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71

34.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베르베르족 마을과 토드라 협곡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또다시 차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는 왠지 어제 봤던 것만 같은 풍경들이 지나간다. 분명히 어제 하루 종일 차로 내달렸는데, 아직도 사하라 사막까지는 한참 남았다고 한다. 약간의 멀미와 피곤함에 어느새 눈이 점점 감긴다. 마라케시에서 시작하는 사막투어는 그야말로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이제는 전혀 낯설지 않는 모로코의 풍경, 황톳빛 땅과 푸른 하늘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처음에는 '안 그래도 나무가 없어서 활량한 땅에 건물까지 황토색으로 지어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자꾸 보다보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싶다. 나도 모르게 모로코에 정이 들었나보다. 잠깐 쉬어가는 길에 만난 모로코 소년, 곱슬곱슬한 머리에 동그란 얼굴과는 달리 꽤 시크한 매력을 가진 남자아이다. 사진을 찍거나..

01.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 길에 오르다.

"뭐, 그건 내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 암튼 몸 건강히 잘 다녀와라." "그래, 그리고 이 거 한 달만 좀 부탁한다." "어, 근데 그냥 이렇게 갔다 오면 되는 거냐?" "몰라~ 그냥 어떻게 되겠지..." 캐리어 하나를 친구에게 던져주고 돌아섰다. 텅 비어버린 방은 내가 이 곳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남들은 설렘에 잠을 설친다는데, 그날따라 유독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이 곳이 어지간히도 익숙해지긴 했다보다. 이른 새벽, 혹시라도 빠뜨린 것은 없는지, 침대 밑과 욕실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핀 후 미리 챙겨둔 배낭을 들쳐 메고 길을 나섰다. 2015년 7월 28일, 그때 그 길을 또 걸을 수 있는 날은 아마 다신 오지 않을 것 같다. 벌써 올해에만 세 번째, 공항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익숙..

[프롤로그] 남자, 여행에 미치다

"I am gonna travel Lartin America." 불과 1년 전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문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남미라니.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비행기로 꼬박 열 몇 시간을 날아가야 겨우 도착하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5년 7월, 당시 나는 일본의 한 대학교에서 MBA를 공부하고 있었다. 8월 말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 마지막 학기의 기말고사가 끝났다. 한 달여의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직장인들은 아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한 달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마도 내 인생의 마지막 방학이 될 그 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2015년 8월을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한 달로..

03.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황홀함, 벌룬투어로 터키여행의 시작을 알리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였을까? 아침, 아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터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벌룬 투어는 해가 뜨기 전,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카파도키아 상공에서 일출을 감상한 후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새벽 4시, 숙소 앞까지 우리를 데리러 온 픽업 차량에 몸을 싣자마자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여행사 이름이 크게 적힌 미니밴 차량은 괴뢰메 마을 곳곳의 호스텔을 들러 사람들을 태운 후, 꽤 그럴듯한 식당에 도착했다. 작고 퍽퍽한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차로 다시금 10여 분을 달리고 나니 황량한 공터 곳곳에서 뭔가에 매달려 끙끙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 너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축 늘어진 벌룬에 불을 쪼이면 조금씩 풍선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

33. 사하라 사막은 어디에...? 지루하게 흘러간 사막 투어의 첫 번째 하루

조금은 허무했던 아이트 벤 하두 투어가 모두 끝났다. 짧은 자유시간 동안 각자 흩어져 사진을 찍은 후, 가이드를 따라 마을을 내려왔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쳐버렸다. 빨리 차로 돌아가 물이나 한 잔 들이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이드를 따라 차로 돌아가는데, 강 위로 세워진 튼튼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마을로 들어갈 때에는 징검다리를 건너느라 동네 꼬마들에게 팁을 삥 뜯겼는데 말이다. 가이드와 현지 주민들 사이에 은밀한 커넥션이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던 순간에 저 멀리서 후다닥 달려오시는 분은 우리 일행 중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할머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할머니를 놓고 떠날까 봐 달려오시는 것 같다. 무릎이 안좋으신지 마을로 향하는 내내 ..

