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고 쓰는 일본스토리/Story in Tokyo

한여름에도 야구를 시원하게 즐기자! 도쿄돔 요미우리 vs 한신 전 관람기

비행청년 a.k.a. 제리™ 2015. 7. 17. 07:30

 

 

2015년 7월 10일, 난생 처음으로 일본 프로야구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날이다. 그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과 한신 타이거즈의 라이벌전. 솔직히 말해서 요미우리와 한신이 숙명의 라이벌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좀 주춤하긴 하지만 요미우리는 성적으로나 팬 층으로나 그야말로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인데 반해, 한신 타이거즈는 언제 우승을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구단이 아닌가? 뭐 일본 애들 말로는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관계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정도다. 사실 둘 사이의 라이벌 관계에는 그닥 관심이 없고, 내 단 한가지 소망은 '오승환 좀 보고 가자!'

 

 

도쿄에 거의 일 년 동안 살면서, 도쿄돔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는데, 알고보니 학교에서 지하철 역으로 한 정거장,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스이도바시'역에서 내리면 된다. 일본은 주중 프로야구 경기가 6시에 시작하는데, 입장은 4시부터 가능하다. 스이도바시 역에 5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도착했는데, 이미 요미우리 혹은 한신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있었다. 굳이 길을 찾으러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따라 가다보니 금방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구장에 들어가기 전에 간식거리를 좀 챙겨두기 위해 먼저 편의점부터 들렀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이 곳, 세븐일레븐 도쿄돔 매장은 요미우리에 관한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한때, 국내 야구팬들한테 '보살'로 칭송받던 하라 감독, 아직까지 요미우리 사령탑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하나 빼기 일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장기 집권 독재자의 다부진 포스가 느껴졌다. 

 

 

경기가 있는 날이어서인지는 몰라도 편의점 직원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일단, 도쿄돔 앞에서 인증샷 한 장! 실제로 본 도쿄돔은 마치 커다란 쇼핑몰 같았다. 벽면이 유리로 덮여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건물 모습을 제외하고는 응원도구를 파는 노점과 티켓 창구 그리고 입장권을 출력하는 기계 등 잠실 야구장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예매한 후, 티켓을 출력해가면 티켓을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 <참고> 도쿄돔 경기 인터넷 예매 방법 : http://jerrystory.tistory.com/155 

 

 

도쿄돔 좌석은 크게 1층과 2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2층 좌석 입장을 위해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오 사다하루, 그러니까 왕정치의 모습을 그린 동판이 걸려 있었다. 지금보니, 타격폼이 서건창의 2014년 모습과 비슷한 것 같기도...

 

 

2층 복도 한 켠에 마츠모토 테츠야의 글러브, 배트 등과 함께 걸려 있는 현수막, 아마도 그의 호수비 장면을 재현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2.9m 높이의 타구를 점프해서 잡아낸 플레이였던 것 같은데, 요미우리 모자를 쓴 아이들이 저 앞에서 마구 점프를 해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참신하고 재미있는 전시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었다.

 

 

경기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어서, 기념품 샵을 먼저 구경해 보았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선수들의 특징을 잘 잡아낸 캐리커쳐가 눈길을 끌었다. 야구와 관련된 보드게임이 아닐까 했는데, 저 안에 과자가 들어있었던 것 같다. 과자 하나를 팔때에도 엄청난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우리나라의 자이언츠도 좀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 가격은 과자치고 꽤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드디어 도쿄돔 관람석 입성! 홈플레이 뒷 쪽 2층 자리다. 다소 멀긴 했지만 그래도 경기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도쿄돔은 처음이었지만, 그동안 사진을 통해 많이 봤던 뷰라 그런지 괜히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점은 구장 안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 폭염이 내리쬐는 7월에도 이렇게 쾌적하게 야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인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우리나라에 돔 구장이 여러개 생기면 더 이상 '여름성'이라는 말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돔 구장은 고척돔을 마지막으로 이제 안 짓는 걸로... 아니면 여름에 히터를 틀고 경기를 하든가, ㅋ

 

 

오늘의 시구자는 도쿄 어딘가에 있는 중학교 야구부 에이스 투수인가 보다. 투수 뿐 아니라 야수들 모두 선수들 옆에 서서 수비 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연예인 시구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뭐 나름 의미있는 시구라는 생각은 들었다.

 

 

드디어 플레이 볼! 오늘의 양팀 선발 투수는 랜디 메신저와 아론 포레다, 외국인 투수의 맞대결이었다. 1회부터 안타와 도루, 희생타로 점수를 뽑아낸 한신 타이거즈가 경기를 쉽게 풀아나가는가 싶었는데, 그게 전부였다. 2회말, 아베 신노스키의 볼넷에 이은 무라타의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한 요미우리는 6회말 2점을 추가, 7회초 한 점을 따라붙은 한신 타이거즈에 4:2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2회말 터진 무라타의 홈런은 맞는 순간에는 평범한 외야플라이처럼 보였지만, 타구가 두둥실 떠가더니 담장을 살짝 넘어가 버렸다. 말로만 듣던 도쿄돔의 홈런 기류가 이런거구나 싶었다.

