노미 석이 불편한 것에도 그다지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CGV의 좌석등급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관객이 1,000원을 더 낸 내 좌석이 다른 좌석에 비해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CGV의 생각대로 일단 한번 앉아보면 이내 수긍할 만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소비자가 이코노미-스탠더드-프라임의 가격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좌석등급제는 실패한 전략으로 경영학 교재에 소개될 것이다.

 

CGV도 바보가 아닌 이상, 좌석등급제가 실패할 때 까지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프라임 좌석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생수라도 한 병 쥐여주든 어깨라도 한 번 주물러 주든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좌석등급제를 기획한 팀, 또는 담당자는 고객들이 프라임 좌석과 이코노미 좌석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여론이 수그러들기만을 손 모아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경제학에서는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회의 후생이 증가한다고 믿는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거래를 통해 일정 수준의 효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격차별화는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행위다. 비록 소비자의 효용 일부가 생산자에게 이전되기는 하지만, 가격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소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비록 시행 초기에 어느 정도 진통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CGV가 좌석등급제를 정착시켜, 이 사회의 효용을 조금이나마 증가시켰으면 한다. 다만, 소비자들이 1,000원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만한 서비스를 고민하기보다 '이 길이 아닌가 보다'라며, 슬그머니 좌석등급제를 없애지는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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