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모아두는 인벤토리

1등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자세

비행청년 a.k.a. 제리™ 2014. 2. 19. 01:17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 중국과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친 끝에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차지했다. 소치에서 전해혼 두번째 금메달!!! 이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 내내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았던 불운을 떨쳐낸 시원한 경기였다.

 

 

 

 

이번 금메달이 더욱 반가웠던건 예년과 달리 쇼트트랙에서 우리 선수들이 유독 고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특히 남자 쇼트트랙의 경우, 500m와 5,000m 계주 두 종목만을 남겨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메달을 가져오지 못했다. 한 때, 대한민국의 특급 에이스로 불렸던 안현수가 이제는 빅토르 안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에 2개의 메달을 안겨주어서일까? 우리 선수들의 부진(?)이 더욱 가슴 아프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하지 않았더라면??? 글쎄, 스물 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감안하면, 그가 우리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쉽지 않다.

(물론 이번 올림픽에서는 그런 우려를 비웃듯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이 아쉬운 것은 그가 있었다면 우리 대표팀이 더욱 강한 전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그가 떠나는 과정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치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나라 팬들도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우리 대표팀 못지 않게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기도했다.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당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안현수에게 금메달을 양보하라고 지시했던 코칭스태프와 그에 따르지 않아 장장 8시간동안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안현수 선수 측의 주장이다.(물론 사실관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논란이지만)

 

아무튼 대표팀 내에서 암묵적인 몰아주기 분위기가 있었던건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그 과정에서 안현수 입장에서는 부당한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상황에서 무릎 부상과 소속팀(성남시청)의 해체라는 불운을 연달아 겪으며 안현수는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러시아 귀화를 선택하게 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러시아의 귀화 조건은

1. 약 1억 8천만원의 연봉(생활비 별도지원)

2. 한국에서 같이 훈련했던 코칭 스텝 전원을 러시아로 스카웃한 후 개인 코치로 배정

3. 쇼트트랙과 전혀 관계없는 일반인 여자친구를 국가대표 코칭 스텝으로 임명

4. 은퇴 후 지도자 자리와 모스크바 대학교수 자리 보장

5. 러시아어 개인 교사 배정

 

이 뿐 아니라 월드컵 경기에서 네덜란드 선수가 안현수에게 '빠큐'를 날리자 이에 빡친 푸틴 대통령이 직접 국제연맹에 이의를 제기, 해당 선수가 실격 처리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 푸틴의 페이스북을 보면 안현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데...

 

 

 

 

한 시대를 풍미한 쇼트트랙 스타를 대하는 한국과 러시아의 태도를 비교해 보면 '빅토르 안'을 택한 안현수의 결정을 비난하기 힘들어 보인다.(있을때 잘했어야지 ㅠ)

 

한국 대표팀의 입장에서는 안현수의 그늘에 가려진 다른 우수한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그런 결과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안현수가 양보해야 할 메달은 그가 그동안 손에 거머줬던 수많은 메달 중 하나겠지만 그걸 손에 넣은 선수는 평생 한번 가져볼까말까할 가문의 영광이었을테니...

 

하지만, 안현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1등의 양보와 희생을 '은근히' 바라는 심리가 있지 않는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이 '에이, 넌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이번엔 다른 사람들한테도 기회를 좀 주지 그래'라는 이야기를 그동안 많이 들었던 것 같다(물론 나한테 한 이야기는 아님 ㅋ 잘나가는 내 친구들이 듣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쿨하게 양보해 주는 사람은 '실력도 출중한데, 인성도 좋은 친구'라는 평판을, 그런 이야기에 신경쓰지 않고 자기 갈 길을 묵묵히 하는 사람은 '인정머리없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라는 비판들 듣는다.

 

하지만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남에 의한, 남을 위한 나의 반 강제적 희생'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대형마트, 편의점은 지금도 잘나가니까 주말에 하루쯤 문닫고 동네슈퍼들이 장사할 수 있게 양보하라는 규제, 대기업은 이거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 시장에서 빠지라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안현수'이던 시절 외국 선수들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은 좀 이상한 것 같다. 왜 다른 나라 선수들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견제하는 것 같지?"

 

어쩌면 외국 기업들도 우리나라 정부를 조금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영원히 우리 선수일 줄 알았던 안현수가 아이스 링크에서 러시아 국기를 흔들듯, 삼성과 현대차도 언젠가는 우리 기업이 아닌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황당한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