02. 한국인 스텝이 있어 더욱 정겨운 '트레블러스 돔 케이브'(Travellers The Dorm Cave)

본격적인 터키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기에 앞서, 괴뢰메 마을에서 묵었던 호스텔 소개를 먼저 시작해볼까 한다. 그나저나 이번 포스팅이 벌써 네번째 글인데, 아직까지도 여행담을 제대로 시작조차 못했다. 과연 이번 연재는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전 세계의 여러 나라, 각각의 도시들은 저마다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괴뢰메 마을은 꽤나 독특한 지역이다. 화산재와 용암으로 만들어진 기암괴석과 그 안에 동굴을 만들어 살아가는 인간의 위대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괴뢰메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씩 품고 돌아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동굴호텔'에서의 하룻밤이다. 내가 사흘간 머물렀던 '트레블러스 돔 케이브' 역시 괴뢰메에서는 평범한, 하지만 여행객에게는 특별한 '동굴..

01. 인천에서 이스탄불... 그리고 괴레메까지, 기나긴 여정의 시작

2015년 12월 25일은 앞으로 수 년 동안 잊지 못할 내 인생의 특별한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을 새가며 일을 한 것도 모자라 (아마도) 평생동안 가장 붐비는 인천공항을 경험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역에 내려서 게이트 앞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세 시간. 2015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대한 기억은 지친 심신을 이끌고 하염없이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것 밖에 남지 않았다. 혹시라도 비행기를 놓칠까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겨우 비행기에 올라타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 시간쯤 정신없이 곯아떨어졌을까? 웅성대는 소리에 잠이 살짝 깼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 아! 기내식이구나. 허리를 곧추 세운 후, 좌석 앞 테이블을 내려 음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32. 글레디에이터의 배경, 아이트 벤 하두 투어기

내 이름은 막시무스,북부 군 총사령관이자 펠릭의 장군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복이었다. 태워 죽인 아들의 아버지이자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안 되면 죽어서라도... - 영화 글래디에이터 中 - △ 이미지 출처 : http://10-themes.com/425522.html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 영화 3개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나 홀로 집에, 타이타닉, 그리고 글래디에이터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화의 세세한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 같은 무언가가 오래도록 남아있는 그런 작품들이다. 아마도 2000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가 아카데미 시상식 12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고대 로마제국을 현실감 넘치게 구현..

[터키 완전정복] 떠나기 전, 이것만은 꼭 알아두자!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비행기로 9시간, 가이드북 하나를 사서 터키에 대한 정보를 머릿 속에 집어넣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본격적인 여행기 연재에 앞서 비행기에서 공부한,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알게된 터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자.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성기를 간직한 도시, 이스탄불 터키 제 1의 도시인 이스탄불은 과거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기독교(의 한 분파인 그리스정교)와 이슬람을 각각 대표하는 제국의 수도였던 탓에 지금도 이스탄불에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곳곳에 남아있다. 이스탄불 관광의 중심지, 술탄아흐멧역 근처에는 세계 5대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아야소피아 박물관과 핸드메이드 타일 21,000여장으로 뒤덮인 블루모스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흔히 알려진..

[프롤로그] 여행을 떠나든가, 회사를 떠나든가

어느덧 2016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잠시나마 회사를 떠나 MBA 공부를 하면서,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했고, 스페인부터 남미에 터키까지... 참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다. 지난 9월 회사로 돌아와서는 그야말로 토할만큼 빡센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한 해 동안 일어났던 것일까 싶을 정도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나름 6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4개월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힘든 시간이었다. MBA를 핑계로 잘 놀다왔기 때문이었을까? 새로 배치받은 부서는 유난히도 '빡센' 곳 이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과 깨짐의 연속인 일상 속에서 머릿 속으로 사표를 썼다 지우기를 수차례, 지금도 회사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