 

 

평일 경기임에도 4만 2,000석의 좌석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빈자리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매진 경기 치고는 관중석 분위기가 매우 차분했다. 응원가도 따라부르고 응원 막대기를 두드리긴 하지만 앰프 응원이 없어서인지 한국의 왁자지껄한 응원 분위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얌전한 편이었다.

 

 

일본 야구의 응원 문화 중 한국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바로 치어리더, 일단 관중석에 치어리더 공연 공간이 없다. 경기 중간 이닝 교대 시간에 1루, 3루측 파울지역에서 간단한 무용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것도 매 이닝이 끝날때 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경기에 한 3번 정도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 일본 야구장에는 치어리더 못지 않은 맥주 걸들이 있다. 아사히, 에비스, 기린 등 일본 맥주회사들이 자체적으로 고용한 직원들인데, 하나같이 엄청난 미모를 자랑한다. 솔직히 국내 왠만한 구단의 치어리더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외모다. 특히, 치어리더 뽑을 때, 싸트 점수 본다는 모 구단에 비하면, 그냥 뭐 '오 나의 여신님'. 밝게 웃으며 생맥주를 건네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등에 짊어진 맥주 배낭을 대신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경기 후반으로 가면서, 요미우리의 승리가 가까워지자 팬들의 기분이 급격히 좋아지고 있었다. 주황색 손수건을 흔들여 응원에 열중하는 요미우리 팬들의 모습,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자이언츠의 비닐봉투 응원이 생각나는 비주얼이다.

 

 

공수교대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발견한 놀이방에서는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요린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엄마만 있는 걸 보니, 아빠들은 다들 안에서 열심히 야구를 보고 있는 듯 하다. 그 와중에 몇몇 아이들은 TV로 중계되는 야구 경기에 폭 빠져있는 모습이다.

 

 

매점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는 한신 타이거즈의 기념품도 함께 팔고 있었다. 아대라도 하나 살까 했는데, 아쉽게도 오승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세이브 1위의 마무리 투수인데, 요새 좀 부진하기로서니 너무 푸대접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수는 4:2, 8회까지 양팀의 안타수는 8:6,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숫자다. 비록 한 경기지만, 확실히 일본 프로야구는 투고타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안타든 볼넷이든 주자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투수들의 구위에 밀리는지 파울타구가 제법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게다가 간간히 나오는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는 수비수들이 기가막히게 잡아내기까지 하니, 전체적으로 득점 상황자체가 한국 프로야구에 비해 많지 않았다. 점수가 많이 나는 타격전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팽팽한 투수전을 선호하는 편인데, 간만에 눈이 좀 정화된 듯 했다. 물론, 메신저의 투구는 기대에 많이 못미치는 편이었지만,

 

 

아, 그리고 일본 야구의 또다른 재미는 바로 투수가 타격을 한다는 것, 정확히는 일본 야구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센트럴리그의 특징이지만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이 경기 후반에 상당한 변수가 된다. 투수 타석에 대타를 기용한 후, 대타가 다음 이닝에 수비에 들어가게 되면서 타순이 마구마구 꼬이기 시작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만, 대타 기용 후 바로 다음 이닝에 투수로 교체되면서 '투수 - 9번'의 공식이 유지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뭐, 아무튼 그렇게 경기는 4:2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승리로 끝났고, 투런 홈런을 날린 무라타가 수훈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터뷰 내내 묘한 표정을 짓던 무라타가 끝내 눈물을 보였고, 관중들은 이름을 연호하며 위로의 응원을 보냈다. 인터뷰를 남자 아나운서가 진행한다는 점,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일반 관중들도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 등이 국내 프로야구와는 조금 달랐던 풍경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된 사실인데, 도쿄돔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 구장이지만, 가끔은 다른 구단이 도쿄돔에서 홈경기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전국 각지에서 도쿄로 올라와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쿄에 살고 있는 지방 연고 구단 팬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 차원이라고 한다. 경기 일정이 잘 맞는다면, 도쿄돔에서 한신 타이거즈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경기를 관람하면서, 오승환과 이대호의 맞대결을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올해에는 두 팀의 경기가 도쿄돔에서는 벌어지지 않지만;;;)

 

그나저나 어둠 속에 환하게 불을 밝힌 도쿄돔의 모습은 낮보다 훨씬 더 쇼핑몰스러웠다.

 

 한여름에도 야구를 시원하게 즐기자! 도쿄돔 요미우리 vs 한신 전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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