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고 쓰는 일본스토리/Story in Tokyo

[일본문화 체험기 ④] 무와 예가 만나는 곳, 사무라이 예법 체험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1. 1. 21:30

무와 예가 만나는 곳, 사무라이 예법 체험

 

미안합니다(すみません), 고맙습니다(ありがとう), 괜찮습니다( だいじょうぶ)

 

일본에서 살다 보면 유난히 자주 듣는 말입니다. 별것 아닌 일에도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서도, 막상 상대방의 실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기는 일본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일본을 다녀간 외국인들은 일본을 '친절하고 예의바른 나라'로 기억하곤 합니다.


사실 일본도 유교 문화권으로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문화가 바탕에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12세기 무렵 사무라이 계급에 대한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하죠. 당시 사무라이가 되기 위해서는 검술, 궁술, 승마 등 무예와 함께 역사, 문학, 윤리 등 학문적 소양을 쌓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과 무예의 바탕으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예법'이 상당히 중요시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무라이 교육에 있어 명성이 자자했던 오가사와라 가문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접대하는 마음'을 강조하는 '오가사와라류(小笠原流)'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정신은 지금까지도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예절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의 전통예절을 배우기 위해 오늘은 도쿄 외곽, '로카코엔(芦花公園)'에 위치한 '오가사와라류 교조'를 찾았습니다. '오가사와류 교조'는 32대에 걸친 오랜 기간 동안 전통 사무라이 교육과정을 재현해오고 있는 곳인데요. 유난히도 추운 토요일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영화에서나 보던 사무라이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길을 나섰습니다.


도쿄에서 가장 혼잡한 역 중 하나인 신주쿠 역에서 게이오 라인으로 갈아탄 후, 8 정거장...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였을까요? 깜빡 잠이 든 사이에 로카코엔 역을 그만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ㅠㅠ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예절을 배우러 가면서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무례를 범한 셈이죠.


아침부터 저는 재차 미안함을 표시했고(すみません), 일본인 선생님들은 제게 '괜찮다고(だいじょうぶ)'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일본식 대화였죠.^^;; 도쿄 시내와는 달리 낮은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오가사와라류 교조에 도착했습니다. 밖에서 보기에는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작은 건물 안에서 예법 교육은 물론 승마와 궁술 체험까지 할 수 있습니다.

 

 

 

관장님 이하 사범님(?)들의 안내에 따라 저희는 먼저 2층 다다미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교육은 기본 예법(자세, 앉는 법, 인사), 궁술과 승마, 식사 예법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교육에 앞서 일본 전통 가옥의 기본 형식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건물은 대개 남쪽을 바라보도록 지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의 북쪽 면에는 그림이나 꽃이 놓이는데요. 그림이나 꽃을 등 뒤에 두고 남쪽을 바라보는 자리가 상석(上席)입니다. 


상석의 양옆은 서열에 따라 자리가 정해지는데, 상석에 앉은 사람을 기준으로 왼쪽(동쪽)이 오른쪽(서쪽)보다 높은 서열의 사람이 앉습니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원리에서 비롯된 것인데, 좌우의 서열에 대한 개념은 기모노, 가부키, 스모 경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약간 더 높았다고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것도 비슷한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당시 사무라이들은 전장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자세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행동가짐은 '오가사와류'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심지어 자리에 앉을 때도 손으로 땅을 짚는 동작을 생략한 채, 상체를 꼿꼿이 편 상태에서 무릎만 굽히면서 앉는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니, 참고 영상을 하나 첨부합니다.

 

 

위의 영상에서 보듯 남자는 왼쪽 발을 살짝 뒤로 빼는데, 여자의 경우에는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디딘 후 자리에 앉는 것이 정석입니다. 성별에 따라 움직이는 발이 다른 것도 왼쪽과 오른쪽의 서열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손을 바닥에 대지 않고 앉는 것이 처음이라, 균형 잡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약 한 시간 동안 정자세로 서는 법, 앉는 법, 인사하는 법 등 기본 예법을 배운 후, 1층으로 내려가 활쏘기와 말 타는 법을 체험했습니다.

 

  

 

 

활쏘기와 말타기 교육은 약 스무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오가사와라류 교조'의 활쏘기 체험은 마치 헬스장 한켠에 있는 실내 골프장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약 5m 정도 앞에 드리워진 두꺼운 천을 향해 활을 쏘는 것인데요.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강사분께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셨는데, 절제된 동작에서 뭐랄까 무도인의 포스가 진하게 풍겨져 나왔습니다.

 

  

  

 

반대편에서는 말타기 체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하체가 부실하면 낙마의 우려가 있으니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는 체조를 한 후,

차례대로 말 위에 올라타 봅니다.

 

 

살아있는 말은 아니지만, 고삐를 당기면 고개도 끄덕대는 현실감 돋는 목마(木馬)였습니다. 단, 고삐를 너무 세게 당기니 목이 빠져버리더군요.

 

  

 

이번 코스의 끝판왕, '말 위에서 활쏘기' 시범을 끝으로 한 시간 반가량의 '무예 체험' 세션이 막을 내렸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일본의 전통 식사예절을 배우는 시간이었는데요. 네모 반듯한 받침 위에 왼쪽 아래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밥-국-마른반찬-피클류'가 놓여 있습니다. 찌개를 비롯한 반찬을 상 가운데 두고 공유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밥뿐 아니라, 반찬까지 1인분씩 따로 덜어 상을 차리는 것이 기본예절입니다.

 

 

 

밥을 먹을 때, 그릇의 뚜껑을 여는 것에도 순서와 방법이 있습니다. 왼쪽 아래(밥)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뚜껑을 열면 되는데요. 뚜껑을 열 때는 엄지와 검지로 뚜껑 위쪽의 볼록 튀어나와 있는 부분을 잡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감싸며 열어야 합니다. 특히, 뚜껑 안쪽의 물이 튀지 않도록 뚜껑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돌리며 열어야 한다고 하는데, 글로 설명하기는 좀 어렵네요^^;;

 

 

 

상 아래쪽 모서리에 뚜껑을 가지런히 내려놓은 후, 가벼운 목례로 식사에 대한 감사 인사를 표시한 후, 맛있게 식사를 즐기면 됩니다.

 

 


비록 시간적 제약 때문에 일부밖에 체험할 수 없었지만, 교육장 뒤편에는 사무라이들이 지켜야 할 예법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일본 역사에서 사무라이 계층은 신라시대의 화랑, 조선시대의 선비와 같이 사회 지도층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사무라이들은 그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권한만큼이나, 품위 유지를 위한 행동 가짐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졌기에, 예법을 지키는 것이 사무라이의 가장 큰 덕목이자 의무였다고 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사소한 부분까지 조심하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마음. 언뜻 쉬워 보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마음가짐이기에 수 백 년 전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본 포스팅은 자유광장(http://www.freedomsquare.co.kr/)에 기고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